[3월 107호] 숲속에서_대전시티투어

대전시티투어를 떠나는 날은 부산과 서울에 갔을 때보다 여유로웠다. 아침에 다른 일정 하나를 마치고 점심까지 챙기고 오후 한 시에 대전역에서 대전시티투어버스에 탔다. 장태산자연휴양림과 유성족욕체험장에 들르는 힐링투어 버스다. 작년부터 운영한 이 코스는 대전시티투어의 다양한 코스 중에 많은 사랑을 받는 코스다. 장태산자연휴양림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몸이 으슬으슬 추운 쌀쌀하고 흐린 날씨였지만, 좋은 공기를 마시고 뜨거운 물에 족욕을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생각이었다.

                              


                            

도심을 지나 산속으로

버스에 올라타기 전 4천 원을 내고 작은 티켓 한 장을 받았다. 잘 챙겨서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에는 예닐곱 명이 먼저 타고 있었다. 한 사회복지관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뒷자리에 앉았고 나는 혼자 앞에 앉아 민종순 대전문화관광해설사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해설사는 대전시티투어를 외부 사람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대전이 전국 교통의 중심이다 보니 모임이나 동창회를 시티투어로 많이 한다는 말이었다.

                    
버스가 출발하며 민정숙 해설사가 버스 앞자리에 서 인사를 시작한다. 오늘 일정에 관한 설명과 함께 대전시티투어 전체 코스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버스가 삼성초등학교 근처를 지나자 해설사는 6·25전쟁 때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것에 관해 설명하고 삼성초등학교의 한 동을 쓰는 한밭교육박물관에 관해 설명했다. 이렇게 버스가 이곳저곳을 지날 때마다 해설사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설명해 주며 그곳이 대전 지역 전체에서 지니는 의미, 역사, 얽힌 이야기 같은 것을 말해 주었다. 녹음된 방송을 듣는 것과 해설사의 설명을 직접 듣는 것은 다른 체험이었다. 직접 듣는 설명은 귀에 더 잘 들어왔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착한 학생 콤플렉스가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후에나 찾아온 걸까. 어쨌든, 기자라는 신분을 밝혔으니 맘 놓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산과 서울을 다닐 때는 특별한 때가 아니면 신분을 알리지 않고 자유롭게 다녔는데, 대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장태산자연휴양림 근처로 가며 점점 버스가 처음 떠났던 곳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원도심의 오랜 풍경을 지나 신도심의 풍경이 펼쳐지더니 이제는 도심이 아닌 곳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낮고 평화로워 보이는 산 앞의 작은 마을, 그 앞으로 흐르는 냇물을 바라봤다. 같은 대전 안에서 몇십 분을 이동했을 뿐인데 달라지는 풍경이 낯설고도 정겹게 느껴진다. 

                   
왼편을 바라보라는 해설사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옮기니,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해설사는 그 나무가 괴곡동 느티나무이며 2013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괴곡동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 때부터 우리 잡지가 여러 번 다룬 적이 있어 친숙했다. 그 나무를, ‘가는 길’ 한 풍경으로 마주했다. 때에 따라 풍경도 됐다가 주인공도 됐다가, 나무는 무려 700년 정도 동안 마을을 지키며 여러 역할을 해 왔을 거였다.
해설사의 설명을 뒤로하고 온갖 생각에 잠기니 어느새 장태산자연휴양림이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상쾌한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휴식

평일 오후의 장태산자연휴양림은 고요했다. 종종 누군가를 마주쳤지만 휴양림 전체에 우리 일행만 다니는 것처럼 조용했다. 
버스에 내리기 전, 민정숙 해설사는 “대전에 와서 처음 장태산에 갔을 때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알고 나니 좋은 나무가 많아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에요.”라고 장태산자연휴양림을 설명했다. 한 번 가 봤으니 이제 다시 안 가 봐도 되는 곳이 아니라, 시간과 계절이 변화함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었다. 


겨울 숲은 황량하기보다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나뭇잎 하나 달고 있지 못하는데도 하늘로 쭉 뻗은 메타세콰이아는 묵직했다. 함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기념 사진을 찍고 나는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단체 사진을 함께 찍자는 말을 사양하고 저 멀리 숲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휴양림에서는 100분 머무르는 일정이었다. 해설사와 함께 다니며 휴양림의 식생 등 관련 설명을 들어도 되고 혼자 조용히 걷다 시간에 맞춰 버스에 타도 됐다. 일단 모두 해설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길을 따라 난 식물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평소라면 알지도 못했고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식물들에 눈길을 주며 시간을 보냈다. 산속이 덜 춥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휴양림 안은 밖보다 포근했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이상하게 내가 올 때는 날씨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해설사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웃었다. 


어느 곳까지 걷자, 본격적인 산책 코스가 나왔다. 다녀올 사람은 다녀오란 말에 한 사람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머지는 전시관 쪽으로 향했다. 나무숲 사이로 무대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서로 노래를 불러 보라며 부추겼다. 해설사가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하며 흥얼거렸고 몇이 그걸 따라 부르며 웃었다. 나는 맨 뒤에서 따라갔다.


전시관에서는 휴양림의 식생에 관해 알 수 있었다. 메타세콰이아가 공룡이 있던 시절부터 존재한 ‘화석 나무’라는 것은 이미 버스 안에서 들어 알아 둔 것이었다. 전시관은 아이들도 쉽게 식물이나 숲에 관해 알아볼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구성됐다. 해설사를 따라 전시관을 둘러보며 어떤 이는 해박한 곤충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전시관에서 잠시 앉아 쉬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내려가는 길에는 키 큰 메타세콰이아가 죽 이어져 서 있다. 사람들은 이 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조금 더 걸으니 스카이 워크라고 하는 길이 나타났다. 스카이 워크는 높게 만들어놓은 데크로, 키 큰 메타세콰이아 사이를 걸으며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길을 걸으니 갑자기 여름이 그리워졌다. 더위는 지치지만, 초록빛 가득한 숲 속은 얼마나 상쾌할까. 

                

                     

‘힐링’으로 가는 버스

장태산휴양림에서의 100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무리 속에서 잠깐씩 멋쩍어지는 때도 있었지만, 무리에 섞였다가 혼자가 됐다가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가, 대화를 했다가 아무말도 없이 걸었다. 그리고 종종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른 버스에 탔다. 출발하기 전에, 복지관에서 준비한 빵과 음료를 내게도 나누어 주었다. 빵을 먹고 앉아 있으니 살짝 졸음이 왔다. 다음으로 갈 곳은 유성족욕체험장이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땀이 날 거라고 해설사가 설명했다. 족욕장까지 가는 동안 해설사가 종종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뭐라도 하나 더 알려 주고 싶어 해설사는 대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유성온천족욕체험장에 도착했다.

        

족욕장은 처음이었다. 이용 방법은 쉬웠다. 세족장에서 간단히 발을 씻고 족욕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땀이 날 때까지 뜨거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 마련돼 있는 수건이 없어 기사님이 어떻게 같이 써 보라며 자신이 갖고 있던 수건 두 장을 챙겨 줬다. 

사람들은 세족장에서 발을 씻고 족욕장에 자리를 잡았고 나도 그렇게 하려고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족욕장 물의 높이보다 바지가 높게 올라가지 않았다. 애써 바지를 올려 들어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족욕장 안쪽을 들여다 보고는 금세 생각이 사라졌다. 
시원하게 족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버스에 먼저 올랐다. 족욕 시간은 20분, 시간은 금방 흘렀다. 족욕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이완된 몸을 자리에 누윌 듯 앉았다. 


“좋은 공기 마시고, 또 족욕도 하시고, 이제 잠이 솔솔 오죠? 이제 대전역까지 영상 보시면서 편하게 앉아서 가세요. 마지막으로 질문 있으신 분, 대전에 관해 궁금한 점 있으시면 질문해 주세요.”
아무도 질문하지 않자, 해설사는 자신이 질문해 보겠다며 앞서 설명했던 것들을 되물었다. 내게 물으면 어떻게 하나 가슴 졸이며 있다가 뒤쪽에서 대답을 해 온다. 대전역으로 돌아가는 동안 ‘대전의 숨겨진 보물들’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오늘 갔던 곳들을 비롯해 대전에 가 볼 만한 곳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지지직거리는 영상 대신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지나간 하루에 관해 생각했다. 


힐링. 요즘엔 이 단어의 인기도 사그러진 듯하다. 최근까지 여러 콘텐츠 생산자는 물론 수용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힐링’이란 개념은, 피로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쉬어간다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오늘 투어가 힐링 투어였을까. 일상과 다른 풍광은 물론 어김없이 색다른 쉼을 선사해 주었다. 그렇지만 혼자 다니는 것이 편한 ‘휴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휴양림을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둘러보며 숲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 것이 다른 의미의 휴식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대전역에 도착했다. 반나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수고하셨어요.”라며 인사했다. 밖으로 나오니 또 몸이 으슬으슬 추운 게 감기가 오려나 싶었다.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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