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9호] 더 많은 시민 담고 가는 재단 만들겠다

지난 3월 취임한 대전문화재단 박찬인 대표이사는 대전 토박이다.
문창동에서 자라며 보아온 정겨운 골목 풍경에 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곳을 ‘싹 밀고 다시 쌓아 올리는’ 재개발만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불어불문을 전공하며 프랑스 문화와 예술을 접했고
프랑스 문화는 다양성이 중시되고 시민이 중심이라는 점을 잘 안다.
박찬인 대표가 대전문화재단을 운영할 방향도
이 두 경험과 맥이 닿아 있다.
박찬인 대표는 임기 동안 대전의 공동체 문화를 살리며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며
시민이 중심이 되는 문화를 만드는 데 힘쓰려 한다.
지난 6월 25일, 대전예술가의집에서 박찬인 대표를 만났다.

대전문화재단 박찬인 대표이사

                               
늦었지만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부탁드리기도 조금 늦었죠?

지금 소감을 말씀드리기에는 좀 그런데(웃음), 한마디로 얘기하면 재단 대표로서 시민 중심 문화, 공동체 개념을 살리는 문화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동안은 재단 사업이 예술가 지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해요.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만큼, 앞으로는 이러한 시민을 담고 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공동체라는 개념은 마을과도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재단에서 마을 단위로 시행하는 사업도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실 건가요?

마을은 소공동체입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소공동체가 와해되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세대가 어릴 때 자라고 컸던 역사, 숨결, 문화를 마을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뉴타운처럼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 짓고 하면 공동체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남아있는 동네를 살리되 담벼락에 그림 그려주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만날 구실, 거리를 대전문화재단에서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대전의 정체성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사람들은 대전에 지역 특색이 없다고 하는데 특색이 없는 게 특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전에는 여러 지역 사람이 모여 삽니다. 청주나 전주처럼 오래된 맛은 없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민주사회로서 대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반이 돼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살리면 다른 오래된 도시가 따라올 수 없는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대전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아티언스 프로젝트 등을 보면, 대전의 정체성을 과학 도시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 드렸습니다.

대전은 소통과 만남의 도시, 과학의 도시입니다. 1905년 대전역이 생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도시가 형성되기 전입니다. 회덕, 진잠에 사람이 살았었죠. 금산과 옥천이 있었고요. 철길을 놓고 대전역이 생기며 그곳을 중심으로 일본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진잠에서 옥천 가는 사람들, 회덕에서 금산 가는 사람들이 그곳을 거치게 되고 인동시장이 형성됐습니다. 호남선이 생기고 그 교차지에서 대전이 점점 커졌습니다. 대전이라는 도시는 철길로부터 탄생했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소통과 만남의 수단입니다. 이러한 도시 정체성은 1970년대 경부선 고속도로가 나면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카이스트가 생기고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되며 20세기 후반 대전은 과학도시라는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대전 시민 사이에서 대덕연구단지는 또 하나의 섬이었지만, 외부에서는 대전 하면 대덕밸리 등을 연상합니다. 대전의 정체성은 길에서 출발해 과학으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전문화재단에서는 소통과 과학 두 가지 개념을 추구합니다. 그것을 합친 것이 예술과 과학입니다. 아티언스 프로젝트 등으로 아직 초기 단계지만 재밌게 여러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대전문화재단의 4대 대표이사입니다. 재단이 생기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요. 5년 동안의 공과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전문화재단의 나이는 5년이지만 5년 된 직원은 몇 안 됩니다. 실제 나이는 두세 살 정도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 점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초반에는 직원을 예술대학 졸업생 중심으로 뽑았습니다. 그래서 지향하는 바도 예술에 국한됐던 것 같습니다. 문화는 삶의 양식입니다.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을 때까지 종일 접하는 게 전부 문화입니다. 앞으로 대전문화재단은 이러한 점에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대전예술가의집을 준공하며 대전문화재단이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겼습니다. 전시장, 공연장을 운영하며 다양한 전시, 공연을 벌이고 있는데요. 주변 사설 갤러리 등에서는 대전예술가의집이 생기며 운영이 어렵게 됐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대전예술가의집은 민간 문화 공간과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보시는지, 이 공간들과 어떻게 상생을 도모할지, 또 시민과 어떤 지점에서 만날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전예술가의집 자리에 있었던 대전시민회관은 1970년대 대전 유일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위상을 지녔습니다. 시민들이 그 자리에 생긴 공간은 시민 전체의 것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건물 이름도 대전예술가의집이고 건물이 멋있지만 위압감 같은 것도 느껴져 처음에는 낯선 거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전예술가의집 3층 전시장은 대한민국 유일의 곡선 전시장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습니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지요. 두세 달이 지나니까 곡선 갤러리도 괜찮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대전예술가의집은 복합문화공간입니다. 회의, 세미나도 할 수 있고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흥동 갤러리들과 그리 충돌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전에 예술 동호회가 굉장히 많은데 대전예술가의집이 생겼다고 해서 여기서 다 소화할 수는 없습니다. 협회나 예술 동호회에 따라 이곳에서 전시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거죠. 지금까지는 개인전은 대흥동에서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대전예술가의집이 공연장, 전시실 가격이 꽤 비싸게 책정돼 있습니다. 가격을 내리려고 하는데 조례를 바꿔야 해서 시간이 걸립니다.

  

  

취임하시고 나서 예술인들을 만나고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대화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 예술인들이 대전문화재단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던가요?

열 개 예술 협회의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을 전부 만났습니다. 이분들은 그래도 기득권층이죠. 제가 심혈을 기울이는 쪽은 협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젊은 예술인들입니다. 창작 욕구는 대단한데 보호받지 못하는 예술인들을 만났습니다. 협회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들을 더 지원해 달라는 얘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재단 사정을 아니까, 이렇게 만나서 자신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들은 재정적 지원이 아니더라도 재단이 소통, 네트워크의 통로가 돼 주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리고 재단 예산이 국고에서 내려오는 건데 우리가 주는 것처럼 갑질 하지 말란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예술인들에게 전문 예술가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아마추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도 지원해야 한다, 몫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씀도 비췄습니다. 또 앞으로도 소통하는 대표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전문화재단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인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술인 지원 사업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지원을 받는다는 자부심도 생기고 동기유발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술인 지원 사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협회가 아무런 노력 없이 당연히 지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또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협회니까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협회에 들어오지 못한 젊은이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재원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은 무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대전문화재단의 지원 사업과 앞으로 집중할 지원 사업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재단이 운영하는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같은 시설이나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 차세대 아티스타 등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은 물론이고 국비를 통한 예술창작 지원 등이 대전문화재단이 하는 직접적인 예술인 창작지원입니다. 하지만 통합문화이용권이나 사랑티켓, 문화바우처 등도 큰 범주로 볼 때 소외 계층의 문화생활 향유 기회 제공과 함께 예술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재원적 기반 속에서 예술인들이 경쟁력과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동기 부여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제문화예술교류지원사업이라든가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지역문화예술활성화지원사업 등을 통해 건강한 경쟁 속에서 자생력을 찾아내고 지역의 예술 수준을 높이도록 할 것입니다.

  

  

시민에게 열려 있는 대표, 열려있는 재단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앞으로 대전문화재단 운영을 시민 중심으로 바꾸어 나간다고 하셨는데, 시민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으로 비교하면 됩니다. 중심이 점점 생활체육 쪽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모든 시민이 다 사진가이고 작가입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사진을 찍고 글을 써 SNS에 올리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예술의 생산자가 있고 소비자가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시민이 직접 문화를 창조하고 소통하고 즐기고 누리려고 합니다. 시민이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된 것입니다. 대전문화재단은 7월 2일에 이런 내용을 담은 ‘대전 시민 문화 비전 2030’을 선포합니다. 시민의 문화 창조, 참여, 향유 등에 중점을 두며 문화를 통한 열린 공동체를 실현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문화예술이 삶의 질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얘기합니다. 바쁘고 힘든 삶에 문화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대전문화재단에서 문화격차 해소를 위해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이 소외계층에게 ‘한 번의 이벤트’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지나치게 원론적인 답변일 수 있겠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의식주만이 아닙니다. 더욱이 바쁜 현대인들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함께 정신적인 공허함이 큽니다. 그걸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에 있어서 소외됐다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거나 지리적으로 접할 수 없는 요인도 있습니다. 국가에서도 문화소외계층을 위해 문화바우처사업 등을 하고 있고 대전에서도 대전 꿈의 오케스트라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나 찾아가는 예술활동 등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을 통해 그 소외감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시민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가는 대전문화재단을 만들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임기 동안의 대략적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More than eating’이라는 말이 있죠. 대전 시민이 빵 이상의 뭔가를 갈망하고 향유하고 싶어 할 때 그런 것을 소개해주고 지원해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시민에게 열려 있는 대표, 열려 있는 재단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위에서 갑질 하는 게 아니라 밑에서 모시는 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성수진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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