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8호] 유성 원자력시설 민간환경 감시기구 마련, 시민이 나서야

지난 5월 14일 옛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대전원자력시설 민간환경 감시기구 법적근거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대전 유성구에는 한전원자력원료(주),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핵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다. 특히 한국원자력연구원 내에는 다목적연구용원자로 ‘하나로’가 있으며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있다. 반경 3km 이내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있는데다, 시설에서는 그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해 그 안정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이에 핵 시설의 안전성을 감시할 수 있는 민간감시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지난 2월 ‘대전유성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조례제정청구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출범했다. 운동본부는 1만 명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조례제정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조례가 제정된다 해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정보 및 자료 공개 요구 권한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보다 독립적인 민간환경감시기구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법 개정 방향에 관해 발제하고 토론했다.

대전 원자력 시설의 특수성, 그리고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최재홍 수륜법률사무소 변호사가 발제를 맡고 성선제 고려대학교 교수, 강영삼 대전유성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조례제정청구운동 본부 운영위원장,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장이 참석한 아래 토론이 오고갔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대전지역 핵시설의 특수성과 민간환경감시기구의 필요성’에 관해 발제했다. 그는 대전의 핵 시설이 타 지역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대전에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보관돼 있다는 것은 공개된 자료임에도,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는 2005년과 2008년에 각각 이를 ‘단독’ 기사로 보도했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는 이유는 학계 및 산업계, 반핵운동가들에겐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사실이었고, 또 활동가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창구가 필요하며 공론화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또 “2011년 하나로원자로에서 백색비상이 발령됐지만 두 시간이 지나서야 언론보도가 이뤄졌고, 그동안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방재대책이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실험 환경에 특화된 방재시스템을 마련해야하고, 고시나 시행령을 바꾸는 방법 등을 통해 민간환경감시기구를 만들고, 그 역할을 포괄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가 ‘유성 원자력 시설에 대한 독립적 원전 안전감시 필요성’에 관해 발제했다. 그는 “미국의 NRC(원자력규제위원회)는 독립성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최소한의 안전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라며 하나로 원자로 주변 주민들이 대피훈련도 받지 않고 있는 등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관련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관해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당국 주요 보직자의 전문성 결여가 원전마피아 문제를 만들어 낸 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감독하는 기관이 없는 점 등에 관해서도 지적했다. 이어 “결국 지자체에 의한 직접 규제 및 감시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시민이 똘똘 뭉쳐서 시민자율 원자력 안전감시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또 감시기관은 객관성, 전문성, 독립성을 유지하고 이에 더해 시민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감시에 참여해야 한다.”라며 규제기능을 지방정부로 이임한 독일의 안전규제 사례를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최재홍 수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민간안전감시기구 설치를 위한 법 개정 방향’에 관해 발제했다. 그는 현행 원전, 방사성폐기물 관련 민간환경감시기구의 설치근거법상 하나로 원자로는 연구용 시설이라는 점,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은 최종처분시설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민간환경감시기구 설치대상에서 제외된다며 현행법 일부개정 또는 신법 제정 방안 등에 관해 죽 검토했다. 이후 그는 “현행 법 체계에서는 모든 원자력 시설에 관한 민간영역의 자유로운 정보접근과 감시체계를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안전법에 민간환경감시기구 설치운영에 대한 근거규정을 신설하고, 가칭 ‘원자력시설 등에 관한 민간환경감시기구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민간환경감시기구 설치근거와 예산지원, 운영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민간환경감시기구 설립 운동 확산되길

발제를 마친 후 박재묵 교수의 사회에 따라 토론을 진행했다. 성선제 고려대학교 교수는 “법 개정과 제정 두 가지 방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유성 지역만을 위해서 감시기구에 관한 법을 만드는 건 처분적 법률로 입법 원칙에 어긋난다. 체계상의 문제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법 개정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강영삼 운영위원장은 “왜 조례부터 만들려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감시기구를 만들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기에 법 개정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조례부터 만들려 한 것이다. 현재 서명인원 1만 명을 내다보고 있다. 장기적으로 설득력 있게 법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장은 “중앙 정부의 사업이라 하더라도 1차적 피해는 지역민이기 때문에 그 지역 주민의 동의를 일차적으로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법적 근거 없이도 조례를 만든 케이스가 서울시에 있는데, 그러자면 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다.”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보공개다. 국회도서관에 비치된 자료를 보면 매년 상당한 양의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정보에 대해서도 공개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정토론을 마친 후에는 지역주민 및 관계자들과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을 보냈다.

박재묵 교수는 정리하는 말을 통해 “법적 근거 마련에 관해서는 원자력안전법이나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재대책법을 개정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안이지 않나 생각한다.”라며 “중요한 것은 감시기구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 영광에서 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를 만들게 된 것도 주민의 운동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주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전 시스템을 갖출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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