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9호] 당신의 시간과 이야기를 기다리는

바다 물살을 타고 바닷가로 폐목재들이 밀려온다.

폐목재들은 소금기에 절어 비와 바람을 맞고

햇볕을 받기를 반복해 더 단단해진다.

무엇으로 기능하다 어떤 이유로

쓰임을 다하게 됐는지는 모른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주위에 서 있는 큰 바위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올곧게 서 있는 나무들처럼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다정한 손길을 만났다.

이야기가 있는 나무와 가구

스툴(등받이 없는 의자) 하나에 여러 이야기가 담겼다. 작은 가구에 쓰인 목재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쓰임으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새 기능을 부여받았다. ‘에코 퍼니쳐 스튜디오 민’은 폐목재를 활용해 가구를 만든다. 버려지거나 쓰임을 다한 것들을 단순하게 재활용하는 것이 ‘리사이클링’이라면, ‘민’은 여기에 새로운 쓰임과 디자인을 더하는 ‘업사이클링’ 방식으로 가구를 만든다.

‘민’을 운영하는 두 사람, 박용선, 안권영 씨는 미술가다. 폐목재로 가구를 만들게 된 것도 미술가의 섬세한 눈길에서부터 시작됐다. 박용선 씨가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다. 안산 대부도 바닷가를 걷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폐목재를 가져다 선반을 만든 것이 시작이다.

“배의 한 부분이었던 배 쪼가리였어요. 폐목재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요. 해류 때문에 어딘가에 있던 게 긴 여행을 하다 바닷가로 밀려오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책상, 걸상 같은 걸로 쓰였던 것들이에요.”

박용선 씨가 폐목재에 끌렸던 이유는 이야기에 있다. 생명이 있는 나무였다가 베어져 어떠한 쓰임으로 어떤 사람과 함께했는지, 얼마 동안 함께하다 쓰임을 다했고 또 어떤 시간을 보내다 자신과 만나게 됐는지, 그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끌렸다.

듯한 심플한 디자인이다. ‘에코 퍼니쳐 스튜디오 민’이란 이름의 ‘민’도 ‘아주 적은, 최소의’라는 의미의 ‘minimum’, ‘꾸미거나 딸린 것이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민-’에서 따왔다.

  

  

01 삽자루 / 버려진 나무 / 물푸레나무 / 천연오일 마감
 330x345x770(mm) / 2014 / C-007

02 서해바다에서 수집한 나무 / 방부목 / 걸레자루 / 천연오일 마감
 560x360x630(mm) / 2014 / W-004

03 서해바다에서 수집한 나무/ 부서진 장 / 천연오일 마감
 620x620x710(mm) / 2014 / D-004

  

  

'예술'과 '가구' 사이

“우리가 가구를 만드는 것도 넓게 보면 미술 작업과 비슷해요. 여러 이야기를 지닌 나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완성된 가구는 그런 의미를 띈 사물이에요. 벽에 거는 그림과 개념상 큰 차이는 없어요. 가구를 가져간 사람에 따라 그림과 가구가 같은 개념일 수도 있겠죠.”

박용선 씨는 ‘민’의 가구가 예술품과 전문가가 만든 가구의 교묘한 사이에 있다고 설명한다. ‘민’의 가구는 가구로 기능하지만, 기업적 논리가 아닌 문화적 언어로 소통하는 매개체다. 그렇기에, ‘잘되는 것’을 선택해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택해 문화에 작은 틈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박용선 씨 혼자 짬짬이 가구를 만들어 오던 것에 지난해부터 ‘에코 퍼니쳐 스튜디오 민’이란 이름을 붙이고 안권영 씨와 함께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은 미술가들의 수익 창출에 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안권영 씨는 오랜 시간 미술 공간을 운영하며 미술가들의 작업과 수익 창출의 연결 지점을 고민해 왔으며 그 지점에서 ‘민’과 함께하게 됐다. 공간 운영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박용선 씨의 아이디어에 함께하며 수익과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미술가 그룹을 만들고 싶어요. ‘민’은 그 그룹을 만드는 하나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하고요.”

안권영 씨는 여러 미술가가 함께 모여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 미술가 그룹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술가들이 자신의 색으로 또는 외부의 요구에 따라 무언가를 만들어 수익을 내는 구조다. 한 그룹 안에서 미술가들은 다양한 형태로 수익 구조를 만든다. 개인의 작업을 브랜드화 할 수도 있고 더 많은 미술가가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다.

올해 ‘민’은 대전경제통상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청년 창업 500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창업 과정에 들어갔다. 현재 가구를 만들 작업실을 꾸리고 가구를 만들고 있으며 온·오프라인 판로를 개발하고 있다.

  

  

예술가가 꿈꾸는 세상과의 접점

“저와 타인의 시각은 같아요. 제가 재미없으면 다른 사람도 재미없는 거거든요. ‘민’도 저희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박용선 씨가 ‘재미’에 관해 설명하며 ‘재밌게 살면 좋은데 벌이가 늘 걱정’이라고 덧붙인다. 안권영 씨가 ‘민’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다르다. 미술가로서 자신의 색으로 뭔가를 만들어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 재미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직접 미술 공간을 운영했던 경험을 통해 둘의 재능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발현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두 사람은 ‘민’에서 서로에게 부족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맞추어 나가고 있다.

막상 판로를 만들려고 하니 타겟과 가격 설정 등 고민할 것이 많다. 어쩔 수 없이 기성품보다는 가격을 높게 책정해야 하는데 그 적정 지점에 관한 고민이다.

“사는 데 더 큰 비용을 들인 만큼 가구에 더 많은 관심을 주길 바라죠. 그리고 오래 썼으면 하고요. 쉽게 사서 적당히 쓰고 버리기보다는 오래 쓰면서 소유한 사람의 이야기가 얹어졌으면 좋겠어요.”
박용선 씨는 ‘민’의 가구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의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구가 갔으면 하고 바란다.

앞으로 ‘민’이 가구로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전시장 혹은 생활공간에서 전시할 수도 있고 어느 카페에서 가구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오프라인 매장에서 만나는 방법도 준비한다. 지금은 스툴이 주를 이루지만, 앞으로 다양한 제품군을 갖춰 나갈 계획이다.

‘민’의 두 미술가는 폐목재를 활용한 가구로 세상과 만나려 한다. 가구로 기능하지만, 기성품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만나 계속 흘러가기를 바란다.

  

  

블로그|studio-min.net


글 사진 성수진 사진제공 Eco Furniture Studio Min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