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9호] 아침을 기다리는 포장마차

메르스의 생소한 공포는 한 발자국 가신 듯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마스크를 낀 채 거리를 다닌다. 중구 대흥동을 마주한 은행동, 스타벅스와 농협 사이 골목에 홍복영 씨의 포장마차가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 메르스 창궐로 한창 시끄러울 때, 홍복영 씨는 잠깐 손주를 돌보는 일로 포장마차를 닫았다. 둘째 손주가 태어나, 첫째 손주를 봐주기로 한 것이다. 늘 같은 자리에 있던 포장마차가 다시 문을 연 날, 반가운 식구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이모, 메르스 걸렸던 거 아니냐, 해외여행은 잘 다녀왔느냐. 홍복영 씨가 웃으며 대답한다. 걸렸다가 나았지, 방콕 다녀왔지.
그 일상적인 공간 안에 '삶'
  
  
아침에 문을 여는 포장마차

홍복영 씨가 은행동 골목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한 때는 7년 전쯤이다. 그 전에 괴정동 롯데백화점 뒤에서 6년 정도 포장마차를 하다 몸이 안 좋아져 병원 신세를 졌다. 오후 두 시에 포장마차를 열어 새벽 네다섯 시까지 꼬박 일하니 몸이 축날 수밖에 없었다. 퇴원하고 나서 한참을 쉬었다. 오래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가만히 있으려니 이제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식구들에게 짜증을 냈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차로에서 포장마차를 처분한다는 글을 보고 전화를 걸어 계약했다. 남편 몰래 벌인 일이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은 엄마만 좋으면 하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집에 혼자 있으려니 힘들어서 돈을 떠나서라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저씨랑 약속을 했어요. 밤에는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일요일에는 꼭 쉬겠다고요.”

일요일에는 꼭 쉬겠다고 약속하고 포장마차 문을 겨우 열었는데, 장사가 잘되는 주말에 쉬는 게 쉽지 않았다. 식구들이 찾아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다 또 몸이 안 좋아져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에는 쉰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것은 딱 네 종류다. 떡볶이, 튀김, 순대, 어묵. 단출하지만 하나씩 먹고 나면 든든한 이 음식을, 사람들은 아침으로, 점심으로, 저녁으로 먹는다. 홍복영 씨는 아침 일곱 시에 나와 음식 준비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침에 장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주변 상점에서 일하는 식구들이, 이모 아침에도 문 열어 주면 안 돼?, 하며 하소연하는 탓에 아침 일찍 준비를 시작한다.

  

  

조용히 골목에 자리를 내어

아침에는 남편 김선섭 씨와 함께 나와 포장마차 주변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한다. 김선섭 씨가 물을 길어 올 동안, 홍복영 씨는 떡볶이 소스를 만든다. 소스를 졸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이 떡볶이다. 두 시간여 준비를 마치면 근처 상점으로 출근하는 식구들이 포장마차를 찾는다. 아침에 인기가 좋은 것은 어묵이다. 전날 술을 마신 식구들이 뜨거운 어묵 국물 한 컵으로 숙취를 푼다.

포장마차를 하기 전에는 식당을 운영했다. 몸이 아파 잠깐 쉬게 된 이후, 가게세나 인건비 걱정이 없는 포장마차를 열었다. 지금이야 홍복영 씨가 ‘식구’라고 칭하는 단골도 많아졌고, 음식 맛이 좋다고 입소문도 났지만, 처음 포장마차를 시작했을 때는 막막하기만 했다. 식당 옆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이웃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어렵게 시작했는데 문을 연 이후에도 고민 거리가 많았다. 구청 단속은 골머리를 앓게 했으며 어떻게 손님을 모을지도 걱정이었다. 떡볶이는 어찌어찌 하는 법을 배워 응용해 맛을 냈는데, 튀김이 문제였다. 집에서 만드는 것처럼 해서는 맛을 내기 어려웠다. 튀김을 잘한다는 중리시장 튀김집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하루 이틀 하다 말 거 아니니까 포장마차 잠시 덮어 놓고 무작정 찾아가서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안 가르쳐 준다고 돌아가라고 하대요. 첫날은 서 있다가 그냥 왔어요. 이튿날 부터는 눈에 들려고 심부름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했어요. 일주일 되던 날, 아주머니가 점심 때 짜장면 사주면서 반죽 만드는 법을 알려 준다고 하대요. 그렇게 배우고 나서 튀김을 만드니까 손님들이 요 맛이 어디서 나오냐고 놀라더라고요.”

처음 은행동에 나왔을 때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주변에서 괜스레 시집살이를 시키기도 했다. 홍복영 씨는 딱 5%만 자신을 내려놓기로 했다.

“주위를 청소하기 시작했어요. 먹는장사 하는데 주위가 지저분하면 그렇잖아요. 저를 안 좋게 보던 사람들도 제가 청소해서 골목이 깨끗해진 걸 알게 됐죠. 제가 안 나오는 날에는 골목이 지저분했던 거죠.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에게 다가갔어요.”

가끔 술에 취해 행패 부리는 사람을 대할 때는 골치가 아프지만, 포장마차 일을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식구가 있는 삶

홍복영 씨가 며칠 포장마차를 비우면 식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한창 포장마차가 잘됐을 때는 줄을 서 먹는 일이 많았다. 식구들이 예약을 해 두면 홍복영 씨가 음식을 싸놓고 나서 가져가라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만큼 장사가 잘되지 않아 예약하는 일은 없지만, 그때 전화번호를 알게 된 식구들이, 홍복영 씨가 오래 자리를 비우면 전화로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해 온다.

식구들에게 홍복영 씨는 동네 이모다. 홍복영 씨는 음식을 파는 것 못지않게 들어주는 일을 중시한다. 식구들의 즐거운 얘기, 힘든 얘기를 들어주며 맞장구도 쳐 주고 인생선배로서 조언도 간간이 해 준다.

“식구들이 어딘가에는 풀어야 하니까 들어줘야지. 머리는 짧아도 그 정도는 해요. 친구들 아니면 말할 어른이 어디 있겠어요. 부모한테 힘들다고 말해 봤자 ‘사회생활이 그렇지!’ 하고 부모가 톡 쏘면 상처받지. 식구들 애로사항 들으면, 네가 이해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같이 욕도 해주고 그러죠. 삐딱선 탄 10대들 보면 야단도 치고 욕도 하고요. 애들이 그게 본심이 아니란 걸 아니까요.”

아침이면,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참 즐겁다. 통 보이지 않는 식구가 있으면, 왜 안 오나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다가 잊고 지내면 언젠가 또 찾아오는 식구들.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 사이에 있는 게 홍복영 씨는 좋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 보기 어려운 식구들도 있다. 포장마차가 오랫동안 열리지 않자 수소문해 홍복영 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온 식구, 겨울에 춥지 말라고 장갑과 수면 양말을 사줬던 식구…. 생각하면 따뜻한 기억이다.

  

  

  

  

어차피 세상은 거기서 거기

“지금은 경기가 없으니 장사가 안돼요. 이곳 상권도 죽었어요. 산내, 둔산, 세종, 유성, 터미널 쪽으로 상권이 많이 퍼졌죠. 은행동까지 나올 일이 없는 거예요. 기성세대들이 다녀야 하는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줄었죠. 어른들 주머니가 좋아야 애들한테 용돈도 주죠. 애들 용돈도 적은 데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잖아요. 예전에는 둘이서 일인분 먹던 아이들이 지금은 천 원을 쪼개 써요. 천 원으로 어묵 하나 먹고 나머지를 떡볶이로 먹을 수 있느냐고 한다니까요. 옛날하고는 다르죠.”

홍복영 씨는 하루하루 다른 경기를 실감한다. 요즘에는 메르스 때문에 손님이 더 줄었다. 포장마차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화 소재도 메르스다. 안 그래도 경기가 안 좋은데 메르스까지 겹친 현실이 야속하지만, 홍복영 씨는 하루하루 느낄 수 있는 행복에 온 신경을 집중하려 한다.

힘들거나 화나는 일이 생기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 기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기도 한다. 가장 멀리 간 곳이 부산, 가깝게는 군산에 간다. 어시장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사 먹으면 기분이 풀린다. 돌아올 때는 반찬거리를 한 아름 손에 안고 온다.

“세상은 다 거기서 거기, 오십보백보예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 자체만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죠.”

하루 일을 마치고 밤 아홉 시쯤 포장마차를 정리한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이상하게 집에 돌아가 만세 부르고 쉬는 때가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다. 한시름 놓고 편히 쉬면서 다음 날을 준비한다.

찾는 식구들이 있어 포장마차는 힘이 닿는 데까지 운영하고 싶다. 팔, 다리가 아파서 하는 수 없이 그만둬야 할 때까지 홍복영 씨는 은행동 한 골목에서 떡볶이를 만들고 어묵 육수를 끓이고 튀김을 튀길 것이다.

“아저씨가 그만하자 하는데 사람이 하던 일을 그만두기가 쉽나.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지. 내가 직장에 매인 것도 아니고. 이 일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정년이 없다는 거예요.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게 정년이지.”


성수진 사진 이수연 성수진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