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1호] 청년,독립을 말하다

‘독립’의 사전적 정의는 네 가지다. ①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②독자적으로 존재함. ③개인이 한 집안을 이루고 완전히 사권(私權)을 행사하는 능력을 가짐. ④한 나라가 정치적으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함. 비슷한 말로는 자주, 자립, 자활, 존립 등이 있으며 반대말로는 의지, 의존 등이 있다. 

작다면 작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20대 후반이라는 나이, 경제적 형편, 집과 직장과의 거리 등을 고려할 때 나와서 살아야 하는 건지, 부모님과 좀 더 살아도 되는 건지. 사전적 정의로 보자면 ③에 해당하는 고민이다. 궁금했다. 다른 청년들은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이번 좌담은 월간 토마토 성수진 취재팀장이 진행했다. 사회적자본지원센터 유현목 인턴사원, 김솔이 청년과 손유범 청년, 월간 토마토 경영전략실 이상윤 사원이 좌담에 함께했다.

            


              
               
혼자 산다고 독립이라 할 수 있나

성수진  오늘 여러분과 독립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서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김솔이  고등학생 때부터 마을 기업, 사회적 기업 활동가로 일했어요. 지금은 활동가, 뮤지션 등 이런저런 일 하며 잡다하게 ‘반백수’처럼 사는 김솔이입니다. 

손유범  경영학과 졸업하고 건축 관련 업체에 취업했어요. 그곳에서 영업했는데 신념과 가치가 안 맞아서 그만뒀죠. 그 뒤로 이런저런 일하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어요. 지금은 필기와 실기 시험, 면접까지 보고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결과 발표 하는데 떨려서 잠도 안 오네요.

유현목  저는 행정학과에 다니는 4학년 학생입니다. 평소 지역사회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방학을 활용해 사회적자본지원센터에 인턴으로 들어갔죠. 나름대로 이곳에서 많은 걸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상윤  월간 토마토 경영전략실에서 일하는 이상윤입니다. 원래 고향은 대구인데 대전에서 대학 다녔어요. 스무 살 때부터 계속 혼자 산 셈이죠. 

(왼쪽부터) 김솔이, 손유범, 유현목, 이상윤

성수진  ‘독립’이라고 하면, 굉장히 많은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먼저 주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흔히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사는 것을 두고 독립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것이 포괄하는 의미는 많겠지만요. 저는 요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나와 혼자 살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 스물아홉인데, 예전 같으면 결혼도 했을 나이고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했을 나이잖아요. 제 주변 친구들도 상당수 독립을 했고요. 혼자 살면서 여러 의미의 독립을 하고 싶은데, 돈도 많이 들 것 같고 여러 고민이 있어요. 여러분은 이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 보고 싶었어요.  

손유범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할머니랑 살다가 할머니도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줄곧 혼자 살았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다시 아버지랑 합쳐서 지금은 아버지랑 둘이 살아요. 오랜 시간 혼자 살아봤지만, 꼭 혼자 산다고 독립은 아닌 것 같아요. 독립이라는 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자신의 가정을 꾸린 시점부터라고 생각해요. 

성수진  그럼 결혼 안 한 사람에게, 혹은 안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독립은 없는 건가요?

손유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혼자 살아 봤지만, 어쩔 수 없이 나를 부양해 주던 가족에 예속되더라고요. 내가 부양할 가족이 있을 때 진정한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솔이  저는 아주 어릴 때 어머니와 인연이 끊겨서 아버지랑 둘이 살았어요. 근데 아버지도 온전한 어른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늘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했어요. 지금도 아버지랑 같이 살긴 하지만, 가족이라기보다는 동거인에 가까워요. 생활비도 반반 부담하고, 감정 교류도 거의 없고요. 같이 살지만 완전한 독립인 거죠. 

성수진 두 사람 얘기 들어 보니까 주거 형태로 독립을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솔이 씨처럼 부모님 혹은 가족과같이 살아도 독립적일 수 있고, 유범 씨처럼 따로 살았지만 독립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상윤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혼자 살고 있잖아요.

이상윤  아버지가 굉장히 가부장적이셔서 집을 떠나고 싶었어요. 방법은 대학을 다른 데로 가는 거였어요. 대구에 있는 대학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대전에 있는 대학으로 온 거죠. 그때부터 쭉 혼자 살았어요. 그래도 독립했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군대 가기 전까지 생활비를 받았으니까요. 그때 깨달았어요. 몸만 떨어진다고 되는 건 아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독립했다고 할 수 있겠다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전세 자금 외에 생활비, 학자금 모두 스스로 해결했어요. 공사장 막일도 하고, 학원 강사도 하고 박물관에서도 일하고…. 진짜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아요. 

유현목  얘기 들어 보니 다들 나름대로 독립적으로 사는 것 같은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물론 대학 때문에 타지에서 지내고는 있지만,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모든 면에서 가족에 의존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경제적 어려움 없이 부모님이 뭐든 해주셨거든요.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왔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독립은 심리적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시키는 것 말고, 제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게 독립인 것 같아요.    

김솔이  아까 유범 씨가 결혼하고 아기 낳는 게 독립 시점이라고 했는데,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는 비혼주의자거든요. 자유연애주의자이고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히 내 두 발을 딛고 서 있느냐,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택해서 살아가느냐, 그게 독립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벌고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성수진  얘기를 쭉 들어봤는데요. 저마다 독립에 관한 생각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네요. 독립을 얘기할 때 경제적인 부분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독립한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고,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겠죠. 각자가 생각하는 경제 활동, 어떻게 벌고 쓸지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먼저 유범 씨 얘기 들어볼게요. 건축 관련 업체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경찰 공무원 준비했다고 했어요. 어떤 과정이었나요? 

손유범 원래는 금융권 가고 싶었는데 제가 취업하던 해에 금융권 취업 시장이 줄었어요. 의도치 않게 건축 관련 업체에 들어가서 영업하게 됐던 거죠. 원래 영업은 하고 싶었어요. 다만, 건축 업계 영업이라는 게 누군가를 패자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마음이 불편했어요. 승진하려고 해도 누군가는 패자가 되니까요. 그런 불합리한 세상에서 독립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경찰이에요. 사명감을 가지고 정직하게 일하면 소신도 지킬 수 있고, 나라를 위한 공헌도 하는 거니까요. 

이상윤  원래 저는 직업과 삶이 별개라고 생각했어요. 직업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수단이라고 여긴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물관에서 일했는데요. 물론 관심 있던 분야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이지만, 점점 쳇바퀴 도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직장에서 돈 벌고, 퇴근 이후의 삶을 즐기자던 생각이 달라졌어요. 하루의 절반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그 시간이 답답하면 삶 전체가 괴로울 수도 있겠더라고요. 직업관을 다시 생각해 본 계기였죠. 그즈음 계약이 만료되면서 자연스럽게 직장을 옮긴 거예요. 즐거운 삶을 위해서요. 

유현목 다들 주도적으로 돈을 벌고 있네요. 저는 그냥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 받고 싶어요. 요즘 정답사회라고 하잖아요. 모든 사람이 정답사회에 익숙하다는 거죠. 저 역시 하고 싶은 거에 대한 욕구를 누르고, 정답에 맞춰 살아가는 거 같아요

김솔이  저는 마을 기업, 사회적 기업 활동가로 4~5년 정도 일했어요. 일하면서 상사에게 대들다가 혼난 적도 많고, 그러다 잘린 경우도 있어요. 다들 열악하다 보니 월급도 적어요. 문득 그런 생각 했어요. 난 충분히 젊고 성장 가능성도 많은데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지? 고민해 보니까 여러 사람과 공존하면서 살고 싶은 거더라고요. 스스로 그게 행복하다고 느꼈나 봐요. 얘기가 조금 다른 쪽으로 가는데,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버는지도 중요하지만, 저는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어떻게 어울리며 살 것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수진  좋은 이야기 해 주셨네요. 어떤 가치를 찾아 돈을 벌고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벌고 쓸지를 고민하는 것도 독립을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꼭 독립해야 하는 건가
                     

성수진 처음에 여러분을 섭외할 때, 현목 씨는 아직 학생이라면서 조금 주저했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들으며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자리에 나와 주셨어요.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눠 보니 어땠나요?

유현목 사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어요. ‘부모님과 따로 사는 것’ 정도 의미의 독립 이야기가 오갈 줄 알았어요. 다른 분들 통해 독립의 다양한 의미도 생각해볼 수 있었고,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꼈어요.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성수진 팀장님은 어떠세요?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성수진 저도 똑같이 정답사회에서 중·고등학교 다녔어요.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에 따라 공부 잘해서 교사 되려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시험에 몇 번 떨어지고 다른 걸 해 보려고 하니 할 게 없었어요. 빵집이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는 시기를 보냈어요. 예전부터 글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한 거예요. 일을 시작하고 나니, 기자가 글을 쓰는 직업은 아니란 걸 알게 됐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도 계속 고민하면서 살아요.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요.

이상윤 미국에서도 평균적으로 독립하는 나이가 27살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말하는 독립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갖기까지의 나이인 거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나이가 그때니까요. 

김솔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긴 한데 다른 점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주입식 교육을 하잖아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결정하고요.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독립을 준비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는 거죠. 20년 넘게 시키는 대로 살다가 갑자기 사회에 나오는 거예요. 

손유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학도, 대학다운 대학으로서의 독립이 필요할 것 같아요. 대학이라는 게 취업 아카데미는 아니잖아요. 대학을 자아실현의 장으로 조성했을 때 사회도 발전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유현목 지금까지 이야기 나누면서 꼭 독립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상윤 독립이라는 게 세상에 홀로 선다는 얘기잖아요. 왜 굳이 홀로 서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물론 언젠가는 홀로 설 수밖에 없겠죠. 20살이든 40살이든 언젠가는 말이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을 때일 수도 있고, 또 어떤 특정한 계기로 독립적인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요. 우리 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경쟁을 부추기고, 경쟁만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하잖아요. 사실 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경쟁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협동과 협력도 있어야 하는데 다들 경쟁만 얘기하는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만 봐도 남한테 피해를 안 끼치려고 해요. 저는 덕도 주고 싶지만, 피해도 끼치고 싶어요. 서로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 채우고, 그렇게 섞이면서 살았으면 해요.

김솔이 저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다만, 하고 싶은 것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걸 선택했을 때 그에 따른 책임이 있어야 넘어져도 감수할 수 있거든요. 그런 게 독립이겠죠. 어쨌든 오늘 얘기 들어 보니 다들 대단한 거 같아요. 다들 치열하게 사는구나, 그런 생각 했어요. 

성수진 처음 이야기 주제를 잡았을 때는 ‘독립’이라는 단어의 좁은 의미에 관해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만나서 이야기 나누어 보니 이 주제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독립’에 관해 애써 말하는 게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부모에게서 독립, 사회에서 독립, 온갖 것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겠죠.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다른 고민을 해 보게 됐네요. ‘독립’의 반대말이 ‘의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더 고민하고 같이 이야기 나눌 시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즐거웠어요.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 성수진 사진 송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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