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1호] 미술관을 만나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듣는 미술관 이야기

중간계급 출신 수집가들이 소유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곳, 물질의 백과사전 같은 곳, 호기심을 부르는 물건을 수집한다고 해 사람들은 이곳을 ‘호기심의 방’이라고 불렀다. 16세기 중반부터 형성해 17세기에 유럽에서 전성기를 누린 이곳은 박물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다. 8월 12일과 13일, 공감만세 4층 여행정거장에서 공감만세 프로젝트 매니저 전한별 씨가 진행한 강연에서는 호기심의 방부터 우리가 아는 박물관, 미술관까지 다양한 모습의 ‘미술관’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술 작품을 만나기 쉽게 모아 놓은 곳
전한별 공감만세 프로젝트 매니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뜻하는 ‘museum’은 모든 인간의 지식활동과 예술활동을 주관하는 신을 뜻하는 ‘muse’에서 파생한 낱말이에요. 박물관은 영리를 취하지 않고 사회와 대중의 발전에 기여하는 상설기관이잖아요. 이 기관의 설립 의도는 인류와 인류를 둘러싼 환경의 유무형 문화재를 연구, 교육, 유희적 목적으로 취득, 보존, 연구, 전시하면서 후세에 전달하는 데 있어요. 그런데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작품이 그곳에 들어오는지 안다면, 미술관을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17세기 이전에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건 사람들과 먼 이야기였다. 예술 작품을 누리는 특권은 왕이나 귀족에게만 주어졌다. 자신이 사는 집을 장식하거나 그곳에 초대한 손님에게 자랑하기 위해 예술 작품을 사들였던 귀족은 그렇게 수집한 물건을 하나씩 집에 모아 두었고, 16세기 중반에 ‘호기심의 방’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해 17세기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엘리아스 애쉬몰이란 사람이 호기심의 방을 기부해요. 그 호기심의 방에는 말 그대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 가득 찬 곳이었어요. 17~18세기의 계몽사상은 이성이란 걸 찾기 위해 노력해요.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기들끼리만 즐기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식에 대한 욕구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사상이 퍼지기 시작하는 거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권이 사라지고, 루브르는 왕궁의 기능이 사라졌다. 루브르박물관이 가장 현대적인 미술관의 근간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이 스스로 예술 작품과 예술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로 만든 미술관이라는 것이다. 

                

                       

도시의 미술관은 이렇게 자리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미술관이 무료로 개방한다고 하더라도 대중화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에요. 미술을 접하는 게 어려운 사람은 아무리 봐도 재미가 없단 말이죠. 그런데 미술관은 그곳에 오는 모든 대중을 이해시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게 아니면 무료화 자체는 큰 의미가 없어요.”
더 많은 대중의 이해를 위해 루브르 박물관은 웹사이트에 공간과 작품에 관한 자세한 소개를 덧붙였다. 프랑스 릴에 있는 릴 미술관 역시 더 많은 사람이 미술관에 방문할 수 있도록 미술관에서 전시 외 다양한 체험을 진행한다. 


“밸런타인데이에 밸런타인데이의 밤을 주최한다거나 지역 대학과 연계해서 대학생의 밤이 열리기도 해요. 대학생의 밤에는 미술대학 학생들을 위해 누드 데생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거죠. 대학생들이 실제로 누드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린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모델을 구하기도 어렵고, 비용이 비싸니까요. 미술관이 미술관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역과 연계하고 사람들이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하는 거예요.”


전한별 씨는 미술관을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미술관을 지을 때부터 위치에 관해 생각해야 하며 시의 환경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루베에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이었던 곳이 2002년 미술관으로 재개관해요. 산업도시로서 가난한 노동자가 많았던 도시인 루베에 처음 수영장을 지었던 이유는 위생 문제였어요. 수영장이 있으면 한가한 시간에 놀이도 되고, 노동자들이 목욕도 공짜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위생도 지키면서 스포츠도 즐길 수 있는 곳이 수영장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안전문제로 문을 닫았던 곳이 미술관으로 재개관해요. 수영장이었던 때 그곳을 다니던 한 할아버지가 수영장을 추억하며 쓴 편지를 미술관에 보내요. 항상 이 수영장에서 놀았고, 몸을 씻고 나오면 하루가 행복했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2008년, 할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방문했을 때 수영장 아트숍에서 판매하는 엽서에서 자기 얼굴을 발견해요. 이곳에 살던 많은 사람에게 수영장이 추억을 담는 역할이었던 거예요. 미술관으로 재개관하면서 수영장의 모습을 일부 남겨 놓았고, 미술관 역시 누구에게나 어떤 추억을 줄 수 있는 장소로 자리하게 돼요. 도시의 수많은 미술관 역시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추억을 줄 수 있는 장소로 자리해야 해요.”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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