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9호] 7월 특집

“한 시 반에 오정동 농수산물시장 입구에서 만날까요?”라는 말이 마치 이따 오후에 만나자는 말처럼 느껴진다는 선배의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 이른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멀뚱거리다 뒤척이기를 반복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열두 시를 훌쩍 넘겼다. 침대에 늘어 붙은 몸을 힘겹게 주워서 일으켰다. 6월 24일 오전 한 시, 집 밖으로 나오니 생각지 못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낮 동안 머물던 해가 자국을 남긴 것처럼 더위가 지나가지 않은 새벽이었다. 거리에 나오자 자전거를 끌고 길을 가는 행인 둘의 모습이 보였다. 한가로운 주말 저녁 시간의 풍경 같았다. 날씨가 좀 덥지 않으냐는 질문에 택시기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졸음을 가득 싣고 오정농수산물도매시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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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한 시를 오후 한 시처럼 보내는 사람들

오정농수산물도매시장은 대덕구 오정동에 있는 공영 도매시장이다. 1987년 11월 2일 개장했다. 개장 후 20여 년만인 2010년 현대화사업을 시작해 2013년 10월 완료했다. 대전청과(주)와 농협대전공판장, 한밭수산(주)가 입주해 있다. 경매장을 지켜보려고 두리번거리다 몇 번씩 비키라는 말을 들었다. 채소 상자가 줄지어 선 골목 사이사이부터 길이란 길 모두 짐을 실은 차, 오토바이, 수레가 지나다녔다.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방해꾼이 될까 봐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모든 것이 휙휙 지나다녔다. 갑자기 감돌기 시작한 한기는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각종 채소가 실린 차, 오토바이, 수레 등을 끌고, 타고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그곳에 실린 채소는 박스채로 실려있기도, 몸을 드러내고 바람을 맞으며 실려있기도 했다.

“37,400원 나왔어. 아줌마야~ 어이구. 못 살겠다.”

경매를 막 마친 이들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경매결과를 중계한다. 한쪽 경매를 마치면 다른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바쁘게 밤을 휘젓는 사람들 틈에서 눈에 감기던 졸음이 가셨다. 오정농산물도매시장의 채소 경매는 새벽 한 시부터 시작한다. 여러 품목을 사야 하는 중도매인들과 농수산물 경매사 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품목마다 조금씩 시차를 두고 경매한다. 비슷한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경매는 경매사끼리 터뜨리는 방언이 겹치지 않도록 떨어져 진행한다. 경매하는 장소도 곳곳이고 시간대도 다르지만, 매일 새벽 한 시 출근하는 중도매인들은 몇 시에 어디에서 어떤 경매가 이루어지는지 빠삭하다.

“저쪽에서 지금 고추 경매하네. 양파는 세 시쯤에 저쪽에서 할 거고.”

아저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저쪽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넓기만 한 시장에서 지점을 콕 찍을 수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둘러본 시장 안에는 사람보다 채소와 과일이 더 많이, 높이 쌓여 있었다.

  

  

농산물 경매시장의 시간

부지면적 68,499㎡에 중도매인 435명이 등록된 오정농수산물도매시장에 일 평균 출입차량은 약 6천 대다. 수많은 사람과 과일, 채소, 수산물이 이곳을 드나든다. 옥천, 상주, 추부, 청원, 청산, 공주, 나주, 청양, 괴산 등 수많은 도시의 이름이 채소의 ‘고향’이라고 이름 붙어 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수많은 도시의 흙과 바람, 물과 사람의 손길을 만날 수 있다. 모두 그곳의 그것들이 기른 농산물이다.

“날씨가 가물어서 물량이 많이 없어. 물량도 없으니까 가격은 자꾸 오르고. 지금 이건 많은 것도 아니야. 원래 이맘때면 빈틈이 없어야 하는데, 널널하잖아. 양파, 무, 대파, 오이 같은 게 30~40%가 줄었어. 메르스 때문에 장사도 잘 안돼. 경기를 제일 많이 타는 데가 이런 데야. 지금은 사람도 별로 없는 거야. 요즘은 대형마트 같은 데도 잘 안 되잖아.”

무전기처럼 생긴 물건을 손에 쥔 한 중도매인의 말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것처럼 오전 열두 시면 시장에 나와서 오후 열두 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열두 시에 집으로 돌아가 잠깐 까무룩 잠들었다가 일어나고, 또다시 까무룩 잠들었다가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지만 벌겋게 충혈되는 눈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라며 웃는 아저씨의 눈에 빨간 실핏줄이 어려 있다. 아직 새까만 바깥 풍경과 달리 경매장에는 환한 불빛이 계속 머리 위로 떨어졌다.

경매장 전체에 380여 개 점포가 있다. 경매에 참여한 중도매인이 점포에서 장사까지 함께하는 경우다. 대전청과(주) 점포는 3년에 한 번씩 자리를 뽑는다. 내년이면 다시 자리를 뽑는 해다. 매출이 좋으면 좋은 자리에 앉는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문 앞, 경매장 근처 등이 좋은 자리다.

  

  

메르스, 장마 등 ‘때’가 좋지 않은 요즘

새벽 세 시를 넘긴 시각, 점포 대부분 문을 열었다. 중도매인들은 경매에서 산 채소를 나르고,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문 닫은 점포도 곳곳에 보인다. 존재하는 문이 있는 건 아니고, 천막으로 뒤덮인 곳이 아직 개점하지 않은 점포다. 문 열린 점포를 기웃거리자 상인들은 청과류 가격을 하나씩 말해준다. 도소매를 함께 거래하는 점포가 있고, 도매만 거래하는 점포가 있다. 좋은 자리를 배정받으면 소매를 함께할 수 있다.

경매장에는 채소 막바지 경매가 한창이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의 손에는 무전기처럼 생긴 물건과 휴대전화기가 함께 들려있다. 눈은 박스 안에 든 채소를 살피고, 손은 기계를 만졌다가 채소를 만졌다가 분주하다. 눈 마주치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하는 경매는 옛날에 사라졌다. 1999년 4월 15일 MBC 뉴스에 대전 대덕구 오정동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무선 응찰기가 첫선을 보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시 MBC 뉴스는 “전자식 경매의 장점은 무엇보다 경매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그때는 싸움도 잦았지요. 경매사도 사람인데, 손가락으로 하니까 아무래도 감정이 있잖아요. 미운 사람이 낙찰받지 못하게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잖아. 지금은 그런 게 없죠. 다 기계로 표시되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니까.”

채소 경매를 하던 중도매인의 이야기다. 무전기처럼 생긴 물건은 ‘무선 응찰기’라고 부른다. 전자식 경매 이후 하나 더 변한 것은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의 연령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취업하기 힘들잖아. 부모님 따라서 한두 번 나오다가 같이 일하게 되는 거지. 다 컴퓨터로 하니까 젊은 애들이 하기에 좋아요. 옛날에는 눈치 없으면 하질 못하는 게 이거였잖아. 잘만 하면야 쏠쏠하게 벌어. 많이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억 단위씩 거래하고 그래.”

   

   

익숙한 사람, 모습, 시간이 있는 곳

벽에 걸린 전자시계가 ‘5:00’이라는 빨간 글씨를 보여준다. 한동안 조용했던 경매장에 또다시 경매사들의 소리가 들린다. 경매사들은 자신만의 언어 사이사이로 채소 이름과 낙찰자의 이름 등을 집어넣었다. 처음엔 그곳에서 경매에 참가하는 중도매인 모두 경매사의 방언을 어떤 ‘뜻’으로 이해하는 줄 알았다. 몇 번씩이나 물어보아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이제 익숙하니까 뭔 말인지 다 알아들어.”라고 말했다. 아무리 오래 있다고 해도 어떻게 소리로만 이루어진, 예를 들자면 ‘아부라어어니아히야’와 같은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죽 지켜보다가 이해한 건 경매사의 방언은 그냥 경매사마다 개발한 자기만의 언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알아듣는다고 말한 건 중간중간 말하는 가격과 이름 같은 것이었다. 경매사마다 자신의 언어를 개발해 자신만의 리듬으로 경매를 이끈다. 어떤 경매사의 방언은 랩처럼 들리기도 했고, 어떤 경매사의 방언은 히스테릭하게 들리기도 한다.

경매사 자격증 시험은 1년에 한 번씩 있다. 국가전문자격증으로 응시 부류에 따라 청과, 수산, 축산, 화훼, 약용으로 구분한다. 1~2차 시험까지 합격해 경매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경매기록, 보조경매사, 경매장 안내와 관리 등으로 5~10년 정도 현장실무 경력을 쌓아야 한다. 농산물 경매장에서 경매를 주관한 사람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다. 경매사는 생산자와 출하자의 대변인이기 때문에 물건의 가격과 품질을 정확히 알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경매사마다 재미있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새벽이니까 빠르고 흥미롭게 끌고 가려고 다들 방언을 하는 거죠. 물건은 좋은데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낙찰을 받거나, 좋지도 않은 물건인데 높은 가격으로 사면 물건 보고 사라고 화를 내죠. 이제는 경매사들도 매일 보니까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어요.”

다섯 시부터 시작하는 과일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온 정찬구 씨의 이야기다. 경매하기 전 어떤 물건이 좋은지 먹어 봐야만 알 수 있는 과일이 있으므로 세 시면 경매장에 나온다. 복숭아나 자두 같은 건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산딸기나 포도, 거봉 같은 건 먹어 봐야 안다. 박스 안에 있던 거봉 하나를 건네며 “막 먹으면 안 되지만, 조심스럽게 먹으면 돼요.”라고 말한다. 다섯 시가 넘어가자 매실, 자두 등이 경매를 시작한다. 그렇게 다섯 시에 시작한 과일 경매는 오전 시간 내내 이어진다. 어둠이 간 자리에 어슴프레한 새벽이 왔다. 복숭아 경매를 하던 한 중도매인이 “여기 뭐하러 왔어요?”라고 물었다. “여기 사람들 다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여기에서 둘만 이방인인 걸 모두 알걸?”이라고 말했다. 이방인이라는 낱말을 듣자 새벽에 적응하지 못한 얼굴 두 개가 시장 곳곳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모습이 그렇게 보였을 것 같았다. 날이 밝자 새벽부터 봤다는 중도매인도 말을 붙이고, 빤하게 쳐다보던 사람들의 얼굴도 선명하게 보였다. 벽에 붙은 전자시계의 시간은 계속 흘렀다. 조금만 지나면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이수연 사진 성수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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