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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1호] 그 이름만큼 다양한 자유가 거리에 스며들길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를 큰 은행나무로 보았을 때, 으능정이 거리는 크게 세 줄기로 나눌 수 있다. 으능정이 거리의 중심, 스카이로드가 하늘을 덮은 중앙로 164번길이 중심 줄기이다. 그 옆에는 그 굵기가 거의 중심 줄기와 비슷한 중앙로 156번길이 있다. 156번길은 밀라노 쇼핑몰을 끼고 돌면 펼쳐지는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 술집, 의류 매장 등이 발길을 멈추게 하는 매우 번화한 거리이다. 그리고 으능정이 거리에서 대전천 방향으로 한 블록 나아가면, 또 다른 줄기인 ‘중앙로 170번길’이 나온다. 이곳은 과거 중앙극장이 있었을 당시 유동인구가 매우 많고 상점가가 번성했던 거리였지만 지금은 18개동 건물의 공실률이 55%에 이르는 침체된 거리다. 확실히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으니 새로운 점포가 들어오려고 하지 않고, 상점이 얼마 없으니 사람도 굳이 이곳에 오려 하지 않는다. 악순환이었다. 156번길과 170번길. 으능정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두 길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다.
제막식
중앙로 170번길의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은행동 건물주 협회에서는 지난 8월 13일 오후 두 시, ‘은행동 멀티프리존 조형물 전시 및 문화축제’란 긴 이름의 행사를 열었다. 프리마켓, 가족밴드공연, 힙합공연, 김동현UFC선수사인회 등의 프로그램들도 나름 알차게 준비했다. 제막식은 흰 천으로 덮인 조형물 앞에서 열렸다. 제막식에는 박용갑 중구청장과, 박병철 시의원, 송복섭 대전도시재생지원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조형물 앞에 놓인 30여 개의 의자를 채운 사람은 대부분 은행동 건물주 협의회 및 상점가 상인회 사람들과 이번 행사 관계자들이었다. 시민들에게는 홍보가 덜 된 듯 했다. 하지만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전체적인 분위기는 생기가 넘쳤다. 박용갑 중구청장의 축사가 끝나고 모두의 박수 속에 흰 천이 벗겨지며 조형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손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무언가 약속을 하는 듯 한 모습의 조형물, ‘미래’란 이름의 조형물이었다. 거리를 둘러보니 듬성듬성 떨어져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다섯 개의 조형물이 보였다.
감성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거리는 항시 문화행사와 조형물 전시(가 열리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감성을 창조하는 거리입니다. 오세요! 보세요! 즐기세요!’
170번길의 입구에 걸린 현수막의 내용이다. 건물주 협회에서 이 거리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분명히 감성이 흐르는 거리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건물주 협회 관계자가 밝힌 앞으로의 계획은 감성이 흐르는 거리를 만드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중앙로 170번길은 정부와 시·구의 지원을 받아 그 모습을 탈바꿈할 예정이다. 우선 2억 5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거리의 하늘을 루미나리에로 장식하고, 시멘트를 걷어내고 새로운 바닥을 까는 데 2억 6천만 원 정도의 예산을 쓸 것이라고 한다. 하드웨어를 새롭게 바꾸고 그 속을 프리마켓이나 조형물 전시, 공연 등 소프트웨어로 채우겠다는 알찬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너무 진부하여 근본적으로 감성을 돋우기에 어렵다. 홍대를 보라. 홍대 문화가 어디 돈으로 탄생하였는가? 저렴한 임대료, 대학가라는 특성을 기반으로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자체적으로 성장한 문화가 아니었는가.
한 건물주는 “6개월, 길게 1년이라도 상점주에게 무상 임대할 생각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정도의 의지라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 20여 동 되는 건물들 중 단층인 건물은 없다. 전부 3층, 4층 이상의 소규모 빌딩이며, 이 건물의 윗부분은 대부분 비어 있다. 이 공간을 연극, 음악, 디자인, 건축, 미술 등 다양한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무료 임대하는 것은 어떨까? 빈 공간에 억지로 점포를 임대해 수익성을 기대하기보다, 공간을 필요로 하는 학생과 청년 및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임대한다. 이것은 ‘옛 중앙극장통’을 대전의 홍대거리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소프트웨어다. 거리에 이야기를 만들고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단발적인 행사로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람들은 대전에 문화가 없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없다는 말이다. 2억 5천만 원의 루미나리에가 다른 도시의 수많은 루미나리에 보다 특별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2억 6천만 원의 새로운 바닥이 언제고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을 것이다. 진부한 무언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꿈꾸고 또 꿈꾸는 창작에의 열정이다. ‘옛 중앙극장통’에 이런 열정을 위한 공간이 생겨나길 바란다. 건물주들이 팔 걷고 나선다면, 더욱 실현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