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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1호] 사람냄새나는 도시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명함 뒤편에 쓰인 그의 직책은 수도 없이 많지만, 지금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직함은 (사)대전디자인연대 사무처장, 선화동착한거리팬클럽 사무처장, (주)쪽지가게 대표이사다.
“(사)대전디자인기업협회 사무처장을 맡은 2013년 무렵 대전시청 이옥선 사무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상대적으로 낙후된 선화동에 골목재생 사업의 하나로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해 달라는 거였죠. 그 무렵 선화동 음식특화거리가 착한가격거리로 바뀌었고, 저는 여기에 동네 특성을 반영한 스토리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체통 스토리간판, 착한거리 행복엽서, 착한거리 행운카드, 행복을 배달하는 선화동 우체부 등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그가 행정기관과 이런저런 일을 벌이는 동안 선화동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이 일었다. 시간이 지나 가보면 오랫동안 장사를 하던 상인이 쫓겨나고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그는 지역의 독특한 콘텐츠와 함께 그 지역 주민과 건축주의 주도적 참여가 있어야 골목재생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건물주를 만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중간자 성격의 활동가 모임을 구상했다. 선화동착한거리팬클럽(선착순)을 만든 배경이다.
“선화동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보이면 건물주들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작은 일부터 해보자고 생각해서 첫 번째로 시작한 게 매주 수요일 계룡문고에서 여는 ‘숨바꼭질 콘서트’예요. 가수 인주니로 활동하는 대전시청 여인준 주무관이 취지에 공감해 공연자로 참여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 하려는 건 ‘바리바우 명소화 사업’이에요. 바리바우는 옛 선화3동 지방법원 동쪽 놀이터에 있던 바리 모양의 바위를 일컫는데 선화동 지역 옛 지명인 발암리(鉢岩里)도 이와 관련 있어요. 바리바우가 있던 연못에서 마을 사람들은 칠월칠석이나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평안을 빌었다고 해요. 이러한 원천 스토리에 착안해 선화동에 숨겨진 바리바우 보물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착한거리 곳곳에 열두 가지 보물을 설치하고, ‘도심 속 보물길 투어’, ‘바리바우 보물지도’ 등을 기획해 지역상권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하는 거예요. 현재 기획안을 제안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중이에요. 잘 된다면 좋을 텐데요(웃음).”
김관기 사무처장은 골목재생과 관련하여 인근 대흥동과는 다른 선화동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스토리도 건축물도 없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없다는 그 사실에 주목한다.
“대흥동이나 은행동과 같은 인프라도, 멋진 건축물이나 공간도, 선화동에는 없어요. 원도심의 낙후된 평범한 골목에 불과하죠.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이 중심이 돼서 이웃사촌 같은 관계도 만들고, 일상적으로 축제도 벌이고 했으면 좋겠어요. 도심 속이지만 마치 농촌처럼 아늑하고 사람냄새 나는 도시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야 한다고 봐요.”
한편 대전디자인연대 사무처장으로서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대전디자인센터 건립 문제다. 2013년 대전디자인센터 건립 계획이 발표된 이후, 지역 디자인 전문가들의 뜻과 다르게 한국디자인진흥원 산하기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지역디자인센터 성공을 위해서는 민간의 참여가 우선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고, 지난 5월 대전충청지역 디자인연대조직인 대전디자인연대를 설립했다. 대전디자인연대는 대전디자인센터의 성공적인 건립을 위한 민간 지원 역할을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인터뷰를 정리하려던 찰나 책장 한 칸에 가지런하게 진열된 색색의 편지지들이 눈에 띈다.
“아, 이거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주)쪽지가게에서 디자인한 쪽지 편지예요. 점점 사라져가는 손편지의 감수성을 재밌게 접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서 고안했어요. 편지지 안에는 쪽지편지를 접는 네 가지 방법도 안내해 뒀어요. 그 중 꼭지쪽지는 제가 직접 고안한 접기 방법이에요. 제가 한 번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3년 전 (주)쪽지가게를 시작하면서 디자인에 관한 고민을 발전시켰다는 그. 국문과 출신이지만 비전공자이기에 다른 시각과 아이디어를 발휘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디자인의 영역은 정말 넓어요. 벽화를 통해 범죄율을 낮춘 염리동 소금길 사례처럼 디자인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죠. 물론 지속이 되려면 주민 주도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