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9호] 화려한 화장 아래 민낯을 가리다

‘낙서(?)’는 기록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마을 벽화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희귀성이 주는 신선함이 이제 많이 약해졌다. 벽화는 ‘공공 미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하는 분야다. 마을 주민 사이에 공동체성을 확보하며 그 동력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주변 조망 등 다른 요소와 결합해 관광상품화 되면서 마을에(혹은, 특정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재개발 등을 앞두고 있어, 노후한 건축물에 많은 비용을 들일 수 없는 조건일 때 임시방편으로, 환경미화적 측면에서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특정 색깔을 활용해 그린 벽화는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를 보인다는 주장도 나온다. ‘방범 기능’을 고려해 벽화를 선택한 것이다.

또 사회공헌 활동 아이템으로 벽화 그리기는 선호하는 아이템이다. 다양한 사회공헌 그룹에서 벽화 그리기를 진행한다.
반면에 페인트라는 성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상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페인트가 벗겨지고 흘러내리는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벌이는 벽화 사업은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이와는 별도로 심미적 측면에서 벽화 수준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고 복사기로 찍어낸 듯 비슷한 톤을 보이는 천편일률적 벽화(예를 들면 천사 날개)에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객체에 머물며 수혜적으로 이루어지는 벽화 그리기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모든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벽화 바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동천 주변에도 대형 벽화 등장

“마을이 화사해지고 좋잖여.”

벽화 옆을 거닐던 주민은 한 목소리로 마을을 환하고 밝게 만든 벽화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만난 주민 사이에 이견은 없었다. 대동천은 대전 동구 식장산에서 발원해 판암동과 신흥동, 대동을 지나고 소제동에서 가양천을 합한 후 삼성동에서 대전천으로 흘러든다.

소제동 구간을 흐르는 대동천 위에는 철갑교와 가제교를 놓았다. 그 사이 구간 좌안과 우안, 대동천과 접한 주택 벽면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대략 400m 구간이다. 지난 5월 31일에 ‘KT&G 상상유니브’와 함께 벌인 행사다. 단 하루만에 벽화를 완성했다. 대전 동구 중앙동 전용희 담당은 “이번 벽화 그리기를 위해 대전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모여든 ‘KT&G 상상유니브’ 자원봉사자와 대전 동구청 관계 공무원 등 500여 명이 아침 일찍부터 무더위를 견디며 땀을 흘렸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동천 좌우안 벽화 그리기는 이에 앞서 진행한 ‘도심 속 아름다운 연꽃하천 조성 사업’과 연계한 사업이다. 대전광역시 동구는 올해 초 “대전천과 대동천 수해상습지 개선사업과 연계한 특화사업으로 ‘아름다운 연꽃 하천조성’과 초지공원 내 ‘이야기가 있는 옹벽꾸미기’ 등 자연과 어우러지는 친환경 하천을 조성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 계획대로 철갑교와 가제교 사이에는 이미 연꽃 식재를 마쳤다. 이 연꽃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심어 두는 데도 많은 노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넓게 퍼진 연꽃잎이 대동천 물결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제법 운치 있다. 이번 장마에 쓸려가지만 않는다면 잘 자리잡아 아름다운 풍광을 구성하는 데 한몫할 듯싶다. 옹벽은 아니지만 둑방 위에 대동천을 면하고 있는 주택 담장에 벽화를 그려 넣은 것도 동구의 이런 큰 정책 안에 녹아 있다. 하루만에 끝내버린 벽화 그리기에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함께했지만 집 주인에게 동의를 얻는 과정부터 제반 준비를 하는데 동구 중앙동 공무원 등의 노력도 컸다. 이외에도 동구에서는 500만 원 상당의 페인트와 붓 등을 지원했고 동구 자원봉사센터와 공무원 노동조합에서 참가자에게 점심 도시락을 제공하는 등 여러 사람과 기관의 도움도 이어졌다.

그 결과로 탄생한 소제동 대동천 주변 벽화에 관한 평가는 크게 둘로 나뉜다.

대전 동구 중앙동 관계자는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대동천을 따라 출근하거나 운동하는 주민 만족도는 무척 높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벽화 완성도’가 좀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라고 전했다.

주민과 전문가 사이의 간극은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소제동 대동천 주변 벽화 그리기는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소제동 400m 구간 벽화를 완성한 뒤에 관계 공무원은 여기저기서 문의를 많이 받았다. 주로 기관이었다. 벽화 그리기에 함께해 줄 수 있는 기관이나 자원봉사자 모집 등에 관한 문의였다. 사실, 그 많은 자원봉사자를 확보해 그 많은 분량을 그렇게 적은 비용으로 생산(?)해 낸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이번 소제동 벽화 만큼의 분량을 그려내는 데 제대로 비용을 들였다면 제법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이번 소제동 벽화에 ‘아쉬움’을 표한 ‘전문가 그룹’이 단순하게 심미적 측면에서 완성도에 관한 부분만 놓고 평가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 본인이 처한 상황과 욕망이 투영된 평가였겠지만, 소제동에 사무실을 두었으니 넓은 범위에서 주민이라고 볼 수 있는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의 평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 대표는 소제동 벽화를 보며 ‘맥락’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소제동이 담은 이야기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디자인적으로 표현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그 짧은 시간과 그 비용으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지만 조금 더 치밀하게 기획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벽화가 담은 내용 중에는 넓은 호수(소제호)와 기차 등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벽에 ‘우암 송시열’이라고 비눗방울 문양 안에 써 넣은 글씨 역시 이런 노력에서 나온 결과물이겠지만 전문가들로부터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데 결정적인 부분이었다. 너무 과할 정도로 쉽게 표현했다.

벽화가 지닌 특징 중 하나는 공공성이다. 공공미술로서 목적을 분명하게 띠지 않더라도 그렇다. 그림을 그려 넣은 담장(벽)은 공공기관이 아닌 이상 개인 소유물이다. 사유재산이고 이 때문에 벽화 사업을 벌이기전 건물주에게 일일이 동의서를 받아 둔다. 그렇더라도 벽화를 그리면서 전체적인 풍광에 제법 큰 영향을 끼치니 벽화가 온전히 건물주의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이런 측면 때문에 태생적으로 벽화는 공공성을 띤다. 벽화 제작 비용을 건물주에게 물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니 건물주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은 반쪽 합의에 불과하다. 낡은 주택을 관리하기 위해 페인트 도색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만큼 접근도 신중해야 한다.

문제는 벽화가 지닌 이런 특징에도 불구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격한 벽화 그리기 바람이 분다는 점이다. 이미 소제동에도 이곳 대동천 주변 말고 앞서 진행한 벽화가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대동은 물론이고 중촌동 부사동 등 공공재원이 투입된 곳에는 어지간하면 벽화가 남아 있다. 담쟁이 넝쿨 담벼락 타고 오르듯이 도시 담벽이 하나둘씩 알록달록한 화장품으로 민낯을 가린 채 숨는다. 깊은 기획과 고민 없이 도시를 뒤덮어가는 벽화는 환해 보일지 모르지만 도시가 태어나서 오랜시간 쌓아 놓은 이야기마저 감춰버릴 수 있다. 벽화를 그릴 것인지, 어떤 벽화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반듯반듯 똑같은 모습으로 삐죽삐죽 올라가는 아파트를 두고 ‘성장’을 증명하는 표식이라도 되는 것마냥 여겼던 우리가 지금은 ‘도시 디자인’을 고민할 정도는 되었다. 도시 전체 경관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관해 인식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 자치단체는 디자인 관련 전문가를 위촉하거나 관련 부서를 두고 도시 경관에 영향을 끼치는 사안에 관한 검토를 진행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제는 벽화도 도시 전체 경관과 기능 등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통제가 필요하다. 벽화가 만들어 내는 경관의 공공성을 생각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때 묻고 낡은 공간을 화사하게 만드는 것은 벽화 말고도 많다.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 공간에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좀 더 창의적으로 말이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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