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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9호] 모두의 정원을 남기고 우리는 떠납니다
지난 6월 10일 유성구 어은동 유성구청 뒤 작은 공원에 모인 20여 명의 사람들도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인근 주민들에게 조용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느지막한 오후,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의 수상한(?) 움직임에 동네 주민들도 하나둘 골목으로 나왔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어은동 유성구청 뒤 작은 공원에 모인 시각은 오후 네 시경. 팔을 걷어붙인 이들은 함부로 버린 쓰레기를 치우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한 이 작은 공원은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가 된 지 오래다. 어떤 이는 야심한 시각에 차를 끌고 와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진동하는 악취에 공원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코를 쥐었다.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 천영환 팀장과 (사)유성구자원봉사센터 김영화 사업팀장이 이곳에 게릴라 가드닝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건 순식간이었다. 천영환 팀장이 멘토로 활동하는 대전대 행정학과 지역공동체활성화지원전문인재양성사업단(이하 인재양성사업단)의 멘토멘티 프로그램 과정이 계기가 됐다.
“학생들과 리빙랩에 관한 수업을 하다가 게릴라 가드닝에 관한 얘기가 나왔어요. 학생들에게 제안을 했더니 다들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서 함께 하게 됐어요. 김영화 사업팀장님과 만나 구체적으로 계획했고, 지금의 인원이 모였어요.”
그렇게 해서 게릴라 가드닝에는 (사)유성구자원봉사센터, 대전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 대전대 인재양성사업단, 카이스트 학생봉사단, 세림원예연구소, 공유공간 벌집, 대전사람도서관 등 일곱 개 단체가 참여했다. 현장에서는 허태정 유성구청장도 함께했다.
주변 정리가 끝난 후에는 미리 준비한 30여 개의 페트병에 식물을 옮겨 심고, 두 개의 플랜트 박스에 흙을 채워 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는 세림원예연구소 김외숙 소장이 현장을 지휘했다.
“대전사람도서관 측에서 게릴라 가드닝을 도와달라고 참여를 제안했어요. 청년들이 하는 의미있는 활동에 함께하고 싶었어요. 3일 전에 만나서 기획하고 일사천리로 진행했어요. 여태 분위기가 조성 안 돼서 못했는데 시작만 하면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식물은 공공장소에 심는 거기 때문에 월동을 할 수 있는 것들로 골랐어요.”
“벌개미취랑 바늘꽃은 키가 크게 자라기 때문에 플랜트 박스 뒤쪽에 심어야 해요. 낮달맞이는 겨울에 서리 내릴 때까지 피어요. 그리고 키 작은 채송화 종류는 앞쪽에 배치해 주세요. 먼저 화분에서 식물을 분리하고 플랜트 박스에 심을 때 흙 높이까지만 심어야 해요.”
김외숙 소장의 가르침에 따라 참여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 더미와 함께 악취를 풍기던 공원 앞은 점점 작은 정원으로 모양을 바꾼다. 비로소 허리를 펴고 정원을 바라보는 참여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천영환 팀장의 멘티로 함께 참여한 대전대 행정학과 유현목 씨도 뿌듯한 얼굴을 하고 섰다.
“게릴라 가드닝을 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또 허태정 유성구청장도 함께 하면서 관에서도 협력해 줘서 더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근처 상인들이 앞으로 관심 갖고 물을 주겠다고 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모두의 정원’을 지켜보던 한 주민은 이렇게 해도 금세 지저분해질 거라며, CCTV를 달아야 한다고 말을 붙였다. (사)유성구자원봉사센터 최현진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함께 지켜주면 될 거라며 그를 설득했다.
“재미있었어요. 생각보다 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좋았고요. 처음에는 구청에서 나온 줄 알다가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획했다고 하니까 참 잘 생각했다며 그간 얼마나 악취가 심했는지 호소하시더라고요. 이제 냄새 안 나서 좋겠다고요. 향후 관리에 관해서는 불안함은 있지만 주변 공동체를 믿고 지켜보려고 해요. 오늘 게릴라 가드닝은 학생들에게도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이 계기가 돼서 앞으로 이런 캠페인이 지역사회에 확산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