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우리 마을 좀 딜다 봐주라

지난 3월 10일 옛 충남도청 2층 소회의실에서 『춤추는 마을 만들기』 저자 윤미숙 씨의 ‘춤추는 마을을 만드는 스토리텔링’ 강연이 열렸다. 윤미숙 씨는 지방의제 추진기구 푸른통영21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10여 년 전 철거 위기에 처해있던 동피랑 마을을 수년에 걸쳐 통영의 명소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후 연대도 에코아일랜드, 강구안 푸른 골목 만들기 등 통영의 작은 마을에 차례로 활력을 불어넣는 일을 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간의 이야기들을 올 초 책으로 엮었다. 이 날 강연에서 윤미숙 씨는 책에 담은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사람을 빼내고 나무를 꼽을 낀가베

“동피랑 마을에 안 다녀오신 분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강연에 앞서 윤미숙 씨가 던진 질문에 손을 든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제 통영보다 더 유명하다는 ‘동피랑 마을’은 과거 철거 예정지에서 연간 백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그러나 동피랑 마을을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부터 불어닥친 벽화마을 붐이 낳은 각종 부작용에, 동피랑 마을을 색안경 끼고 보는 시각 또한 많아졌다. 하지만, 벽화마을은 동피랑 마을 만들기 사업의 전부가 아니며, 철저히 ‘주민’을 중심에 두고, 주민들과의 치열한 갈등과 협의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자,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현장이다. 윤미숙 씨는 동피랑 벽화마을을 만든 일련의 과정과 그간 맞닥뜨린 고민들을 구수한 통영 사투리로 재치있게 풀어냈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비탈)이라는 뜻입니다. 중앙동의 정량동과 태평동이 어우러진 삼각형 꼭대기 마을인데, 워낙 풍광이 좋은 곳이라 수차례 개발 계획이 번복돼 왔습니다. 그러다 2006년 5월 재개발 계획이 발표됐고, 주민설명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미관상의 이유로 동피랑 마을을 없애고 거기다 동포루를 복원해 공원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민합의 등 절차는 생략된 채였습니다. 가난한 동네가 있는 것이 뭐가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후 이를 지방의제 중 긴급의제로 삼아서 동피랑 주민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사람을 빼내고 나무를 꼽을 낀가베!’라고 하던 주민분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현장답사 및 주민면담을 실시하고, 벽화를 이용해 마을 변신을 시작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시 제대로 된 예산조차 없었던 와중 2007년 ‘지역혁신협의회’ 공모 사업에 신청하고, 이에 선정되며 받은 천만원이 종잣돈이 됐다.

    

     

     
답은 언제나 주민들 속에 있다

2008년 1차 벽화전을 열었다. 어렵사리 홍보에 나선 끝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19개팀 40여 명이 참가자로 나섰다. 동피랑 마을 취지에 관한 공감과 소통 하에 벽화그리기가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벽화전이 끝나고, 수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동피랑에 발걸음 했다. 그 사이 통영시는 재개발 계획을 변경해, 동피랑을 보전하고 마을을 가꾸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뒤 2010년 4월 ‘동피랑 부루스’라는 주제로 두 번째 벽화전을 열었다. 참가자는 41개팀, 70여 명으로 늘었다.

“2010년 무렵에는 동피랑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생겼습니다. ‘답은 언제나 주민들 속에 있다.’라는 생각으로 주민들과 모여 고민하고 방법을 찾았습니다. 좁은 골목에서 회의를 소집해 떠나고 싶은 사람 손을 들라 했습니다. 그래서 7가구가 떠났습니다.”

그렇게 매입한 집들 중 다섯 가구는 작가촌으로 만들고, 두 가구는 주민소득 창출을 위해 구판장과 매점으로 만들었다. 동피랑 주민협의회가 만들어진 것도 이 때다. 2012년 마을기업이 생기고, 동피랑 생활협동조합이 생겼다. 지난 2014년 봄에는 동피랑의 네 번째 벽화전이 국제 비엔날레로 치러졌다.

“동피랑이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일단 2년마다 벽화전을 치르며 벽화를 바꾼 것입니다. 주민들도 지루하고, 페인트의 수명도 다하기 때문입니다. 또 매달 동피랑 민관합동회의를 진행해서 주민들과 소통에 힘썼습니다. 주민들의 행복도를 높이는 것이 마을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근래 ‘동피랑 주민인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생각하는 주민이 90%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통행혼잡 등 여전히 남은 숙제는 많고, 주민의 불편을 재화로 교환하는 적극적인 방법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윤미숙 씨는 “마을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므로 앞으로도 갈등은 또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름의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윤미숙 씨는 동피랑 마을을 일구고 연대도를 거쳐 강구안 골목까지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서피랑을 가꾸고, 욕지도로 들어섰다. 그 뒷얘기까지 듣기에 한 시간은 모자랐다. 하지만 이 시간 이후로 마을활동가 윤미숙이 지나간 자리를 살펴보는 일이 조금 더 흥미로워졌음은 분명했다.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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