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8호] Healing Process

색에는 음계가 모양과 간격에는 리듬이 담겼다. 가만히 들여다볼 때 느껴지는 이미지는 하나의 곡이다. 색을, 모양과 간격을 눈으로 천천히 좇다 보면 이다희 작가의 시간을 만난다. 이다희 작가에게 음악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은 명상이고 수행이다.
▲ G선상의 아리아-바흐_76.0x93_천에 실_2014
▼ Variations on the Cannon. (orchestra ver.)_193.9x112_water color on canvas_2011
음악을 화면에 옮기며

이다희 작가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자연스레 접하고 즐기며 자랐다. 오랜 시간 피아노도 배웠다. 부모님은 피아노를 전공하길 바랐지만, 자신을 화면에 표현하는 것이 더 자신답다는 것을 깨닫고 그림을, 음악을 그리기 시작했다.

“느낌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작가는 많지만 좀 더 객관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음악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악보를 그대로 옮기는 작업을 생각하게 됐어요.”

언뜻 정간보처럼 보이는 네모진 칸에 색으로 음계를, 건너뜀으로 리듬을 표현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다희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다. 실을 이용해 그 질감으로 리듬의 울림만을 표현하기도 하고 엘피판에 색을 입혀 턴테이블 위에 재생시켜 아날로그 방식의 영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바흐 음악을 표현하면서 균형감과 조화로움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피아노를 치는 오른손과 왼손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걸 시각적으로 표현하다 보면 하나의 건축물처럼 구조적 안정감이 느껴져요. 음악을 통해 조형성을 발견하는 작업이에요.”

자신을 극복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일

이다희 작가는 작업이 자신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힘들었던 시간, 자신을 다잡아준 것이 작업이었다. 조용히 앉아 집중하며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살 힘이었다.

“한때 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어요. 작품 하나 완성하고 죽자, 내일까지만 하고 죽자, 하면서 작업하다 보면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작품이 저를 살렸어요.”

반복적인 행위를 하는 손끝에서는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 관계가 모여 큰 그림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이다희 작가에게는 쪼개진 자아를 하나로 잇는 작업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예쁜 이미지로 표현되는 이 작업에서, 신기하게도 관객들은 치유의 과정을 읽어 냈다.

“방명록에 ‘오늘 나는 화나는 일이 있었는데 작품을 보고 화가 풀렸다.’라는 식의 글이 많았어요. 사실은 그저 예쁘장한 그림일 뿐인데 제가 힘든 시간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관객이 느꼈다는 거예요. 똑바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 이다희 작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면서도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확고히 해 나갈 계획이다.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협업도 이어나간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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