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지난 3월 6일 오전 8시, 대전여성단체연합(이하 대전여연) 및 8개 단체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시청역 인근에서 거리캠페인에 나섰다. 이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여성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일하는 여성을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곱게 포장된 빵 봉지에는 장미 그림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107년 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며 일할 권리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한 의미를 되새기는 취지였다.

    

    

일하는 여성을 응원합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리던 미국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 1만5천 명이 노동조건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파업 시위를 벌인 데서 유래했다. 이들은 당시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빵)를 원하지만 인간답게 살 권리(장미) 또한 포기할 수 없다.’라고 외쳤다. 세계 여성의 해였던 1975년, UN은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결정해, 매해 세계 여성의 날에 각국에서 성차별 철폐 운동을 벌여왔다. 한국에서는 1985년부터 ‘한국여성대회’를 이어오고 있으며, 대전은 2001년부터 세계여성의 날 기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3월 6일 이른 아침 시청역 인근에서는 대전여연을 주축으로 캠페인이 벌어졌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여성 직장인들에게 빵을 건네주고, 인근 네거리에서는 카드와 피켓을 이용해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손정아 소장은 “107년 전 미국 여성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라고 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빈곤하고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올해 캠페인은 여성 노동 차별 현장을 알리는 취지를 살렸다.”라고 말했다.

오전 11시에는 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전여연, 대전여성폭력방지상담소·시설 협의회를 비롯한 9개의 지역 여성·시민 단체가 참여했다. 기자회견 장소에는 유엔여성이 2013년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제작한 노래 ‘원 우먼(One Woman)’이 낮게 흘렀다. 기자회견은 대전여연 임원정규 대표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참가단체 대표 발언, 여성 노동자 발언, 기자회견문 낭독 순으로 진행했다.

     

    

    

    

왜 여성은

여성 노동자 발언 순서에는 20대 청년, 워킹맘, 돌봄노동자를 대표하는 각 1인이 발언에 나섰다. 20대 청년 대표 발언자로 나선 ‘라라’(대전여민회 노동복지위원회 위원) 씨는 “최근 논란이 된 패션계나 소셜커머스 회사의 청년 노동력 착취 등 청년 대상의 ‘열정페이’가 만연해 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여성 청년 노동자의 현실은 더 심각하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성폭력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성차별 발언을 참아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여성은 2차 노동력으로 간주할 뿐이다. ‘여자들은 금방 일을 그만둔다.’라고 말하기 전에 지금 여러분 회사의 업무환경이 과연 여성친화적인지 돌아보라. 여성도 일하고 싶다. 부디 여성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해주길 바란다.”

발언하는 동안 라라 씨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되고, 가늘게 떨렸다. 그러는 동안 함께 자리한 이들 중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워킹맘 대표 발언자로 나선 정의당 소속 임민영 씨는 “여성은 회사에서는 노동 만능, 집에서는 육아와 가사 만능이어야 한다. 왜 육아와 가사는 여성의 몫이어야만 하나.”라며 “조속히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했으면 하고, 신체적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후 ‘여성노동을 존중하는 문화, 성차별 없는 일터, 성평등 가치가 실현되는 대전을 만들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기자회견문 낭독 순서가 이어졌다. 12시부터 진행된 ‘대놓고 말하는 여성노동 좌담회’에서는 80여 명의 시민단체, 활동가, 시민 등이 모여 여성노동의 현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해 한 경제단체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여성이 성희롱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한 뒤 자살했다. 또 모 출판사에서 17개월 동안 수습직원으로 근무하던 여성이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자신에게 성추행을 저지른 상사를 고소하며 지난한 싸움을 벌였다. 국가별 성평등 순위 147개국 중 117위,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격차 1위인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여성 노동 환경은 열악해져만 가고, 그들의 싸움도 외롭기만 하다. 그러나 ‘You cry and I hear you(당신이 소리치면 내가 당신을 듣습니다)./We are one Woman(우리는 하나의 여성입니다).’라는 ‘One Woman’의 한 대목처럼,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의 현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믿는다.


글 사진 엄보람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