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8호] 세상 사람들이 안녕하기를 바라요

첫 만남 때 이은주 씨는 ‘마리몬드’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당시 은주 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작품으로 디자인 소품을 만드는 마리몬드라는 브랜드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후 4월 16일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은주 씨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었다. 수년 전부터 대전청년회에 소속해 이런저런 활동을 해왔다고 했다.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라며 인터뷰를 쑥스러워했지만, 기어이 만남을 청했다. 세월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두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이다가도,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반짝반짝 눈동자를 빛내는 스물여섯의 예쁘고 씩씩한 청년, 이은주 씨다.
머리글
세상 사람들이 안녕하기를 바라요

구미시 서산읍이 제가 나고 자란 곳이에요. 동네 사람이 다 친구일 정도로 정겨운 곳이었지만, 넓은 지역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러다 한남대에 진학하면서 대전에 정착하게 됐어요. 학교 다닐 때는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이 살았어요. 수업 듣고, 영어학원도 가고 그러다보면 하루해가 저물었죠. 대전청년회를 알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다문화 가정 등을 대상으로 하는 ‘몰래산타 대작전’ 봉사활동 모집 포스터를 보고서였어요. 그런 활동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혼자 찾아갔고, 이를 계기로 청년회에 합류하게 됐어요. 그때도 무얼 하는 단체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한 가지, 그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건 알았어요. 이후로 철도 민영화 반대 집회, 세월호 집회, 평화의 소녀상 건립 지지 활동 등에 참여했어요. 책 읽는 모임 등 소소한 모임도 하고요.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많이 깨닫게 됐어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관해서는 학창시절 국사 수업을 계기로 자세히 찾아보면서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약자를 향한 폭력에 관해 생각했죠.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간단히 이해될 문제예요. 누가 군 위안부를 하고 싶어서 했을까요? 한 할머니의 글 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게 “저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라는 이름이 있습니다.”라는 말이에요. 그 분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잖아요. 일련의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막연히 작게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작년부터 대전청년회에서 ‘평화의 보부상’이란 이름으로 1년여 동안 위안부 소녀상 건립 모금 활동을 하면서 더 관심이 생겼어요. 마리몬드에서 물품을 사서 궁동 등지에 좌판을 깔고 플리마켓 형식으로 판매하고, 수익금을 평화의 소녀상 건립하는 데 기부했어요.

  

세월호 관련 집회나 행사는 문제가 터지고 나서 시간 될 때마다 참여했던 것 같아요.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이들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자식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낸 유가족들이, 궁극적으로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이렇게 호소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너무 외면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벚꽃을 보며 예쁘다고 할 때, 유가족들은 꽃을 뜯고 싶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나는 예외일 거라 생각하는 게 참 안타까워요.

요즘은 ‘여행수공업’이라는 소모임을 시작했어요. 20~30대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의미 있는 여행을 기획해보자고 만든 모임이에요. 관심 있으면 함께 하실래요?(웃음)

지금 일하는 곳은 중부권생태공동체라는 사회적기업이에요. 생태적인 유아교육, 바른 먹거리 문화, 아이들을 아이답게 살게 하자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어요. 졸업 후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지인 소개로 입사하게 됐는데, 건배 제의 때 ‘세상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질 때까지’라고 외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재밌는 삶을 살고 싶어요. 지금의 제 삶은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아요. 무얼 할 때 행복한지, 무얼 꿈꾸는지조차 명확하지가 않아요. 아직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나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세계평화를 꿈꾼 적도 있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주변 사람이, 세상 사람이 안녕하기를 바라요. 그렇게 되면 그 안에서 저 또한 안녕하지 않겠어요?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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