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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7호] 서점에서 만난 사람
지난달에 이어 4월에도 서점을 찾았다. 첫 주인을 떠난 책이 두 번째 주인을 만나는 곳,
대전시 은행동에 자리한 알라딘 중고서점이다. 책의 두 번째 주인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화책이 가득한 어린이 서가에서 신정은 씨를 만났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이것저것 책을 뒤적이는 그녀 옆으로 대여섯 권이 넘는 동화책이 더 놓여있다. 있지도 않은 조카 핑계를 대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조카에게 줄 책을 고르는데 어떤 책이 좋겠냐고 묻자 대뜸 조카가 몇 살이냐고 되묻는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펼쳐보며 책을 골라준다.
“지금 책놀이지도사 공부하고 있어요. 시민대학에서 강의 듣는데, 오늘 마침 6~7살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에 관해 배웠어요. 『히히, 내 이 좀 봐』하고 『얍! 감기야 덤벼라』라는 책인데, 아이들한테 자신의 몸에 관해 알려주는 책이에요. 이를 잘 닦아야 하는 이유, 감기에 왜 걸리는지 책을 읽어주면서 재미있게 설명하는 거죠. 조카한테 읽어주기 전에 본인이 먼저 책을 읽어 봐야 해요. 어려운 내용은 빼고,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정리를 먼저 해야 해요.”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 있는 날엔 꼭 서점에 들른다. 수업시간에 추천해준 책을 고르기 위해서다. 없는 책도 많지만 저렴한 가격에 좋은 책을 고를 수 있어 알라딘 중고 서점을 자주 찾는다. 이날도 수업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서점을 찾았다.
“우리 손주들 읽어주려고 시작했어요. 내 아이 키울 때는 바빠서 책 읽어주고 이런 것 거의 못 해줬거든요. 지금은 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서 손주들 해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나중에는 어린이집이나 요양원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어요.”
명절에나 한 번씩 보는 손주들이지만 그때마다 수업에서 배운 대로 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손주들 이야기에 그녀 얼굴이 환해진다.
“책놀이지도사는 단순히 책에 적힌 지식만 전달하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직접 사물을 보고, 만지고, 관찰하며 더 넓게 사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놀이를 함께하죠. 씨앗에 관한 책을 보고 직접 씨를 심어보고,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는 거예요. 수업 듣다 보면 아이들 책이지만 저도 잘 모르는 것이 꽤 많아요. 그래서 요즘은 따로 공부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보고 금방 또 잊어먹지만요(웃음).”
잔글씨로 빽빽이 채운 공책, 수업내용을 착실히도 정리했다. 돋보기 너머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 눈동자를 따라 함께 공책을 읽어 내려갔다.
“늙어서 공부하려니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어요. 동화책 읽고 있으면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아요. 마음이 순수해 져요. 우울할 틈이 어디 있어요. 볼 책도, 공부할 것도 많은데요. 감사한 일이죠. 지금 정말 행복해요.”
청바지에 야상 점퍼, 스냅백을 눌러쓴 모습이 영락없는 대학생이다. 평일 오후 세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니 당연히 학생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그는 서른이 훌쩍 넘은 6년 차 직장인이었다. CJ 홈쇼핑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임성환 씨를 만났다.
“월차 냈어요. 구정 때 못 쉬어서 이번 달에 쉬게 됐어요. 쉬는 날에는 카페 가서 책 읽어요.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축구도, 야구도 별 관심 없어요. 중학교 때까지 책을 전혀 안 읽다가 중학교 3학년 땐가 읽기 시작했어요. 수필을 좋아했는데, 요즘엔 소설이 재밌더라고요. 고전 소설을 주로 읽어요.”
그는 최근 헝가리 전쟁을 배경으로 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쌍둥이 형제가 등장하는 옴니버스식 소설로, 세 개 단편 소설이 실렸다. 그날도 그는 소설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소설 『설국』을 이미 집어 든 그가 책을 또 한 권 고르려는 심산으로 서가를 찬찬히 살펴본다.
“고향은 부산이에요. 회사는 대덕구에 있고요. 처음 대전 와서 집 구하는데 사람들이 대흥동에 버스가 많이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죽 대흥동에서 살았어요. 그리고 회사랑 집은 멀어야 돼요(웃음).”
경제학과를 졸업한 성환 씨는 군 제대 후 교수님 추천으로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때는 목표랄 것이 없었다. 그렇게 회사에 다니며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죽 일하고 있다. 전산실에서 일하는 그는 주로 판매 상품 구성과 고객 주문을 확인하는 일을 한다.
“이번 주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어요. 오늘은 서점에서 책 보다 모던하우스 가려고요. 얼마 전에 이사했는데 얇은 카펫이 필요해서 그거 사러 가요. 내일은 친구들이랑 벚꽃 구경 가려고요. 신탄진으로 갈까 생각 중이에요.”
토마토 잡지를 소개하니 바로 ‘북카페 이데’를 말하는 그, 김운하 소설가가 처음 북카페 이데를 열었을 때부터 카페에 오갔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이데 공사 중이던데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4월에 다시 문을 여니 자주 놀러 오라고, 오픈 날 버스킹 공연도 하고 야시장도 연다고 깨알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를 또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