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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6호] 불편함을, 고민해본다_고정원 작가
“내가 지금은 이런 걸 할 기분이 아니네.”
“이거 공짜로 하는 거 맞아?”
“왜 돈도 안 받고 해주는 거야?”
대전창작센터 1층, 웅성거리는 소리를 따라 2층으로 오른다. 2전시실에 설치된 시민티비사 간판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시민티비사 간판을 마주 보고 왼쪽에서 울리는 소리는 고정원 작가와 아버지가 간판을 달며 나누는 대화다. 오른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고정원 작가가 “사기꾼 아닙니다” 프로젝트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다. 의심 섞인 목소리이거나 관심 없다는 듯 퉁명스러운 말투 혹은 기대 섞인 음성이 섞여서 전시실에 울려 퍼진다.
“사기꾼 아닙니다.”는 2013년부터 고정원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낡은 간판을 새 간판으로 교체해주겠다는 작가의 말에 많은 이가 ‘사기꾼’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이름을 붙였다.
화가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먹고사는 일 때문에 간판 일을 시작했다. 손재주가 좋은 아버지 덕분에 가족들과 사는 데 충분한 돈을 벌었다.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을 아들이 시작해서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곧잘 그리던 작가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회화과에 진학하고, 대학에 다니며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대학 4학년 때 자신이 하는 작업에 조금씩 의심이 생겼다. 대학 바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술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졸업 후 고향인 청주에 돌아갔다. 옛 화교 소학교에 자리 잡은 653청주 예술상회에서 레지던시를 시작하며 그 고민은 깊어만 갔다. 회화로 계속 세상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2012년에 예술상회에 있었는데, 나중에 한 4개월 동안은 아무것도 못하고 지냈어요. 처음엔 예술이란 낱말 자체에 집중했는데, 나중엔 예술이 사회에서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저항이라는 말은 어쩐지 지금 이 세대와는 맞지 않는 말 같고, 그렇다고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아름답게만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러다 예술상회 주변을 보면서 버려진 물건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너무 많은 물건이 생산되고, 자꾸 버려지는 물건이 많아지고, 그것의 쓸모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버려진 물건에 그림을 그렸어요. 나중엔 제가 그림 그릴 수 있는 것만 주워오더라고요. 이후엔 사물 자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여러 시도를 하다가 간판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 같아요.”
간판 다는 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아버지 덕분에 작가에게 간판은 매우 익숙한 물건이었다. 신기한 물건이 많았던 간판집은 어린 시절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조금 자라서는 아버지 일을 곧잘 도왔다. 함께 간판 다는 곳에 가기도 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네온사인 간판을 잘 만지는 것으로 유명했던 아버지는 IMF 전까지만 해도 꽤 잘나갔다. 모두가 어려웠던 IMF를 보내고, 정부에서 형광등 간판 쓰기를 독려했다. 네온사인을 잘 만졌던 아버지의 일감도 조금씩 줄었다. 작가와 아버지가 그것에 관해 나눈 대화가 2전시실 왼쪽에서 울린다. 아버지는 “네온사인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대부분 소규모 상인이 많았는데, 형광등은 대부분 대기업에서 만들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한다. 또 “형광등으로 네온사인 불빛의 밝기를 내려면 오히려 전기세가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형광등 회사의 로비 때문에 정책을 바꾼 게 아니었겠느냐.”라는 추측도 있다. 아들과 함께 간판을 달며, 아버지는 간판 일을 하며 느꼈던 옛이야기를 하나씩 해주었고, 작가는 그 음성을 녹음해 전시실에 함께 전시했다.
“지금 우리는 정말 편한 삶을 살잖아요. 휴대전화, 노트북, 커피…. 그렇게 편하기만 한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대기업에 양육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이 불편함을 어떻게든 꺼내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간판 일을 하면서 같은 건물에 몇 번이고 다른 간판을 교체하는 일을 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대기업 간판을 달아주면서는 그걸 교체한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01 <시민TV사>_2014_가변설치_폐간판,사운드
02 <그들을 보면>_2015_가변설치_LED채널 간판, 버려진 LED채널간판, 사운드반응모듈
03 <무제>_2014_가변설치_폐LED간판 위에 펜-드로잉
무조건 편안하기만 한 생활에 불편한 마음이 들고, 쓸모라는 말에 생사가 갈리는 수많은 ‘것’을 보며 의아함을 품는다. 누군가에겐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 되고, 누군가에겐 버리고 싶은 골칫거리가 되는 물건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정답 같은 건 없지만, 작가는 세상이 정한 ‘쓸모’의 정의가 궁금하고,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계의 흐름이 의심스럽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던졌던 작품이 아버지와 제 사진을 오버랩한 작품이었어요. 30대인 아버지와 이제 막 서른이 된 제 사진이 겹쳐지면서 재미있는 작품이 되더라고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현실 때문에 고민했던 아버지셨잖아요. 저는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고요. 지금 현실적으로 하는 고민과 맞닿은 작품이에요. 예술가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에 관한 것도 불분명하고, 그러면서도 계속 작업에 관해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작가는 간판에 쓰이는 글씨, 색으로도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듣고 요즘 간판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거리 정비 차원에서 모두 비슷하게 만드는 간판이 어쩐지 불편해졌다.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도 깔끔해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간판이 참 많았다.
글 이수연
사진 이수연, 대전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