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서점에서 만난 그녀

서점에 오는 이유야 빤하겠지마는, 서점에서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이유는 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관심 두는 분야가 다르겠지. 혹시 아는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로 서점을 찾은 이가 있을지. 대전 선화동에 자리한 계룡문고에서 두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읽는 그녀, 봉인화 어머니

콧등까지 길게 내려온 안경, 안경 너머 눈동자가 제법 빠르게 움직인다. 책은 어느새 절반을 넘어 끝을 내다보고 있었다. 봉인화 어머니 옆으로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 책을 읽는 척, 힐끔힐끔 말 걸 기회를 노리던 중 “어머니, 무슨 책 보고 계세요?”라고 조심스레 한 마디를 건넸다. 그녀는 대답 대신 책 표지를 내보인다. 『G2 전쟁, 2015-2016 슈퍼 달러의 대반격』,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급격히 상승했다.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지, 지금 미국에서 달러를 종이처럼 막 찍어내잖아. 돈이 돈 같지 않은 세상이야. 그렇게 막 찍어대니 어디 돈으로서 가치가 있어?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미국 경제에 크게 영향을 받아. 이 책도 달러, 환율에 관한 내용이야. 가끔 서점에 와서 이렇게 책이라도 읽어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알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오려고 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주로 그 해 발간한 경제나 사회적 상황을 담은 책을 찾아 읽는다. 사주나 관상에 관한 책이나 일간지, 월간지에도 관심 두며 가끔 펼쳐본다. 책을 통해 본 세상을 다시 세 딸에게 이야기해 준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잘 결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딸이 셋 있는데 모두 시집가고 혼자 지내. 오전에는 탁구도 치고, 헬스장에서 춤추는 것도 하고 그래. 이제 내가 사회에서 활동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잖아.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거야. 그래야 애들하고 말 한마디라도 더 하지.”

아직은 눈이 보이니, 눈이 보일 때까지는 책을 읽겠다고 그녀는 말한다. 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녀는 아직도 세상이 궁금하다.

대화가 끝나갈 때 즈음 그녀의 고향이 이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1·4후퇴 때 고향인 평양에서 피난 와 대전에 정착했다. 죽 대전에서 살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삶을 꾸렸다. 지금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지내고 있다. ‘죽는 거 별거 아니야.’라던 그녀의 말이 서점을 나선 후에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오랜만에 외출, 전소연 씨

아담한 체구에 조금 버거워 보이는 큰 가방을 맸다. 뒷모습은 영락없는 학생이다. 영어책이 가득한 서가에서 책을 뒤적이기에 아마도 취업을 준비하는 혹은 영어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겠거니 추측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그녀 옆에 다가섰다.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고 슬쩍 찌르듯 물었다. 한 번 해봤다고 조금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그녀는 이어폰을 빼곤 “네?”라고 되물으며 고개를 들었다. 뒷모습에 버금가는 앳된 얼굴을 한 그녀,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응급구조사 전소연 씨다. 대낮에 서점에서 직장인을 만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는 어쩐 일로 서점을 찾은 걸까. 그녀의 대답에 궁금증은 금세 사라졌다.

“오늘 오프(off)날이에요. 아, 저는 병원에서 일해요. 응급실에 응급환자가 오면 의사, 간호사 분들 도와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해요. 저처럼 병원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도 있고, 구급차에서 환자를 보는 이들도 있어요.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시내 나왔어요. 백화점 들러 옷도 사고, 서점에서 책도 보고요.”

최근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환자가 많아져 영어 책을 보고 있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혹시 응급상황에 도움 될 만한 표현이 없는지 찾아보던 중이었다고, 그러며 자신이 찾은 책을 펼쳐 보여준다. 책에는 ‘통증이 심하세요?’, ‘증상은 어떠세요?’ 등 응급상황에 꼭 필요한 영어 표현이 적혀있다.

서점에는 종종 들르는 편이다. 소설을 즐겨 읽곤 하지만 요즘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6월 말 시험이 있어 모의고사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있다. 퇴근 후 집에서, 병원에서 밤 근무를 하며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워낙 시험 경쟁률이 높아 어렵다며, 시험을 잘 볼지 모르겠다고 소연 씨는 이야기한다.

“오늘은 별 계획 없이 서점에 온 거라 책 좀 더 보다 가려고요. 사실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연락이 없네요(웃음)?”

스물다섯, 아직은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일찍 사회에 나온 그녀에게 이번 인터뷰가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했다. 자신을 인터뷰해주어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녀였다.


글 사진 박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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