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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6호] '지금'이라는 말을 좋아해요_서승주 복지원예사
웃는 모습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 서승주 씨를 처음 만났을 때 든 생각이다. 뜨끈한 대추차를 앞에 두고, 온화함이 표정으로 새겨진 그와 마주하니 없던 얘기도 술술 나올 것만 같다. “신기하죠, 옛날에는 사람들이 저보고 차갑다고 그랬어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 원예치료 일은 그의 표정마저도 바꾸어 놓은 듯했다.
“웨딩숍을 10년 동안 운영하고, 플라워숍을 5년 했어요. 남들에겐 좋아보일지 몰라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게 일할 만큼 바쁜 날들이었어요. 꽃집을 할 땐 매일 새벽시장에 나가 꽃을 사오고, 기념일만 되면 밤을 새야 했어요. 복지원예사를 하게 되면서 그제야 제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생겼어요. 식구들 뒷바라지 하다보니 정작 나는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 내가 그렇게 잘 산 것은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죠.”
아이를 키울 때부터 사회복지학에 관심이 많던 서승주 씨는 공주영상대 야간반을 다니며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 후 우연한 계기로 원예치료 특강을 듣게 됐고, 자신과 너무나 잘 맞는 분야라고 생각한 나머지 배재대 평생교육원 원예치료사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서승주 씨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도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정한 수련기간을 거친 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지원예사로 활동했다. 이듬해인 2012년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 대전지부가 발족했고, 부지부장을 맡았다.
요양원, 장애인 복지관 등 각종 복지기관이나 청소년 지원센터 등에서 협회 측에 원예치료를 의뢰하면, 소속 복지원예사가 해당 기관에 나가 수업을 한다. 원예치료는 식물을 기르고 관리하는 방법에서부터 식물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승주 씨는 원예치료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각자가 처한 아픔, 환경, 연령대에 따라 원예치료의 방법도 조금씩 달랐다.
“일단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아이들의 경우에는 행운목 키우기, 화분 옮겨심기, 테라리움 만들기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함께 텃밭을 가꿔요. 그렇게 키운 채소로 함께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고요. 그런 과정에서 점점 마음을 열게 돼요. 어르신의 경우에는 압화 만들기를 하는데, 이를 통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변화를 겪는 걸 봐요. 또 자기 이름밖에 모르던 치매 어르신이 텃밭을 가꾸며 채소 이름이라든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기억해내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말하자면, 원예치료는 원예를 매개로 소통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서승주 씨는 원예치료 일을 하며 자신과도 소통하는 법을 터득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돕는 일이지만, 정작 자신이 위로받을 때가 많다.
“원예치료 일이 제 삶의 방식을 바꿔놨어요. 누구에게나 못된 아집이 있는데, 저 또한 제 방식만을 고집하느라 남의 말은 잘 듣지 않았어요. 남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차갑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참 신기하죠.”
올해는 (사)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 대전지부 지부장을 맡으며 어깨가 조금 무거워졌다. 임기 2년 동안 대전지부를 많이 알려서 활동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자 한다. 임기를 마치면 원예치료연구소를 열어 누구든지 들르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같기도 하고,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생각해요. 수업을 마치고 운전하며 돌아올 때면 ‘수업을 하며 내가 좋아지고 있구나.’를 느껴요. 저는 ‘지금’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걱정은 하지 않아요. 살아보니 걱정은 내가 해결하는 게 아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