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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6호] 함께여서 괜찮아_쏘잉쿱 협동조합
평일 아침, 월평동에 위치한 ‘카페 온’ 세미나룸에 쏘잉쿱 협동조합 식구 다섯 명이 모였다. 겨울의 끝자락에 카페 온에서 쓰일 마지막 레몬청을 담그기 위해서다. 레몬 향기가 세미나룸을 솔솔 채울수록 이들의 웃음소리도 높아만 간다. 바구니 그득하게 쌓였던 레몬은 어느샌가 뚝딱하고 레몬청으로 변신했다. 혼자라면 반나절은 족히 걸릴 일도, 손을 보태면 금방이다.
쏘잉쿱 협동조합은 대전 평생교육문화센터의 홈패션 수업에서 만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작년 초에 만들었다. 거점이 된 카페 온은 이들의 작업공방이자, 작품 전시 및 판매점, 각종 쏘잉 강좌가 이뤄지는, 평소에는 그냥 카페이기도 한 공간이다.
“저희는 평생교육문화센터에서 의류, 홈패션, 리폼 등을 함께 배운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3년 넘게 다니다보니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거예요. 모임을 지속하기 위한 고민 끝에 공방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고, 안수진 씨가 협동조합을 제안했어요. 작년 2월에 법인을 만들고, 두 달 정도 공사를 거쳐 3월에 ‘카페 온’을 열었어요. 창립총회 때는 조합원이 열명 정도였는데, 알음알음으로 모여 지금은 스무 명으로 늘었어요.”
이남주 대표는 홈패션, 퀼트, 패브릭 소품, 인형, 천연화장품, 비누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고 말한다. 조합원들은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 대해 직접 강좌도 연다. 수강료는 재료비 정도만 받는 수준이다. 카페 한 편에 마련한 쏘잉룸에는 다양한 재봉틀을 구비해, 개인이 공간사용료(1시간 3,500원, 차 한 잔 포함)를 지불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집안일과 육아만 하던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이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가르치며 ‘내 일’을 한다는 기쁨이 있죠. 그리고 카페가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하고요. 저 또한 이곳에서 활동하며 더는 스트레스를 아이나 가족에게 풀지 않게 되더라고요.”(이남주 대표)
조합원은 이곳에서 일한 시간을 ‘땀’이라는 무형의 화폐로 보상받는다. 작품을 하나씩 만들 때도 ‘땀’이 적립된다. 땀의 적립 및 사용 내역은 직접 제작한 땀 프로그램으로 관리한다. 조합원들은 땀으로 쏘잉룸을 이용하고, 커피를 마신다.
조합원들은 쏘잉쿱 협동조합을 통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아는 이의 권유로 가입하게 됐다는 이경 씨는 “평일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헛헛했는데, 갈 곳이 생겨서 좋고, 이 안에서 사람을 만나며 또 다른 삶이 생겼어요.”라고 했다. 직장을 다니며 남는 시간에 이곳에 출근(?)한다는 송용선 씨는 카페 손님으로 왔다가 인연을 맺게 됐다.
“쏘잉쿱에서는 미싱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공예 작업을 하고 있던 터라 제 특기분야인 비즈공예를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여기에 오면서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관계’를 덤으로 얻었어요. 또래도 있고 언니들도 많으니까 생각지 못한 다양한 걸 배워요. 보일러 사용법도 여기 와서 배웠다니까요(웃음).”
카페 및 쏘잉룸을 지키는 일은 조합원들이 한 달 주기로 시간표를 짜 돌아가며 맡는다. 오후 여섯 시에 문을 닫고, 주말은 쉰다. 조합원의 행복이 우선이기에 무리하게 카페 문을 열지 않는다.
“주부는 사회에서 주요한 소비 주체이기도 한데, 주로 그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카페에서 두세 시간 씩 수다 떠는 거예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해요. 이곳이 그런 사람들을 위한 교류의 장이 되었으면 해요. 사람들이 이곳에서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이를 또 다른 이와 나눈다면 좋겠어요.”
쏘잉쿱 협동조합은 현재 대전형 좋은마을 만들기 사업에도 공모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남주 대표는 전한다.
“월평동은 굉장히 조용한 동네인데, 구석구석 살펴보면 공예, 마술, 기타 등 예능인이 많아요. 그 분들과 합심해서 전시나 공연을 기획해 마을을 재밌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설령 사업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꼭 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