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7호] 일상의 덧

누군가의 목소리

내게 들리는 나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이 듣는 내 목소리는 다르다고 한다. 자신의 목소리는 공기를 통하기 전에 목과 머리를 울리며 들려오니까. 어쩌다 보니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도시의 숨결을 찾다》가 출간된 이후로 내 목소리를 녹음된 상태로 들을 일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북콘서트 사회를 보았고, 대전 MBC라디오 생방송에 나와 책 소개를 했으며, 최근에는 《월간 토마토》 기자들과 소설책을 읽고서 〈별책부록〉 팟캐스트 코너를 녹음했다. 


녹음할 때는 모르다가, 매번 다시 들어보면 당혹스럽다. 
내 목소리가 저랬던가. 왜 저렇게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할까. 목소리의 높낮이가 듣는 이로 하여금 부담스럽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목소리를 내가 듣는다는 건 새로이 나를 발견하는 일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고요한 부엌에서, 잠들기 직전 적막한 침실에서 내 목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면 서늘하다. 


내 글을 누군가 읽는 것과 또 다르게, 목소리는 직접적이고 훨씬 더 실재하는 육신과 가깝지 않은가 싶어서이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김광석의 노래를 열심히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건 공연 실황 앨범이었다. 노래 사이 간간히 김광석이 멘트를 하는데, 어쩔 때는 노래보다 그 말들이 더 와 닿았다. 그때 누군가 한 말이 있는데, 김광석은 죽은 사람이 아니냐,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그렇게 열심히 듣느냐고 했던 거 같다. 게다가 그는 자살했으니. 그 목소리에는 더욱더 어떤 설움이 짙게 배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가 이미 죽어 없다는 걸. 그건, 그의 음성이 너무도 생생해서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렇게 목소리는 글이나 다른 무엇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던 누군가의 존재를 소환한다. 
그러므로 때로, 말은 영혼을 담는 것. 말한다는 건, 신성한 일이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어야 한다. 내 존재를 멀리 보낸다는 생각으로.


좀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한마디 말, 나는 얼마나 조심스레, 내어 놓았던가, 나를 위해서 또 그것을 들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말하기 전에, 팟캐스트를 녹음하기 전에 오늘 녹음하는 내 음성이 또 다른 내 일부라는 걸 꼭 염두에 두어야겠다.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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