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1호) 끄고, 읽고, 생각하기

‘슬로리딩 클럽(Slow Reading Club)’
시간은 있다 아니, 시간이 없다. 스마트 폰과 SNS를 할 시간은 있지만, 혼자 생각하고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책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울려대는 알람들, 누군가의 사소한 연락으로 인해 단 한 시간도 자신에게 집중할 수가 없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뉴질랜드 웰링턴에 사는 맥 윌리엄스는 일부러라도 모든 전자기기를 끄고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슬로리딩 클럽이다. 슬로리딩은 말 그대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천천히 정독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느림과 여유를 찾는 슬로무브먼트와 맞물려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 후 우리나라에도 닿아 크고 작은 슬로리딩 클럽이 생겼다.
대전에는 대전사람도서관과 공유공간 벌집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슬로리딩 클럽이 있다. 어은동에 있는 공유공간 벌집에서 매달 넷째 주 화요일에 진행한다. 지난 8월 25일 7시 30분, 비가 온 후 조금 선선해진 저녁 무렵에 책 한 권씩 들고 슬로리딩 클럽 참가자들이 모였다.
책과 나 둘만의 시간, 1시간 30분

자리에 앉아 통성명하는 시간도 없이 바로 책 읽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1시간 30분 후 시간이 다 됐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제야 고갤 들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러한 슬로리딩 클럽 취지에 누군가는, 책‘만’ 읽는 모임이라면 굳이 여러 사람이 모여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독서모임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주제가 되긴 하지만 읽고 난 후 토론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로리딩 클럽은 일반 독서모임과 그 목적이 조금 다르다. 오로지 읽는다는 행위에 집중한다. 그 외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잠깐의 눈인사 후 바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는 것이 처음엔 어색할 수도 있다. 일순간 조용해진 공간 속에서 글자는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고, 꺼져있는 전화기로 날 찾는 누군가의 연락이 와 있을 것만 같다. 순간 책은 조금도 읽지 못하고 시간을 다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머릿속엔 책 내용이 펼쳐지고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던 집중력이 발휘된다. 그리고는 책과 나 둘만이 남는다. 전자기기가 꺼져 있다는 조건만으로도 이렇게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하다. 슬로리딩 클럽 참가자들 또한 무언가에 방해받지 않고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여긴다.

일상의 쉼표가 되는 시간

“책 읽는 시간이긴 하지만 저에게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참가자 구아영 씨는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도 슬로리딩 클럽의 또 다른 장점이라 말한다.
독서 후에는 자신이 읽었던 책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 취향에 맞게 가져온 책을 서로에게 추천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 좋았던 구절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대화는 금세 다양한 주제로 뻗어 나간다.
“책을 매개로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제가 알고 있던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좋은 기회가 된 거 같아요.”
독서모임에 처음 참석해 봤다는 김신애 학생은 막상 참석해 보니 걱정과는 달리 편안해 다음 번에도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깊어진 밤을 아쉬워하며 모임을 마쳤다. 저녁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의 두 시간 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은 빠르고 어지럽게 지나가는 일상에 쉼표가 돼주었다.


글 사진 이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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