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 살아 내기 위한 거짓된 기억_환상의 빛


“그 사람이  왜 자살을 했는지, 
왜  혼자 철길을 걷고 있었는지,
한번  그 생각을 하면 헤어날 수가 없어요.
왜  그랬다고 생각해요?” 

환상의 빛_고레에다 히로카즈, 1995

           
              

#1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배우는 졸기 시작했다. 한 공간에 있던 나로서는 그녀가 민망할까 문을 열고 나갈 수 없어, 뒤에 서서 열 번은 더 본 그 영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뒤 잠에서 깬 그녀는 아직 영화가 끝나지 않은 것에 실망한 눈치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중에야 그녀는 어두운 회의실에서 내가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그렇게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을 만한 것인지도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본 <카페 뤼미에르>라는 영화는 대만 감독인 허우 샤오시엔이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엔, 내가 아는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몇 군데 있다. 잠에서 깬 엄마가 주방에서 야식을 먹는 딸의 옆에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 임신한 딸에게 무어라도 대신 이야기 해보라며 남편을 구박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부부가 맛있는 음식을 잔뜩 챙겨 혼자 사는 딸의 집을 방문해 함께 먹는 장면이 그것이다. 아빠 역할을 한 배우 코바야시 넨지는 딸에게 뭐라 잔소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하마 같은 덩치로 내내 별 말이 없이 가만히 앉아있거나 밥을 먹는다.

이 가장의 침묵은 가족의 정서뿐만 아니라, 동양의 어른이라는 상징이 가지는 몇 가지 기호를 함께 전달한다. 어른이 된 딸에 대한 존중과 사려 깊음, 말로 표현되지 않는 애정 같은 것을 말이다. <카페 뤼미에르>는 오즈 감독의 <동경이야기>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가족관계와 시대정서를 한 장면에서 긴 시간동안 바라보던 오즈 스타일이, 허우 감독의 손으로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명과 재해석이 이루어졌다고 평가된다. 물론 지루해 졸아버린 여배우처럼, 스토리와 플롯이라 할 만한 것이 없어 취향을 타는 영화임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2

작년 초 씨네토크에 참석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초고를, 열차로 출근하며 너 댓 번 왕복하는 동안 완성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고도 이야기했다. 이 발언은 토크에 참여한 이창동 감독이 ‘이야기는 어떻게 만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관객들은 영화과 신입생이 물을 만한 질문이라는 생각에 잠시 웃었던 것 같지만, 모두가 아는 척 하며 굳이 하지 못했던 본질적인 질문을 한국의 거장 감독이 대신 해준 사실에 곧이어 모두 웃음을 거두었다.

소설가가 목표였던 히로카즈 감독은 25세에 진로를 바꿔 ‘TV Man Union’이라는 프로덕션에 들어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한다. 그가 프로덕션에서 커밍아웃한 에이즈환자를 취재하여 만든 <그가 없는 8월이>라는 다큐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개봉 된 <원더풀 라이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다큐를 찍으며 극영화 시나리오를 써온 그는, 1993년 후지 TV가 <희몽인생>의 배급을 맡으면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그의 지원 아래 2년 뒤 미야모토 데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환상의 빛>을 꺼내 놓는다. 허우 감독은 <환상의 빛>과 관련해 대부분 호평했지만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몇 장면에서 인물이 등장하기 전부터 카메라가 그 공간을 먼저 찍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인물이 그 장소에 있어야 그것을 찍는 의미가 시작되고, 인물이 움직이면 카메라는 그 동선을 따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지적을 수긍했다. 허우 감독이 오즈 감독을 존경하는 뜻에서 <카페 뤼미에르>를 만들어 헌정했듯, 히로카즈 감독은 <환상의 빛>을 만들어 허우 감독의 세계에 경의를 표했다. 이후 그는 가족이라는 대주제 아래, 극영화와 다큐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3

<환상의 빛>은 만들어진 지 12년 뒤에 한국에서 개봉되었고, 내가 그 영화를 본 것은 그리고 몇 년 뒤였다. 영화는 오즈부터 허우 샤오시엔까지 이어온 롱테이크-아이레벨(인물의 눈높이) 샷을 그대로 구사하고 있었고, 인물의 소소한 움직임과 미장센이 주는 정서까지 신인의 데뷔작이라고 보기에는 굉장했다. 그것은 영화 안에 많은 것을 욱여넣어 과잉을 창출하는 데뷔 감독들의 호기로움과는 달랐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철로 위에서 자살한 남자의 아내가 바닷가 마을로 가 다른 남자와 재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전 남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시간이 지나 죽은 남편에게 편지를 남긴다. 결국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전 남편이 자살한 이유는 영화의 끝까지 나오지 않으며, 그녀의 현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가 바다에 빠질 뻔한 일을 빗대어, 누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순간이 있으니 그저 받아들이라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나는 현 남편의 그 대사가 100분 가까이 끌어 온 여자의 답답함을 대변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원작 소설 <환상의 빛>에 보면 역자의 해석이 나온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뭔가를 잃어버리는 일의 연속이다.

그 뭔가는 늘 모호하다. 그러니 말끔하게 정리 된 이야기 속에서는 거짓의 냄새가 난다. 거짓은 잃어버린 그 모호한 것에서 기인하는 외로움과 불안에서 온다. 그 외로움과 불안 역시 모호하니, 거짓말이라도 해서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려면 그 거짓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그 뭔가를 잃어버린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살아가기 위한 거짓말 사이에 자리한다. 뭔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살아가기 위한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역자가 홀로 남은 그녀에게 애정을 가지고 사건을 조금 더 객관화 하여 해석했음은 이해했으나, 그녀를 이해시키려던 현 남편의 시도에서 외려 더 추상으로 멀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왜 전 남편이 사랑하는 그녀를 두고 자살을 선택했는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원작 소설에는 죽은 남편에 대한 극중 여자의 이해가 나온다. ‘확실히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력이라든가 정신력이라든가 하는 그런 표면적인 게 아닌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들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자의 입을 빌려 결론과 같이 이야기한 작가의 문장을 읽고, 무언가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었다. 그리고 그가 죽음을 선택했던 순간을 그저 그렇게 되어버린 것들의 영역에 두고, 얼마간 이해하는 척밖에 할 수 없었다.

              

                     

#4

여우비가 내리고 있었다. 수목원 직원을 취재하러 가던 길이었고, 건물까지 뻗어있는 긴 길 양옆으로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울타리 안에서 보살핌 받아 씩씩하게 지저귀던 새들은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나는 얼른 햇살과 비를 피해야 했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걷는데, 손등에 부딪힌 빗방울이 산란되어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신기한 기분에 발걸음을 멈췄고, 그 자리에 서서 쨍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어진 세상의 틈 사이로 잠시 무언가 본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아무 맥락 없이 한 사람이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참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 열렬히 추구하던 나라는 인간이 느낀 일종의 수치심이었는데,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어떤 아름다움 같은 것이 찰나에 와 닿아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주 오래된 자연스러움은 언제나 내 주위를 머물렀다가 스쳐가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옷을 적시지도 못할 만큼 가벼이 내리는 비도 피하지 못하고 서있었다. 나는 영화 <환상의 빛>에서 그것이 가랑비가 아니라 빠르게 다가오는 기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남겨진 자가 죽은 자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과 더불어, 죽은 자가 남겨진 자에게 이해 받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영화로도 해석되었다. 그는 철로 위에서 그것을 아무도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당연하지 않음의 고통은 그가 선택한 자연스러움의 고통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고, 이유를 몰라 남겨진 자들이 겪는 고통 역시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소멸될 때까지 그 환부를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짐작되었다.

                    

                    

#5

사람이 영화를 만들지만, 정작 만들다보면 영화가 사람을 만드는 경험을 하곤 한다. 작업을 진행해 나가며, 알고 있던 내가 아닌 다른 인격과 깊이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스스로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이것은 모든 영화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점과 닮아있다. 이야기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고, 인물은 무언가 이겨내거나 포기하며 성장한다. 처음 영화를 만드는 이는 자신이 모든 스타일의 방식을 구사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작가의 길을 간다면, 언젠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게 되고 무의식이 천착하고 있던 어떤 주제를 만나는 순간이 온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영화적 스타일을 찾아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고마워, 직접 영화로 허우 샤오시엔에 대한 오마주를 시도한 적이 있다. 물론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만큼 대단한 작품일 수 없었지만, 존경을 허락받을 이유는 없으니 부끄러울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2008년 작 <문경>이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 호부터는 원래대로 사사롭고 소소한 이야기로 만나겠다.

                

                

#6

공돈이 생겼다며 거하게 한잔 사준다던 선배를 따라간 술집 탁자는 하얀 종이로 싸여있었다. 선배들은 뭐가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하며 얼마간 술을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에도 서너 명의 처녀애들이 들어오더니 우리 옆으로 대충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접대부가 나와 술시중을 드는 곳은 한 번도 와보지 않은 터라, 어리둥절하고 왠지 기분이 조금 언짢기도 하였다. 처음 보는 남녀들이 무슨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주거니 받거니 마셔가며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데, 혼자서 두세 잔 연거푸 들이키는 나를 보고 내 옆에 자리 잡은 여자가 심심하였는지 대학생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하니, 이번엔 무슨 과냐고 묻는다. 속으로 네깟 게 그걸 알아 뭐 할 것이냐고 생각하며 대충 문학을 배운다고 답해주었다. 그랬더니 싱긋 웃으며 자기가 시를 하나 지어 볼 테니 봐달라는 것이다. 나는 우스운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조금 궁금하기도 하여, 어디 그래보라며 셔츠 앞주머니에 꽂혀있던 펜을 건넸다. 여자는 펜을 받아들고는 아무 고민도 없이 탁자를 감싼 종이 위에 무어라 빠르게 적어나갔다. 그러더니 다 되었다며 다시 싱긋 웃는 것이다. 강원도 삼척으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 웬 주소 하나가 전부였다. 어리둥절하여 여자를 쳐다보니 자기 어머니가 사는 집 주소란다. 그리고 자기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을 적었으니, 그래서 時라고 하였다. 


글  영화감독 이경원 oldwha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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