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 나의 인문학 공정여행기

                       

11박 13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서유럽 인문학 여행학교는 무의미하게 반복된 일상에 지친 나에게 주어진 조그만한 포상휴가였다. 여행을 가기 전 마음은 그 어느 여행 전과 마찬가지로 그저 재밌게 즐기고 오겠다는 다짐이었지만 여행을 가서야 정말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단순히 함께 온 사람들과 노는 것이 아닌 미술작품 보는 방법을 배우며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시도와 노력, 함께 온 사람들과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 소르본 대학, 보봉마을의 공식방문을 통한 배움 등을 경험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예전의 나를 발견하였고 지금의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었던 것이 인문학 여행학교가 아니었나 싶다. 

                  
이 여행학교를 통한 유럽의 모습 중 가장 감동받고 인상 깊었던 것은 멋진 경관, 아름다운 예술품, 예쁜 골목길 등이 아닌 유럽인들의 삶이다. 그들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이다. 소극적 자유란 외부의 억압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란 의미인데 이것은 마치 넓은 들판 위에 자유롭게 달리는 한 마리의 말과 같다. 그러나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적극적 자유’에서 드러난다. 적극적 자유는 단순히 외부에서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닌 자신의 욕구, 감정 등을 스스로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는 것, 즉 자율적인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자율적인 삶을 산다. 유럽이 시차 퇴근제, 자택 근무제 등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들의 자율성 때문이지 않나 싶다.

              
보봉마을 거주민들은 정부의 정원이나 정책이 아닌 그들 스스로 친환경 마을을 조성하였다. 다른 이들이 시켜서가 아닌 그들이 스스로 그것이 옳다 생각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그들은 도로 하나를 만들 때도 그것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토의하며 어떤 것이 그들 삶을 진정으로 개선시킬지 함께 색출해 낸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삶의 주체가 자신이 되는 것, 즉 타인의 압박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이때까지의 난 분위기에 휩쓸려 나 스스로 세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때가 많다. 공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일지 생각하기보다 ‘남들 다 하는 것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해 온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것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서유럽 인문학 여행학교를 통해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자율적, 주체적, 능동적인 삶과 그것을 살기 위한 앞으로의 인생설계를 해나가야겠고 이것 이외에는 아름다운 풍경, 예술,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기억이라는 미술관 속에 전시될 것이다. 정말 즐거웠기에 더 아쉬웠던 것 같고 나라는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이 될 기억이었다.

                

                

2015년 7월 19일

한국→카타르까지 8시간, 카타르→파리 7시간, 비행기만 15시간을 타고 날아 드골공항에 도착하면서 나의 세 번째 유럽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은 이때까지 했던 여행들보다 조금 더 깊이 있고 편안하며 제한적일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여행은 정말 불편하기도 했고 자유로웠다.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적극적 자유의 의미로 말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공동체 생활인 만큼 나에게 많은 고문을 안겨줄 것이다. 정해진 일정과 정해진 규율 속에, 정해진 공동체 생활 속에서 배려, 절제 등을 배울 것이고 자유를 갈망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늘 그렇듯 여행은 궁극적으로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예상이 되면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 11박 13일이라는 시간이 부산에서 있는 일상보다 얼마나 더 소중한 시간이 될지, 더 소중한 시간이 되기 위해 내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천해야겠다. 또, 많은 이가 나와 함께 공동생활을 할 것이다. 이때까지 나는 처음 본 사람들이랑 쉽사리 친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부터는 최대한 빠르게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 보는 것이 목표였다. 벌써 이름은 2/3 가까이 외웠고 그렇게까지 서먹한 분위기도 아니니, 나의 사교성을 기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노력에 대한 결과인만큼 알찬 시간을 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학창시절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유럽인 만큼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15년 7월 20일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을 ‘인간의 그들 자신의 근원을 말하기 위한 호기심의 결과’라고 정의 내렸다. 우리가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이를 공부하는 것이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 중 하나라 볼 수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인문학에 대해 공부하였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술, 소르본 대학에서 학업의 목적에 대해 생각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절, 그림 한 폭은 그 시대상과 기술발달의 정도, 사상, 문화를 포함한 역사의 발자국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르네상스와 18세기 말까지의 서양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5~7세기 전만해도 기독교의 권위는 현대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막대하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황이 황제보다 더 강했으며 정치가들보다 성직자가 위에 있던 시절에서부터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프랑스 혁명까지의 그림을 보며 나름대로 재해석을 하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던 것 같다. 어제 전한별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신 배경지식이 정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소르본 대학에서는 학업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우리나라의 대학생들과는 다르게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 아닌 수동적 공부를 하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다르다. 내가 공부해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연구하며 소르본 대학교 아카데미 궁전을 둘러보았다.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는지 모르고 하는 공부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다름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진정한 능동적인 삶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여유롭게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는 동시에 그 목적을 찾기를 소망한다.

                   

                       

2015년 7월 22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산이 변하듯, 우리 인류의 기호도 시간에 따라 변해왔다. 그 대표적이고 짧은 예가 에펠탑이다. 에펠탑을 축조할 당시만 해도 많은 파리 시민과 지식인이 반대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 파리라는 도시에 거대한 철근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많은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파리의 랜드마크로 군림하게 된 에펠탑은 프랑스인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의 사랑을 받는 건물 중 하나가 되었다.

                      

에펠탑을 보며 나는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반대했던 지식인들이 미래를 알았더라면 놀랐을 것이다. 당시 가치관으로 최선을 다한다 한들 미래는 늘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결과를 가져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한들, 미래는 모르는 것이고 그것을 예측하기란 참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확신하는 어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예를 들어 ‘절대’라든가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등의 표현으로 미래를 예측하기에 미래는 너무나도 불확실,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23일

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즐기고 파리를 떠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대도시 파리를 떠나는 길에 보았던 파리 외곽의 모습(파리를 벗어난 프랑스의 시골풍경)은 광활한 평야지대와 뜨거운 햇살, 그곳에서 자라는 옥수수, 밀과 그것을 수확하는 농부들, 그들이 사는 집 등 유럽의 농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 광경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산지가 많은 지형이 아니다보니 정말 넓은 곳까지 보였고 유럽인들이 왜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도 공감이 될 정도로 편평했다. 만일 내가 중세시대에 살았더라면 나 역시 그리 믿었으리라고 생각이 들었고 공감되었다. 그렇게 달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였다. 역시 도시의 규모는 파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작고 소박해 보였지만 아기자기하고 중세의 한 도시에 온 것 같은 매력이 있었다. 역 앞의 숙소라 하여 좋지 못한 시설을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파리에서 보다 더 좋아서 정말 편했다. 앞으로 3일 머무를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해 본다.

                   

                          

2015년 7월 25일

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고 그 속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운 스트라스부르의 시내를 둘러보며 골목골목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시간을 보냈다. 노트르담 대성당 – 142m로 꽤 오랫동안 제일 높았었던 스트라스부르 사람들의 자랑이었던 – 을 보니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정말 작아보였다. 이후 유람선을 탔는데 정말 그림 같은 장면들이 많았고 수위조절 되는 것이 정말 신기하였다. petite France(아직까지 왜 그런 호칭이 붙었는지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에 가서 사진을 찍은 뒤 무려 세 시간이나 되는 자유 시간을 보냈다. 보통 골목에 다닐 때 쓰는 ‘되돌아가지 않기’ 라는 방법으로 돌아다녔다. 절대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며 구경하는 방법인데, 만일 가고 싶은 곳을 지나쳤다면 돌아서 그곳으로 간다. 혼자 다닐 때는 정말 좋지만 같이 다니는 사람이 정말 피로할 수도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유럽은 정말 옛것을 지키고 보존 하려는구나.’라고 느꼈다.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이고 최대한 지키려는 것이 우리나라의 빌딩 숲과는 정말 달라보였다. 우리나라도 무조건 신식으로 모양새를 바꾸기보다는 옛것을 먼저 익히고 그것에 맞게 새 문물을 들이는 온고지신의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럽은 역시 길거리, 광장 문화가 발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 마다 공연, 미술 등을 하고 있고 광장이 정말 많아서 좋았다. 특히 광장이 정말 부러웠는데 우리나라의 광장이 없다는 사실이 정치인들이 국민의 힘을 억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정말 싫었다. 어쨌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즐거웠던 하루였다. 


강원준 학생은 2015년 7월 19일부터 30일까지 공감만세에서 진행한 청소년 여행학교 
‘서유럽 청소년 인문학 여행학교’에 참가한 학생입니다. 여행학교에 참여하며 매일같이 쓴 수기 중 일부를 개재합니다. 

   

글 사진 강원준 공정여행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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