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 여기가 어딘지 아니?_기타리스트 송나츠의 집

낯선 기억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신도시에서만 살다 이사 온 동네의 첫 느낌은 ‘을씨년스러움’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인가 싶었던 동네, 안 좋은 기억만 가득한 이 집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불과 2년 전이다. 
                     

소제호가 있던 자리 

소제동 293-54번지일 때부터 새둑길 157이라는 신주소를 받은 지금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15년 전부터 가족 모두가 함께 살던 이곳에 송재형 씨 혼자 살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소제동은 스무 살 송재형 씨에게 낯선 동네였다. 높은 아파트보다는 낡은 주택이 많은 곳, 북적북적한 사람 소리보다는 스산하게 지나는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동네였다. 

         
“IMF 터지고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 정착한 곳이라서 좋은 추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더 많았어요. 스무 살에 처음 동네에 들어서서 느꼈던 인상도 ‘무섭다.’였어요. 살다 보니 적응은 됐지만, 정은 없었어요. 2007년에 가족 모두가 이사하면서 저도 함께 가려고 했는데 못 가게 됐어요.”

                
살면서 집 구조를 바꾼 게 문제가 됐다. 구조를 바꿀 때 동의를 구했던 주인이 바뀌었고, 그러면서 말이 달라졌다. 이 동네에 남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가족만 이사를 하고 송재형 씨 혼자 이곳에 남았다. 
“어차피 재개발된다는 말이 있는 동네였으니까 재개발될 때까지만 살자고 마음먹고 살았어요. 가족이 놓고 간 짐이 많았는데 하나도 안 치웠어요. 집 전체 중에서 제가 이곳에서 사용했던 공간은 침실밖에 없었어요. 잠시 머무는 거로 생각했으니까요.”
2년 전, 대흥동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소제동을 다시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이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익숙함 때문에 몰랐던 이야기와 멋이 있었다. 오래된 것에서 고즈넉함과 추억,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동네의 역사를 배웠다. 이곳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가치를 지닌 곳인지, 조금씩 알다 보니 애정이 생겼다. 

                   

“소제관사21호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소제동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소제관사21호를 관리하는 근대아카이브즈포럼 분들에게 동네의 역사를 배웠죠. 소제동에 원래 소제호라는 큰 호수가 있었고, 이 집이 있던 곳까지 소제호였대요. 일본인들이 지금 계룡공업고등학교 자리에 있던 산을 깎아서 소제호를 메운 거예요. 예전 모습을 찍어둔 사진도 보고, 그러다 보니까 동네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또 대흥동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집에 종종 데리고 왔거든요. 그 친구들도 다 이 동네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드나들다가 그 친구들이 집 치우는 걸 많이 도와줬어요. 쓰지 않는 물건을 다 버리고, 제 공간으로 하나씩 꾸미다 보니까 정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요리하고 꽃 말리고 글씨 쓰지만, 
결국 기타를 치는 곳

동네의 역사를 알고, 배우면서 낯설기만 했던 것들에 이야기가 씌워졌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꾸민 곳이 주방이었다. 언뜻 어지러워 보이지만, 모든 것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송재형 씨는 이곳에서 요리를 한다.‘응답하라 1981’이라고 쓰인 갈색 문을 열면 벽에 흡음재를 붙인 작은 녹음실이 있다. 재형 씨는 이곳에서 기타를 치고, 음악을 만든다. 천장엔 하나둘, 말린 꽃이 달려 있다. 가끔 꽃을 말리고 엽서를 만든다. 바닥에 하나둘 놓인 까만 만년필 잉크는 송재형 씨가 쓰는 만년필 손글씨의 재료다. 벽에 붙은 고무동력기 설계도는 한때 송재형 씨가 즐긴 취미의 흔적이다. 요즘 송재형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건 영상 찍는 일이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집중해서 하는 편인데, 주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음악 말고 다른 것들은 다 그래요. 그런데 어느 것 하나 돈을 내고 배운 건 없었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꾸준히 하다 보면 스스로 만족할 만큼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좋아요. 돈벌이는 안 될지 모르겠지만, 제 삶이 풍요로워지는 방법인 것 같아요. 어떤 형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넌 상위 1%처럼 산다고요.”

                          

열다섯, 교회에서 처음 기타를 만졌다. 녹색 표지로 된『찬미예수500』을 펴놓고 기타를 쳤다. 스물셋, 언더그라운드밴드 활동을 하다가 스물여덟부터 자판기커피숍 멤버로 활동했다. 지금은 밴드 활동을 접었다. 요즘은 혼자 음악을 만들고 연주를 한다. 
“다른 건 조금씩 했지만, 음악은 열다섯부터 지금까지 죽 좋아했던 것 같아요. 딱 한 번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스무 살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정말 힘들었거든요. 내가 이렇게 힘든 이유가 음악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것 같고,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기타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며칠도 안 갔어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평가나 잣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평범하다는 기준 있잖아요. 돈도 모아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요. 사람들이 자기만의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틀리다고 생각하잖아요. 다른 것 뿐인데 말예요.”

              

                    

풀벌레 소리가 어울리는, 사람과 공간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키도 크고 몸도 커서 긴 머리 휘날리고 오토바이 탈 때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송재형 씨는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꽃을 말려서 엽서를 만들고, 얇은 만년필로 글씨를 쓴다. 어떤 날은 중앙시장에서 연어를 사 와 연어 초밥을 만들어 준다. 누군가는 그에게 기타를 배우고, 다른 무엇을 할 때보다도 기타 치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내가 뭘 해야겠다는 마음 같은 거 없었어요.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 제가 연극 음악 감독을 하면서 연극을 자주 접해요. 연극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사람이 다 자기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주연이고, 누군가는 조연이고, 그래도 다 자기 자리에서 사는 거잖아요. 기타를 치는 게 지금은 저의 정체성이 된 것 같아요. 지금 이 자리가 제 자리인 것 같고요. 나츠라는 이름은 별 뜻 없어요. 그냥 만화 ‘성남2인조’에서 조연이었던 친구인데 기타를 쳤거든요. 그 친구 이름이 나츠였어요.”

                  
씩씩하게 걸음을 걷다 차보다는 나무가 많은 곳에 잠깐 멈춘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고 가만히 있다 보면 풀벌레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가을을 알리는 소리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서 목청 터지게 우는 매미보다는 선선해지는 가을밤 쓸쓸하게 우는 풀벌레 소리가 더 어울리는 사람, 송재형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사는 집, 작업하는 공간도 뙤약볕에서 열심히 울어대는 매미처럼 분주하게 이것저것 벌어지는 곳이었지만, 어쩐지 풀벌레 소리가 더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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