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6호] 고양이와 산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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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이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친척 결혼식이나 집안 어른들의 잔치에 같이 가자고 해도 ‘왜 거길 가야하느냐’며 따져 묻기 일쑤고, 어찌해서 참석해도 잔치에 모인 또래의 친척들과도 어울리려는 기색이 없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었구나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내는데,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어느 날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아이는 홀로 놀 만한 것들을 찾아 저만의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게임이 최고였던 것 같다. 게임하기에 적합하도록 조립 컴퓨터로 세팅을 하고 아이는 온종일 게임을 즐겼다. 컴퓨터는 당시 유행하던 서든어택 등과 같은 각종 게임들이었고, 집안은 게임의 배경음악과 효과음으로 윙윙거렸다. 

또래친구들은 멀쩡하게 학교에 잘 다니는데, 이 녀석은 도대체 학과공부는 관심 밖이고 게임으로 밤낮을 지새우니 부모의 가슴은 답답할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엄마는 그렇게 게임하기에 바쁜 아이를 그대로 두는 것은 방치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아이의 생활에 간섭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간섭이 많아질수록 엄마와의 갈등은 심해져 갔다. 그에 따라 아이를 보는 부모 사이에도 의견출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부모로서 역할이 있고 또 자식을 바르게 키울 의무가 있으니 아이를 저대로 방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그래도 아이를 믿고 지지하며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기다려 보자는 입장으로 엇갈리기도 했다. ‘훈육’에 의한 교육과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는 ‘자율성’ 사이에서 오락가락 했다. 게임에 빠져 외톨이로 보내는 아이를 언제까지 그냥 두고 봐야 하는가, 이것이 부모의 큰 고민이 되었다. 

아이가 게임에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고 각종 물고기 기르기에 관심이 높아지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달된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얻게 되었다. 한 놈은 검은 고양이이고 다른 녀석은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회색이었다. 오자마자 어린 고양이임에도 학~학~ 거친 소리를 내며 낯선 주인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니 과연 저 고양이를 얼마나 더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고양이에 대한 선입관이 있어서 고양이를 곱게 바라보기도 어려웠다. 

고양이는 종종 개와 비교되곤 한다. 표정은 새초롬하고 도도하다. 개는 외출에서 돌아오면 꼬랑지를 흔들며 온몸으로 주인을 맞이하건만 고양이는 도무지 반기는 모습이 전혀 없다. 개고기는 인기가 높아 옛날에는 동네 어귀에서 개 잡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몽둥이로 때리고 불로 그슬리는 상황에서 도망쳤던 개가 다시 주인을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주인에 대한 개의 충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죽도록 맞아도 다시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찾아오는 개의 습성에 비하면 고양이는 불손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다. 
게다가 눈동자는 세로로 세워져 있어서 매섭고 날카로워 정이 가지 않고 발정기가 되면 교교한 울음소리로 수컷을 부르는데 그 울음소리가 처량한 아기울음과 같아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개의 역할은 위험에 처한 주인을 구하고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가 대부분이다. 반면 고양이는 특히 검은 고양이는 저주를 부르거나 섬뜩한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쓰이곤 한다. 

고양이에 대한 이러한 편견이 사라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이가 게임을 즐기다가도 고양이가 궁금하면 밖으로 나가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와 놀곤 했다. 고양이는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주로 잠자기를 즐기고 밤에는 어디론가 사냥을 떠난다. 3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고양이는 야간 산책을 하는 아이를 따라 나서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어스름한 때에 아이는 홀로 동네의 외진 길을 따라 산책을 하곤 했는데, 고양이도 그 산책길에 동행을 하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대여섯 걸음 정도 뒤에서 아이를 따라 가곤 했는데, 산책로로 잡은 그 길이 익숙해진 탓인지, 저녁식사가 끝나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고양이는 예상이라도 한 듯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아이보다 대여섯 걸음 앞서서 산책길을 가는 것이었다. 


아이와 함께 그리고 고양이와 같이 산책을 하며 아이는 그 안에 묵혀 둔 상한 마음을 조금씩 털어 놓았고 엄마는 엄마대로 그렇게 홀로 지내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며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끌어안게 되었다. 고양이는 시나브로 아이의 산책길에서 더없는 동행자이자 도반이 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도도하다는 것은 우리 가족의 편견이었으며, 그런 모습이 주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고양이는 주인의 배려와 관심에 대해서 보답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말하자면 쥐잡기의 명수로서, 주인을 위해 사냥한 쥐들을 전리품으로 주인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보란 듯이 늘어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고양이의 눈매가 매섭게 생기긴 했지만, 그 눈빛은 우리 가족에게 친근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문밖에서 산책 나오기를 기다리는 고양이,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편견을 줄이는 길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기다림이란 더 먼 곳을 바라보게 하고,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한다고 하신 고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를 다시 한 번 새겨보는 한겨울이다. 


글  이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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