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 참남배기에 사는 사람들

참남배기 혹은 참나무배기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마을은 어떤 존재일까. 마을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온 개인의 서사를 듣고 싶었다. 여러 번 찾아가 어렵게 만난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짧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 중 마을에 애정을 품고 있지 않은 이는 없었으며 마을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역시 생각보다 마을 사람들은, 아파트가 시야를 막고 밤이면 매연 냄새가 짙어지는 이곳을 떠나도 ‘괜찮아’ 했다. 물론 우리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 전체 이야기를 대표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 모두를 만날 수 없었으며 만난 사람 중 몇은 이야기하기를 꺼리기도 했다. 단, 이곳의 먼 옛날이 아주 아름다웠다는 것, 지금과는 천지 차이라고 할 만큼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만은 마을 사람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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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편하게 살아야지” 이인희(80)

태어나 한 번도 마을 근처를 떠나본 적 없다. 참남배기 마을 바로 옆에서 살았던 할아버지는 결혼하고 이곳에서 가정을 꾸렸다. 태어난 마을은 이미 사라졌고 평생 일하며 산 마을 역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특별히 아쉽지는 않다. 도시라는 게 원래 그렇게 형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는 동안 마을 모습을 많이 봐 왔고, 마을이 사라진다 해도 앞으로 살날이 남았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서른 즈음에 분가해서 이 마을로 왔지. 스물여덟인가에 결혼했어. 부인은 천안에서 살았고. 선으로 했지. 다른 거 있겄어? 평생 부인이랑 농사지으며 살았지. 뭐 별 거 있나. 벼 농사지은 거지, 뭐. 3남 1녀 뒀어. 농사지어서 애들 전부 대학 보냈어. 힘들었지. 농사짓는 게 여간 대간한 일이 아니야. 
원신흥이랑 문산 다 있었을 때는 친구도 많았지. 옛날에는 다 논밭이었으니까 농사짓는 사람이 많았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친구들끼리 모이는 날이 있었어. 그때는 모두 참남배기에서 모였지. 이 마을에 경로당이 있어. 거기 모여서 점심 사 먹고 약주 한 잔씩 하고 그러는 거지. 그건 요즘도 혀. 한 스무 명 모였는데 지금은 다 떠나고 어쩌고 해서 열세 명밖에 안 돼. 마을 사라지기 전까지는 여기서 모이겠지. 사라지면 뭐 다른 데서 모이면 되지. 
내년이면 공사 시작한다니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는 않았어. 그래도 도시에서 좀 편하게 살아야지. 지금도 아픈 데가 한둘이 아녀. 그런데 여기 있으면 가만히 있지를 못 혀. 계속 할 일이 생기니까 왔다 갔다 하는 거지. 농사짓기는 힘에 부쳐도 시골에서는 여간 할 일이 많은 게 아녀. 도시에 가면 거기도 다 경로당 같은 데 있지 않겠어. 거기서 사람들 만나고 놀면 되지, 뭐. 

      

      

“옛날에는 여기서 유성까장 보였어” 윤기선(78)

이인희 할아버지가 집을 비운 어느 아침, 윤기선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시집와서 살았던 마을이 사라졌고 다시 이사해 정을 붙인 마을도 사라질지 모른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할머니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마을’이 아니라 ‘생활’이다. 함께 사는 아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추석 때 올 자식들에게 먹일 음식 걱정을 하면서 할머니는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나는 저쪽 문산에서 살다가 여기로 이사 왔어. 올해 일흔여덟인데 스물다섯에 문산으로 시집와서 조금 살다가 신흥리에 땅이 있어서 이사 온 거야. 참남배기가 신흥리야. 문산은 다 없어지고 지금 휴먼시아 아파트가 있지.
문산이 동네가 컸지. 신흥리는 논 가운데 있는 동네였지. 그래서 나 시집오기 전에는 비가 많이 오면 신흥리에 있는 집들이 무너졌다대. 옛날에는 흙으로 집을 지었으니 비가 오면 무너지고 했대. 그래서 좀 높은 데로 가서 집을 지은 게 문산이라고 했어. 문산은 올라앉은 동네였거든.
신흥리에 집을 사서 이사 온 지는 45년 정도 돼. 주위에 아파트들 짓기 전에 이사 왔어. 그때만 해도 아주 공기가 좋았지. 아파트 생기고는 공기가 안 좋아졌어. 옛날에는 여기서 유성까장 보였어. 그런데 아파트 생기니까 시야가 가리지. 예전에 성당 모임으로 유성 햇살 아파트 12층에 가면 거기서 우리 집이 보였어. 여기가 다 벌판이었잖아.

옛날얘기를 해 보라고? 나무 기억이 나네. 신흥리나 문산이나 큰 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어. 느티나무인가, 느티나무가 맞을 거 같아. 신흥리는 신흥리대로 문산은 문산대로 대보름 전날에 나무를 위하는 제사를 지내고 그랬어. 농사 잘되고 주민들 건강하게 잘 지내게 해달라는 제사였지. 나는 지금은 성당엘 다녀서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그때는 나도 제사를 지냈어.

마을 사람들 많았지. 신흥리보다 문산 사람들이 많았어. 큰 동네라 재밌었지. 대보름날이 마을 잔칫날이었어. 한 집이 제사를 준비하면 마을 사람들이 돈을 걷어서 줬지. 대보름 전날 제사를 지내고 대보름 날은 제사 준비한 집에서 잔치를 하는 거야. 제사 준비하는 집은 때를 보고 정해. 그 집 부부가 운 닿는 때가 있어. 그 때가 정해지면 하기 싫어도 마을을 위해서 해야 돼. 얼마나 정성을 들였다고. 제사 전에 한 주 동안은 찬물에다 목욕을 날마다 해야 혀. 마을을 위해서 그런 거지. 갑천에서 깨끗이 목욕을 했었어. 그래도 감기가 안 걸리는 걸 보면 뭔가가 있었어.

이 집에서 아들 내외랑 같이 살고 있어. 아들 내외는 일 나가고 없지. 나도 평소에는 집에 안 붙어 있어. 성당에 다니니까 그 일로도 바쁘지. 얼마나 바쁘게 다닌다고. 
오늘은 하는 수 없이 김치를 좀 담그느라고 집에 있었어. 이게 열무가 아니라 무인데 이 줄기로 김치를 해 보려고. 추석 때 애들 오면 줘야지.

            

         

“이 동네 나가면 이제 농사는 안 지어” 박숙자(77)

두 딸과 함께하는 할머니의 저녁은 즐겁다. 과거를 회상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딸들이 하나둘 살을 보탠다. 자식들을 낳아 기른 곳을 떠나는 것이 그리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다. 할머니에게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은 편하게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동네에서 농사지으며 힘들게 사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편하게 지내고 싶다. 

나는 스물두 살에 창말에서 시집 왔어. 창말이 어디긴 지금 구암동이지. 가차운 데여. 논두렁길을 차를 타고 오는 데 아주 시골이더라고. 전기도 안 들어왔고 호얏불로 지냈어. 지금 일흔일곱이니까 여기서 오래 살았지. 아마 내가 참나무배기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일 거야. 참나무배기는 참나무가 많았다고 지은 이름이야. 없을 때는 참나무를 뽑아내고 집을 지었댜. 

그 옛날에는 갑천에서 조개랑 다슬비도 잡고 그랬어. 조개로는 국을 끓여 먹었지. 재첩 비슷한 거 있어. 말조개라고 하든가. 
지금 할아버지는 가고 없지. 옛날에 우리 집이 보름날에 고사 지내는 게 제일 많이 걸렸어. 내우 같이 살 때 말이야. 내우 둘 다 때가 맞아야 해. 우리가 여튼 제사를 제일 많이 했어. 그거 하면 술도 준비하고 잔치도 하고 먹고 그냥 노는 거야.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끼리 재미나게 놀았지. 지금은 마을 사람들 다 흩어지고 여기에 본토박이는 얼마 안 돼. 
지금 논농사 밭농사 전부 짓고 있어. 힘들어도 새끼들이 도와주고 해서 먹고 살지. 이 동네 나가면 이제 농사는 안 지어. 서운하긴 해도 어떻게 계속 농사만 짓고 살 수 있겠어.

              

                  

“아파트로 시야 막히니 답답하죠” 임춘자(61)

임춘자 씨에게 이곳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자동차 매연으로 안 좋아진 공기를 들이마시고 아파트로 꽉 막힌 시야 때문에 답답하지만,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지는 않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올해로 17년이 됐네요. 우리 시댁이 9단지 있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이곳을 알게 됐어요. 여기는 아주 시골이었죠. 공기도 좋았고요. 여름에 많이 더울 때도 요 앞에 나와 있으면 좋았죠. 
개발 들어가며 공기가 안 좋아졌어요. 저 멀리 도로 높이가 우리 집 지붕 위치만 해요. 자동차 매연이 다 흘러들어오죠. 저쪽 아파트 있는 쪽에는 방음벽이 있는데 이쪽으로는 만들어 주지 않더라고요. 처음 도로 개통하고 나서는 매연 때문에 잠을 못 잤어요. 비염도 생겼고요. 동서대로 뚫리기 전에는 아주 차가 꽉 막혀서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개발되면서 살기가 안 좋아졌어요. 바로 집 앞까지 아파트로 시야가 막히니까 답답하죠. 

이 마을은 오래돼서 집들도 겨울이면 말도 못하게 추워요. 수도도 놓여 있지 않아서 지하수를 써야 해요.  땅속에서 나오는 물이 좋을 리 없죠.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 건강이 안 좋아요.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요. 저희는 차 타고 선양소주까지 가서 물을 떠다 먹어요. 
저도 암에 걸렸었는데 치료하고 나서 즐겁게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웃음에 관해 배우고 나서 웃음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었는데 남들 앞에 서면서 밝아졌어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하고요. 행복해지는 방법은 생각보다 쉬워요. ‘하하하’ 웃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도 하하하, 거울을 보면서도 하하하.
집 앞 고양이들은 옆집이랑 같이 사료 사서 먹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 와도 무서워하지 않죠. 고양이가 없으면 마을에 쥐가 많아져요. 집에도 들어오고 난리예요. 고양이가 다니면 마을 쥐는 다 잡아먹으니까 좋죠.

        

               

“어렸을 때는 고기도 잡아먹었어” 안명근(74)

안명근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곳을 떠나며 잠시 다른 아파트에 들어가 살았는데 다시 논밭이 있는 이곳으로 와 농가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마을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자신들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하는 이사만 벌써 몇 번째다.

2007년에 용반에서 왔어. 용반에서는 2005년에 1단계 개발하면서 나와서 잠깐 아파트에서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사 온 거야. 사람들은 아파트가 좋다고 하지만 저 위에 가서 사는 거랑 땅을 밟고 사는 거랑 뭐가 더 나을까. 어떻게 생각해?
1차 개발할 때 황망했지. 거기서 대대로 농사짓던 사람인데 쫓겨나는 기분이지. 전부 나이 든 사람만 있는데 농사짓던 터전을 잃어버리고 쫓겨나는 기분이었지. 
옛날에는 여기가 아주 시골이었어. 집들도 초가집이었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 개량 하면서부터 모습이 많이 바뀌었어. 예전에는 공기도 좋은 정도가 아니고 그렇게 살기 좋은 데가 없었어. 지금 이 근처 자연마을은 모두 쫓겨난 상태고 여기 참나무배기만 남아 열 가구 정도가 살고 있어.

여기가 개발되면서 많은 게 변했지. 첫째로 인심이 사나워졌어. 옛날 인심 같으면 있는 거 없는 거 나눠도 먹고 하는데 점점 그런 게 없어졌지. 그래도 우리 집은 담장을 안 해 놨어. 담장을 할 이유가 없어. 뭐 가져갈 게 있어?
그리고 이 앞에 아파트 공사를 해서 소음공해가 있는 상태야. 항의해도 대기업에서 짓는 거라 우리말에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아. 씨도 안 먹혀.

갑천 수질은 예전과 지금이 하늘과 땅 차이지. 어렸을 때는 고기도 잡아먹었어. 고기 맛이 좋았지. 모래무지, 메기, 피라미 그런 걸 잡아먹었어. 회를 떠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그렇게 먹어도 배탈이 안 났어. 지금은 물이 탁해서 잡은 고기를 바로 먹을 수가 없지. 낚시하는 사람도 없고. 우린 아직 수도 혜택도 못 받았아서 지하수를 쓰고 있어. 그래도 우리는 차가 있으니까 흑석리 지나서 선양소주 물을 떠다 먹고 있어. 우리 마을은 전기만 들어올 뿐 다른 혜택은 못 받고 있어.

         

         

“다 뜯기는 마을인데 바라는 게 어디 있어” 송금화(69)

안명근 할아버지와 송금화 할머니는 마을의 변화에 따라 함께 사는 곳을 옮긴 인생의 동반자다. “아저씨가 하는 걸, 뭐.”, “아저씨가 잘 알지.”라며 말을 아끼던 할머니가 짧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저씨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마을이 예전에는 참 좋았다는 것.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는 맛이 있었다는 것 말이다.

텔레비전이 크다고? 잠깐 아파트 살았을 때 산 거야. 저쪽 용반에서 살다가 개발되면서 잠깐 아파트 들어가서 살았었어. 그래서 나는 아파트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 누구는 아파트 살면 그리 답답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건 없어. 다만 농사지을 연장 놓을 데가 없어서 안 좋지. 지금도 심심하면 아파트 사는 친구네 가서 놀다 오는걸. 여기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이주 택지로 가더라도 사는 건 똑같지. 그쪽에도 논밭이 조금 있어. 농사는 힘이 달리면 못하는 거지. 지금은 조금씩 하고 있어. 고추 조금, 배추 조금 골고루 해서 먹고사는 거야. 다 조금씩 농사지으니까 사다 먹을 일은 없지. 
다 뜯기는 마을인데 바라는 게 어디 있어. 이제는 모기 없는 곳에서 편하게 살고 싶어. 이 마을에 이제는 행사 같은 건 없고 삭막하지. 그래서 나도 아파트로 친구 따라 놀러 가는 거야. 아파트는 문 닫고 들어가면 삭막하지. 시골이 낫긴 나은데 지금은 아파트나 같아. 그전에는 이웃집을 내 집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했는데 지금은 서로 문을 닫고 살지. 

저쪽 마을 사람들끼리는 잘 지냈는데 마을 뜯기면서 동서남북으로 흩어졌어. 돈 있는 사람들은 좋은 데로 가고 없는 사람은 안 좋은 데로 가지. 한 번 뜯기면 그렇더라고. 그래서 모임을 하잖아. 어제도 유성온천역 있는 데서 만났지. 여덟 명이 모여. 아저씨들은 말고 여자들만 하는 모임이지. 지금은 농사가 조금 덜 바쁠 때야. 농사 바쁠 때는 힘들지.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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