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 제소리를 내는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참남배기 마을 이야기

참남배기 마을은 도안 갑천지구친수구역개발사업 대상지에 있는 마을이다. 
예정대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빠르면 내년 사라질 지도 모르는 마을을 기록했다.

 


 

사진
참나무가 많았던 마을

곳곳에 우뚝 솟은 아파트단지와 죽 뻗은 도로가 도시 전체에 새 집 냄새를 풍긴다. 도안신도시로 가는 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다고 생각했던 도시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풍경의 변화는 냄새도, 소리도, 모두 바꿨다. 도로에서 계단 여섯 개는 내려가야 할 것처럼 움푹 팬 곳에 마을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넓은 들과 그 뒤로 뻗은 도솔산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마을은 화려하게 새 옷을 차려입은 주변 건물에 눌려서 잔뜩 움츠린 것처럼 보였다. 버스를 타고 신안인스빌리베라 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서 도솔산이 보이는 쪽으로 가다 보면 마을 입구가 나온다. 


마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길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곳을 따라가면 집이 나온다. 주황색 지붕, 파란 지붕, 네모 반듯한 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여섯 채가 모여 있다. 참남배기라는 마을 이름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기 전에 참나무가 많은 들판이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두산백과에는 ‘고잿들, 덜레기, 문산, 양지덜레기, 음지덜레기, 참남배기 등의 옛 마을과 물레산 안산 등의 야산이 있다.’라고 나온다. 마을에서 만난 이인희 할아버지는 손가락질로 옛 마을의 위치를 하나씩 알려주었다. 신안 인스빌아파트 쪽이 원신흥 마을이었다. 원신흥 마을은 다른 자연마을의 본바탕이 되는 마을이다. 지금 남은 ‘원신흥동’이라는 이름이 원신흥 마을에서 딴 이름이다. 마을이 크게 흥하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 내려온다. 한창 아파트 공사 중인 곳, 지금 참남배기 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도로 건너편이 문산 마을이었다. 문산 마을 남쪽으로 덜레기 마을이 있었고, 덜레기 마을은 다시 양지덜레기와 음지덜레기로 나뉘었다. 고잿들은 홍도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제 자리에서 살길을 찾는다

마을에서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많이 봤다. 어느 집 담벼락 아래 놓인 은색 양은그릇 하나에 고양이 여섯 마리가 고개를 박고 밥을 먹고 있었다. 오전 열 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고양이들이 알고 있는 식사시간이었던 것 같다. 몸집이 작은 놈도 있었고, 제법 몸집이 큰 놈도 있었다. 냄비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얼굴 전체를 그릇에 박고 정신없이 먹는다. 식사를 마친 고양이들은 물끄러미 사진기를 든 인간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뿔뿔이 제 길을 갔다. 고양이들도 이 마을에서 사는 방식이 있었다. 
마을에서 도솔산이 보이는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갑천누리길이다. 평일 오전에도 자전거를 타고 갑천누리길을 달린다. 그 사람들 역시 가끔 그곳에 소리를 더한다. ‘쌩’ 바람을 가르고 지나가는 소리, 가끔 스피커에서 나오는 큰 소리가 자전거 길에 소리를 더한다. 어떤 때는 성인가요, 어떤 때는 라디오 뉴스, 어떤 때는 클래식 음악이다.


8차선 도로가 선을 그은 마을 입구 쪽을 ‘마을 앞’이라고 칭한다면 갑천누리길은 ‘마을 뒤’에 선을 그었다. 앞은 자동차 도로가, 뒤는 자전거 도로가, 마을 둘레에 경계를 지은 셈이다. 앞으로는 아파트가 하늘을 찌르고, 뒤로는 산이 솟았다. 앞뒤로 거대한 것들이 폭 짓눌러 움푹 팬 마을이 제깐엔 나무도 기르고, 농작물도 기르고, 무엇이든 품어보려고 애쓰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뒤를 지키는 도솔산을 물건너산이라고 부른다. 도안신도시 개발 전에는 앞뒤로 산이 둘러싸고 있던 마을이었다. 
마을 뒤 갑천누리길에는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이 여럿이다. 마을 안으로는 골목골목 다니는 길이 없다. 대부분 논밭이라서 논밭을 경계로 앞뒤로만 길이 난 듯싶다. 마을에는 경로회관도 있다. 마을에서 만난 이인희 할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씩 주변 마을에서 살던 친구들과 만나 점심도 먹고 약주도 한 잔씩 한다는 곳이다. 평소에는 닫혀 있는 모양이다.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다. 마을 안에서 8차선 도로 쪽으로 가니 쌩하는 자동차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논밭이거나 논밭이 아닌 길에는 나무가 숲처럼 우거져 있다. 감나무, 밤나무, 배롱나무, 은행나무, 대추나무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개중에는 시들시들 이파리가 누렇게 변한 것들도 있다. 조금씩 변한 환경에 적응이라도 하는 듯 제자리에서 살길을 찾는다. 

 

 

자리 잡은 그곳이 제 마을이었다

8차선 도로가 선을 그은 마을 앞에서 멀어질수록 새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한 번씩 마을을 다 둘러보고 마을 뒤에서 마을 앞으로 난 다섯 번째 길에서 30년 동안 이곳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다는 박기화 씨를 만났다. 
“저는 지금도 여기가 살기 좋아요. 우리 집은 과수원을 해요. 포도, 사과, 별거 다 하는 거지. 남편이랑 둘이서 평생 농사지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을 쓰면 남는 것도 하나도 없어요. 종일 일하다가 밤이면 갑천 길로 산책하러 나가요. 산책 나가서 풀숲에 요렇게 불빛을 비추면 짐승들 눈이 반짝반짝해요. 여기 자체가 생태공원인데 무슨 공원을 또 만든다는 건지.”
박기화 씨를 만난 마을 길에는 듬성듬성 쌓인 쓰레기가 곳곳에 있다. 더는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이 비닐하우스를 걷어낸 자리다. 개발이 아니었다면, 동네는 밖에서 보기에도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것 같았다. 마을 안에서 자라는 동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이곳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건 실감 나지 않았다. 
참남배기 마을에 사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들었던 수많은 소리는 이곳에 사는 생명체들의 소리였다. 길마다 서 있는 나무, 꽃, 흐르는 물, 하늘을 나는 새, 위험한 도시에서는 갈 곳 없는 길 고양이, 사람이 키우는 농작물에게도 이곳은 제 마을이었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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