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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2호] 10월 특집_도안갑천지구친수구역개발사업
도시를 만드는 건 인간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은 인간만을 생각하며 도시를 만든다. 환경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틀림없지만, 투표권이 없는 동식물은 사람이 사는 곳의 배경화면으로만 취급된다. 한 번 파괴된 환경을 다시 되돌리는 데는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월평공원은 국가에서도 인정하는 생태공원이자 습지입니다. 도심에 이렇게 산과 강이 만나서 자연적으로 습지가 조성된 곳이 거의 없어요. 만약 5,500세대 아파트가 이 앞에 들어선다면, 월평공원 생태계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밤이면 5,500세대에서 빛이 쏟아질 거예요. 형광등 빛과 가로등 불빛, 그리고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소음이 먼저 월평공원을 변화시키겠죠. 또 사람들이 월평공원으로 산책을 올 테고,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하면 민원이 들어갈 거예요. 자연 그대로 어지럽게 난 풀숲길은 깨끗하게 정비될 테고,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동식물이 이곳을 떠나게 될 거예요.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 자연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양흥모 사무처장의 이야기다. 8월 권선택 시장이 ‘도안 갑천지구친수구역개발사업’에서 호수공원은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문제는 호수공원이 아니었다.
‘호수공원’이라는 낱말이 대전광역시에 떠오르기 시작한 건 2005년이었다. 민선 3기를 지낸 염홍철 시장은 ‘서남부권 택지개발지구 내 호수공원 조성계획’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민선 4기 당선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이후 민선 5기에 당선된 염홍철 시장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예산을 확보해 100% 국비로 도안호수공원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안호수공원은 ‘호수공원’만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국비확보에 실패했지만, 애초 계획은 사라지지 않고 수정되었다. 염홍철 시장은 전체 면적의 45%인 38만2,000㎡를 호수공원으로 만들고 나머지 47만4,000㎡는 주거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주거단지를 개발하면서 개발이익으로 호수공원조성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2012년 대전시는 4대강 공사비 회수를 위한 친수구역 지정 제안서를 제출했다. 친수구역이란 4대강 등 국가하천 주변 땅을 주거지나 상업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지정한 곳을 말한다. 4대강 개발 사업의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개념이다. 2014년 1월, 서구 도안동과 유성구 원신흥동 일대 농경지 85만 6,000㎡가 친수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월평공원은 갑천이 흐르고 도솔산을 품은 곳이다. 멸종위기 어류인 미호종개와 땅귀개, 황조롱이, 부엉이 등 34종의 어류와 49종의 조류가 발견되었으며, 국토해양부가 주최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갑천과 자연이 만든 생태습지가 조성된 이곳에 인공 호수공원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호수공원 조성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니까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도 어폐가 있고요. 아파트를 지을 때는 먼저 대전이라는 도시에 5,500세대의 아파트를 새로 지어야 할 만큼 살 곳이 모자라는지부터 따져 봐야 하죠. 그런데 호수공원조성사업을 진행하다가 사업비를 마련하지 못하니까 아파트를 개발해서 그 이익으로 공원을 만든다는 거였어요.”
대전충남녹색연합 양흥모 사무처장의 이야기다. 2015년 7월 말 대전시 주민등록인구현황에 대전시 인구는 1,541,229명(외국인 포함)이다. 2014년 1분기 1,549,945명(외국인 포함)에 비해 8,716명이 줄었다. 인근의 세종시로 많이 빠져나가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인구가 늘 가능성은 적다. 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7월 말 대전의 미분양 주택은 1,322세대로 나타났다. 사람은 넘치는데 살 집이 없어서 아파트를 짓겠다는 게 아니다. 무엇을 위해 아파트를 세워야 하는 건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2015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발과 시민의 여론으로 논란을 지속했다. 이에 2015년 8월 권선택 시장은 도안 갑천지구친수구역조성사업에서 호수공원을 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발을 진행하며 지급한 보상금과 개발규제를 해제할 경우 우려되는 난개발을 이유로 전면 백지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호수공원을 조성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파트를 개발한다고 한 거였어요. 그러니 호수공원을 조성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아파트를 짓는다는 건 대전시가 시민을 대상으로 집 장사를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도안 갑천지구친수구역개발사업 백지화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올 6월부터 대전시청, 도안동, 원신흥동에서 서명전과 선전전을 벌였다. 시민대책위에는 대전충남녹색연합을 비롯한 25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전면백지화를 주장한다. 환경부 역시 도안갑천지구친수구역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환경부가 전달한 의견 내용은 ‘호수공원 조성계획을 습지생태공원 조성계획으로 변경할 것’, ‘야생동물 서식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 ‘갑천변에 있는 완충 녹지대를 지금보다 확대해 최소 40m 이상 확보할 것’, ‘공동주거단지의 최고 층수를 20층 이내로 할 것’이다. 9월 18일 권선택 시장은 시민대책위와 한 시간가량 면담을 진행했다. 이날 권선택 시장은 “보상 중단 및 법적 절차는 중단할 수 없으며 사업을 백지화하는 재검토는 불가능하다.”라며 “다만 사업을 평가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검토위원회 구성은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또 25층 이상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20층 이하로 층수를 낮출 것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권선택 시장 역시 문제를 인식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소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검토위원회라는 낱말에서부터 ‘검토’의 범위는 어떻게 할지, 검토위원회로 할 건지, 재검토위원회로 할 건지에 대한 것부터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처음으로 대화와 논의를 진행한 만큼 의견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양흥모 처장의 이야기다.
유기체인 도시는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 없다. 새 옷은 헌 옷이 되고, 도안신도시 역시 언젠가는 원도심이 될 것이다. 5,500세대가 잠깐 즐거우려고 도시의 먼 미래를 해칠 수는 없다. 월평공원 생태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우리 도시에 살 수많은 사람 때문이다. 도시는 우리 세대만 사용하는 게 아니며, 소비만 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이 도시의 자원을 훼손하기만 할 때, 숨 쉬는 것만으로도 다음 세대에게 빚을 지는 꼴이다. 언젠간 낡을 아파트와, 제대로 보존했을 때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처가 될 월평공원이 있다. 이 도시에 앞으로 살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물려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