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 부채를 탕감하라]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빚으로 지은 집』

‘거품은 반드시 터지게 되어있다.’ 이것은 이 땅이 막되어 가기를 바라는 주술문이 아니다. 좌파이기 때문에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우파이기 때문에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과도 상관없다.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려고 하느냐,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느냐는 사실에 더욱 가깝다. 


우리는 이제 막 고3인 아이들이나 대학생들이 태어나거나 갓난아이일 때 IMF를 겪었다. 은행 이자는 천정부지로 뛰고 주택을 날리다시피 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기업이 어떻게 파산하고 실업에 내몰리는지 부모들은 똑똑히 목격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이 왜곡된 경제를 바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사실의 도래를 또 한 번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 마뜩잖을 것이다.


굳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경제적 공황의 주기를 반복하거나, 경제공황은 실업으로 이어져 정치공황도 반복된다는 이론으로 교과서처럼 현 상황을 풀어헤칠 필요는 없다. 유럽의 정치 상황을 구경삼아 ‘위기이니 좌파가 집권하면 다를 것이다.’라거나, 권력이 우리 수중에 없기 때문이니 권력을 잡으면 잘할 수 있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댈 것도 없다. 금융위기라는 다년생화는 세상 여기저기를 돌며 꽃을 피웠다 지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꽃이 어떻게 피고 지면서 삶을 추락시키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줄 아는 지혜만 있으면 현실을 간파할 수 있다.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게 되는 것을 정점으로서 지나친 애국심과 자긍심을 애써 장려하는 순간에 그 추락을 맛보았다는 사실로서 우리는 금융위기의 실체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경제적 재앙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가라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난다.’ 
경제적 재앙은 순식간에 눈에 보이는 소비감소로 현실화된다. 집만 달랑 있는 사람들과 부채가 큰 지역에 더 끔찍한 재앙이 재현되는 것이다. 압류와 경매가 일어나자마자 내 집의 시세는 경매가로 떨어지게 된다. 1987년 노르웨이, 1991년 핀란드와 스웨덴, 1992년의 일본, 2008년 미국, 2012년 스페인 등은 저금리와 건설과 부동산업의 급격한 신장, 자산가격 상승에 의한 순환 루트의 반복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삶의 추락은 여전히 진행 중이거나 지진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빚으로 인한 소비감소는 정상적인 경제순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표적이 된 지역은 미장원과 같은 생계형 일자리가 먼저 타격을 받고, 임금하락과 평균임금감소에 이어 안정적인 지역도, 자동차 산업과 같은 안정된 산업도 연동되어 침체를 맞게 된다. 자동차판매원의 실업률 추이나 안정된 산업의 변동 데이터를 살펴보면 대침체가 전역으로 번지게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이론은 『빚으로 지은 집』 책 속에서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벌어지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검토하면서 말하는 요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무엇일까? 상황이 벌어지고 난 이후의 일일 것이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소비침체를 쓰나미처럼 몰고 온다면,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정부와 국가가 기업과 은행을 대신하여 그리고 결국은 납세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관행이 예상된다. 이것이 힘이나 재산을 가진 자들의 정해진 시나리오라면, 오히려 사회의 희생양이나 산업의 재물이 되다시피 한 집 한 채만 있는 이들의 억울함을 거꾸로 살필 이유가 있다. 제목처럼 ‘부채를 탕감하라’가 막돼먹은 주장이 결코 아니다. 급격한 소비감소를 완충한다는 점에서 경기쇠락을 일정 정도 막아주면서, 역사에서 선행해서 이룬 정책을 참고하더라도 분산 관리하는 부자들과 기업, 파산에 다다른 은행을 지원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드는 문제이다.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적 재앙은 부자도 가난한 자도, 부자 동네도 가난한 동네도 결국 똑같이 비를 맞게 하는 것이다. 황당무계한 선동이 아니라 ‘부채를 탕감하라’는 슬로건을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세상이 만든 책임을 먹고 살기 힘든, 집밖에 없는 이들이 홀로 짐 져서는 안될 것이다. 『빚으로 지은 집 – 가계부채는 왜 위험한가』는 이론 속에 데이터를 넣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반복되는 문제와 사실들을 통해 이론을 만들었다. (레버드 로스 이론 – 채권자 섬과 채무자 섬으로 나누어 설명하며 채무자 섬의 가계부채로 인해 해당 지역의 실업과 임금하락이 나타나고 채권자 섬의 임금하락과 실업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임-필자 주) 이는 독특한 이론가이자 행정가였던 찰스 P. 킨들버거가 17세기부터 금융위기의 패턴을 다루고 있는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라는 책을 바탕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책 표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최고의 투자서적’이라고 말이다.


투자서적이든 아니든 현실을 함께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 공감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다면 닥친 위기 속을 헤쳐나갈 한 지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암흑 같은 세상이지만 집값은 내려가고 건설경기는 불황으로 이미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자. 그리고 닥쳐올 위험과 위기를 동시에 함께 보자. 함께 헤쳐나갈 이론의 지평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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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대전시민아카데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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