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담장을 낮추고 문을 열었다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선 골목 끝에 개방한 옛 충남도지사 공관 1호가 있다. 조용한 골목을 조금만 올라가면 보이는 관사는 새롭게 문을 열며 ‘비밀의 정원’이란 별명이 붙었다. 1932년에 지어진 뒤 2012년까지 충청남도 도지사를 지낸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다.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었던 이곳이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2014년 5월 관사촌 소유기관인 충남도와 대전시가 ‘5년 무상임대 - 무상대부 계약’을 맺었다. 2015년 9월 5일 개방 행사와 함께 문을 열었다. 개방하던 날의 복닥거림이 사라진 후 찾은 골목은 고요한 모습 그대로였다. 곧게 선 나무 그늘을 지나면 문을 연 옛 충남도지사 공관 1호가 나온다. 이제 누구나 이 길을 걷기만 하면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

사진
대문을 열고 사람을 맞았다

1932년 지었다. 2002년 시지정문화재자료 49호,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 101호로 지정되었다. 옛 충남도지사 공관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이 지은 건물이긴 하지만, 당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일본 건축의 영향으로 일본식과 서양식이 혼재된 형태다. 당시 도지사는 행정, 재판, 경찰권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부리는 사람도 그만큼 많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두 개 중 하나는 하인들이 쓰는 문이었다. 

공관 내부는 중간 복도를 가운데 두고 손님과 가족 공간으로 구분한다. 곳곳에 난 커다란 창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빛은 공관 곳곳을 감싼다. 회의실로 쓰인 2층은 다다미방이다. 손님을 맞이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공간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양쪽으로 두 개다. 숨바꼭질하기 좋은 집 구조다. 다다미방에서 정원 쪽으로 뻗은 난간으로 나가면, 정원이 한눈에 보인다. 
대문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정원이 집 뒤로 펼쳐져 있다. 1층에도 2층에도 정원 쪽으로 큰 문이 나 있다. 높은 담장 안으로는 대나무가 줄지어 섰다. 콘크리트 담보다는 대나무 담이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커다란 소나무와 감나무, 배롱나무 등 언뜻 보기에도 많은 수의 나무와 꽃, 풀이 정원에 자라고 있었다. 

 

 

추억이 남은 자리

“옛날에 봤던 거랑 별로 달라진 게 없네요. 내가 1950년대에 여기 들어와 봤으니까...”
일흔여덟 전상명 할머니는 50년대 민병기 전 도지사 재임 시절 이곳에 왔었다. 민병기 도지사 슬하에 있던 딸이 시집가던 해였다. 청주로 시집보내는 딸에게 가구며 음식 등을 해서 트럭 두 대를 혼수로 보냈다. 

“음식을 다 집에서 하니까 얼마나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해요. 그때 내가 열아홉인가 그랬을 거야. 내 S언니가 민병기 도지사랑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다고. 언니가 같이 가서 일손 좀 돕지 않겠느냐고 물어서 그러마 하고 따라왔지. 어린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었겠어. 그저 잔심부름이었지. 그래도 그때 기억이 생생해. 준비를 며칠씩 했던 것 같아. 몇 번을 왔으니까. 약과도 종류별로 몇 개를 하고, 음식 냄새가 떠나질 않았지. 여기 정원 쪽으로 난 문을 열고 걸터앉아서 요리를 했어. 아. 이제 보니까 기억이 나네.” S언니는 친언니는 아니지만, 친자매처럼 우애를 맺은 사이를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런 사이가 많았으며, 할머니는 아직도 S언니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옛 충남도지사 공관 1호가 개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젊은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그 시절 와보고 다시는 와보지 못할 거라 여겼던 집에 이렇게 구경을 오니 감회가 남다르다. 할머니 말고도 시민들이 하나둘, 도지사 공관에 들어왔다. 정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잠깐 눈을 감고 있는데 오후 열두 시를 알리는 대흥동 성당 종소리가 들렸다.  


 

관사촌 개방  
월~금(10:00~17:00), 토(13:30~17:00)
10월 10일, 14일, 24일, 28일에 인형극, 숲·건축물 
해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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