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2호] 일상의 즐거운 한 거리가 되기를

대전역에서부터 옛 충남도청사까지 1.1km 구간이 차가 아닌 사람으로 꽉 찼다. 평소 이 구간은 출퇴근 시간이면 차들로 막히는 곳이었다. 이 공간을 차가 아닌 사람이 채웠다. 지난 9월 19일, 대전시는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까지, 중앙로를 차 없는 거리로 개방했다. 주위를 지나다 우연히 들러 차 없는 거리를 걷는 사람, 행사를 즐기러 일부러 발걸음 한 사람,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중앙로에 나와 걸었다. 

    


    

해방감

이날 차 없는 거리는 세 구간으로 나뉘어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옛 충남도청사에서부터 중앙로네거리까지는 2015사회적경제박람회 등이 열렸고 중앙로네거리에서부터 목척교까지는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체험과 놀이 퍼포먼스, 청소년음악회 등이 열렸다. 목척교에서 대전역까지는 호국평화통일대행진과 다양한 공연이 벌어졌다. 

차가 빠진 중앙로는 생각보다 넓었다. 오후가 되자 넓은 거리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울렸고 뭔가를 안내하는 방송이 종종 귓전을 때렸다.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된 월간 토마토도 대전사회적경제박람회에 한 부스를 열었으며 예술포차를 운영했다. 수레에 파라솔을 달아 만든 포차에서 음료도 팔고 자리를 이동해 대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을 벌였다. 
예술포차에서 대전과 대전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준 대전문화연대 박은숙 공동대표는 “1950년대에서 7, 80년대 대전은 중앙로가 중심이었는데 둔산 개발 후 그 중심이 옮겨 갔어요. 그래서 지금 차 없는 거리 행사를 하는 거예요. 중앙로에 차가 없다는 게 감개무량하네요.”라고 말했다. 

박은숙 대표가 이야기를 전하는 사이, 예술포차 앞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하나둘 늘었다. 차 없는 거리에 들렀다가 우연히 예술포차에 오게 되었다는 이미영 씨는 중앙로 근처가 옛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차 없는 거리 행사를 한다고 듣고 꼭 와 보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나왔어요. 자유롭고 여유롭네요. 평상시에는 걸을 수 없는 곳을 걷게 되어 좋아요.”
중앙로네거리에 마련한 무대 앞에서 마술 공연을 보고 있던 조운무 씨는 중앙로에 우연히 들렀다가 공연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이 중앙통에는 1년 내내 차가 안 다녔으면 해. 차가 다니면 너무 복잡하잖아. 차에 질렸어.”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중앙로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다. 사람들은 넓은 거리에서 차가 없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즐길거리

옛 충남도청사에서부터 중앙로네거리까지는 사회적경제박람회 부스로 채워졌다. 중앙로네거리 무대 옆에는 도담도담맘스클럽에서 벼룩시장을 열었다. 꼬마 사장님들이 자신의 물건을 들고 나와 파는 무대였다. 

“예전에는 이곳이 가장 번영했던 곳인데 지금 아이들은 이곳에 나올 일이 없죠.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중앙로에 나와서 즐길 수 있는 거리가 생기니 좋아요.”

꼬마 사장님의 보호자로 자리에 참여한 최미나 씨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있는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반겼다.
중앙로 전 구간, 시민이 직접 참여할 거리가 많았다. 시민은 관심이 가는 부스에 들러 물건을 샀으며 다양한 체험을 했다. 무대 앞에도 많은 사람이 모였다.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역까지 긴 거리에 몇 개의 무대가 등장했다. 춤, 노래, 연주 등 다양한 콘텐츠가 무대를 채웠고 그 무대를 많은 시민이 지켜보았다. 월간 토마토가 예술포차에서 벌인 ‘배니멀’과 ‘진채밴드’의 공연도 큰 호응을 얻었다. 중앙로 한복판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와 그 소리에 이끌려 예술포차 앞에 자리 잡고 앉은 사람들.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시민

이날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호국평화통일대행진이었다. 넓고 길게 이어진 행렬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지만, 이것으로 잠시 사람들은 거리 가장자리로 이동해야 했다. 
이 행진은 이번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도 했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보는 것, 이것은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이지만 일상에 닿은 따뜻함이나 자주 찾고 싶은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시민이 차 없는 거리를 일상의 한 연장으로 여길 수 있을 만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는 시민이 직접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차 없는 거리 구간이 길다는 지적도 있었다. 손장희 씨는 “구간이 너무 길고 퍼져 있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긴 시간 동안 공간을 채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 답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공간을 채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차 없는 거리에 콘텐츠가 꽉 차 있을 필요는 없다. ‘거리’는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뜻한다. 차 없는 거리라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이유는 없다. 
지난 5월 5일 한시적으로 운영한 중앙로 차 없는 거리 이후 처음 시행한 이 행사는 올해 10월 17일과 11월 21일, 12월 24일에도 열릴 계획이다.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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