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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6호] 사는 건 좀 어때? _ 토마톡
낙타
여긴 낙타랑 코스트코, 프레즐이 있어. 20대 초반인 점순이랑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초대했어. 점순이는 사는 게 좀 어때.
점순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일단 경제적으로 거의 독립했고, 그래서 씀씀이가 좀 헤퍼진 건 있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쓰는 거니까. 나쁜 일도 딱히 없고.
낙타
씀씀이가 좀 헤퍼졌어? 저금 같은 건 안 하나?
점순이
엄마가 반은 상납하라고 해서 월급의 반은 엄마에게 꼬박꼬박 가져다 드리지.
프레즐
나는 저금 안 하는데.
낙타
넌 입사 초기에 저금 많이 했잖아. 갑자기 왜 저금 안 해?
프레즐
그냥. 쓸 일이 많아졌어.
코스트코
난 작년까지 월급의 70% 정도 했어.
낙타
재밌네. 난 마이너스 통장이 있어. 점순이는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거 말고는 인생에서 일이 어떤 의미야? 일이라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걸까?
점순이
음. 대답하면 꼭 면접용 멘트 같은데, 나는 일이 꼭 그런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해. 진짜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 분야에서 가장 실력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일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지름길이건, 돌아가는 길이건.
프레즐
나한테도 일은 자아실현을 하고 돈을 버는 수단이지. 나도 내 분야에서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
코스트코
나는 뭐든 재밌게 하고 싶어. 일이 내 삶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였으면 좋겠어.
점순이
근데 일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진짜 내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거나, 원래 내 모습을 일부러 숨긴다거나, 했던 경험 있어?
프레즐
많지. 그런데 점점 진짜 내 모습을 편하게 보여주게 됐어. 처음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밝게 대했어.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던 거야. 근데 그게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 종일 타인과 함께 있으니까 종일 ‘친절하게’ 해야 하는 거야. 이제는 그냥 편하게 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사람들도 그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낙타
점순이는 그런 거 없어?
점순이
타인이 보면 이기적일 수 있는데 나는 밖에서 나 자신을 가리는 건 나다운 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것이나 나라는 사람에 충실해지고 싶어. 그래도 여긴 회사니까 아예 맞추지 않을 수는 없잖아. 그게 예의니까. 그 틀에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맞춰야지. 그런데 어떻게 기준을 두어야 할지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야.
낙타
그게 스트레스거나 힘들지 않아?
점순이
사회생활하는 누구나 겪는 일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스트레스는 아닌 것 같아.
코스트코
그럼 점순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뭐야? 난 아무 일도 없는데,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할 때 정말 힘들었어.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애쓰는 느낌이었거든.
점순이
나는 매일 저녁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근데 그게 잘 안 되고 차질이 생겼을 때가 가장 힘들어. 내가 통장에 잔고를 쌓는 건지, 내 미래를 닦는 건지 잘 모르겠을 때 있잖아. 단순히 일이 많은 게 힘들다는 게 아니야. 어떤 일이든, 그게 비록 내 분야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일을 한다는 건 좋아. 무슨 일이든 하고 나면 성취감이 들 거 아니야. 그건 분명히 손해보다는 이득인 거잖아. 근데 다들 일하면서 힘들 때가 있잖아. 어떻게 극복해?
코스트코
정말 힘든 시기가 있고, 그게 지나가서 다시 즐거운 시기가 있고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오래 일을 하다 보니까 조금씩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난 이렇게까지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
일하기 전보다 지금 내 모습이 훨씬 좋아. 그렇게 한 번씩 돌아볼 때,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 같아. 낙타는 그만두고 싶거나 힘들 때 없어?
낙타
난 많지. 작년엔 매일 그만두고 싶었어. 일이 재미없으면 정말 못하거든. 난 같이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해.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고, 잘 마쳤을 때 성취감을 크게 느끼거든. 그게 잘 안 되면 힘든데, 작년엔 무엇보다 힘들었던 게 같이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었어. 동료들은 모두 다른 데 정신이 팔린 것 같고, 일은 어쩔 수 없이 쳐내는 것 같고, 나 혼자 겉돈다는 느낌이었거든. 또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면서 바랐던 이상이 있었는데, 현실과 맞지 않으니까 권태로웠던 거지. 작년에 그래서 완전히 넋을 놓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올해는 좀 더 상황이 좋아졌을 것 같은데, 안타까워.
코스트코
근데 사람한테는 침체된 시간도 필요한 거 아니야?
낙타
너 요즘 철학 공부하냐? 물론 그렇지. 그런데 완전히 꺼지는 게 너무 깊게 꺼지니까,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근데 점순이는 오늘 대화에 참여해 보니까 어땠어?
점순이
좋았어. 요즘 누가 이런 질문을 해 주겠어. 남의 삶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 이런 주제 자체가 생소하지. 친구들이랑은 연인 이야기나 옷차림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아버지 말고는 이런 대화를 함께할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즐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