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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6호] 걷고 있는 동 바라보기
신선아 씨, 김동욱 씨 | 동립진에 사진과 짧은 글로 다룬 보은방아간 앞에서. 동립진에는 보은방아간을 ‘#참새의 보은’이라고 재미있게 소개했다.
지난 12월호 월간 토마토 ‘잡지의 미래를 묻다’ 섹션에서 《동립진》 발행을 준비하는 김동욱 씨를 만났다. 그때 나눈 짧은 이야기로,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동립진이 대전의 ‘洞(동)’을 콘텐츠로 삼는다는 것을 알았고, 따뜻한 느낌일 거라고 짐작했다. 짐작대로였다. 쫙 편 손바닥보다 조금 큰 A5 사이즈의 투박한 질감의 표지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고 천천히 넘겨 보게 됐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글과 사진이었다.
동립진은 김동욱, 이정수, 신선아 씨 세 명이 만든다. 막연한 도시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규모 단위의 지역행정구역인 ‘동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름도 ‘洞립진’이다. 세상에 동립진이란 잡지 한 권을 내어 놓은 세 구성원 중 김동욱, 신선아 씨를 만났다. 동립진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싶었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선아 처음에 잡지가 오고, 그다음에 잡지를 포장할 비닐이 왔어요. 그렇게 하나씩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김동욱 처음 기획은 거창했는데, 추진이 잘 안 됐어요. 대전광역시 좋은마을 만들기 사업의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사업 기간에 맞춰 기획한 콘텐츠를 모두 싣기에는 빠듯한 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마무리한 게 좀 아쉬웠어요.
신선아 특히 사람에 초점을 맞춰서 대흥동에 오래 산 분들을 깊이 있게 취재해 보고 싶었는데, 초면이기도 하고 단기간에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서툴렀어요.
신선아 처음부터 이 콘텐츠로 잡지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에요. 저희 세 명 다 궁동에 오래 살았거든요. 그러다 저는 휴학하고 잠깐 서울에 가 있었고 둘은 대흥동으로 이사 갔어요. 새로운 곳에 적응하면서 동네에 관한 관심이 생겼어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관한 애착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죠.
김동욱 8년 동안 궁동에 살다가 친구가 대흥동 괜찮다고 해서 이사를 했는데 동네가 정말 좋았어요. 삭막한 네모난 건물만 있는 게 아니라 조그만 옛날 건물들도 있고 구도심의 이미지도 좋았고요. 이 친구(신선아)는 홍대에 있었는데, 홍대도 그렇고 대흥동도 그렇고 개성이 있잖아요. 동에 관심을 두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게 잡지 만드는 것과 맞물리게 됐어요.
신선아 큰맘 먹고 동네에 적응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낯선 동네를 알아보는 게 재밌었어요. 콘텐츠 만들면서도 재미있었고요.
신선아 동욱 오빠가 동네를 좋아하는 게 느껴졌어요. 이사해서 새로운 것들을 보는 데서 매력을 느꼈을 수도 있어요. 한 동네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동네가 얼마나 예쁜지 잘 몰라요. 낯선 사람 입장에서 새롭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김동욱 그 사진에 재밌는 사연도 있어요. 동립진 나오고 나서, 미대생 친구에게 한 권 줬는데, 전봇대 그림을 그 친구가 그린 거더라고요. 동립진에는 그 강아지를 ‘미미’라고 재미있게 표현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이름이 있더라고요. 친구가 벽화를 그리다가 심심해서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를 그렸다고 해요.
신선아 평생학습관 앞에 있는 아이들 동상도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건데, 자세히 보니 이름이 새겨져 있더라고요. 사진에 ‘이홍주’라고 이름을 설명해 놓았는데 동상에 실제로 쓰여 있는 이름이에요. 그런 걸 하나씩 찾는 게 재밌었어요.
김동욱 우리가 잘 모르는 동네를 재조명하고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깊이 있게 담아 소개하고 싶었어요.
김동욱 처음에 거창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잡지가 다룬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동네에 애착을 갖게 되고, 외부인은 여행 가고 싶도록 하고 싶었어요.
신선아 아까 나왔던 말처럼, 요즘에는 동네 개념이 뚜렷하지 않잖아요. 저희가 동네 브랜딩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이미지 메이킹을 해 주는 거예요.
신선아 네. 대흥동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문화예술 분야로 번화한 동네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나름대로 고민과 고충이 많은 동네더라고요. 인터뷰하면서 이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개발에 따라 땅값이 오르는 것 등과 관련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문화예술로 가치를 만들어 땅값이 오르면 원룸이 들어서는 식이에요. 문제 제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동욱 처음 이미지와 가치를 만든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는 게 참 안타까웠어요.
신선아 어떤 변화인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동네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현재 궁동도 많이 바뀌고 있거든요. 공사하는 곳을 보면, 전에는 ‘공사하나 보다.’ 했을 텐데, 지금은 ‘왜 공사하지? 원래는 어떤 곳이었지? 왜 없어지지?’ 같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게 변한 점 같아요.
김동욱 동네에, 북카페 이데처럼 히스토리가 있는 장소가 있잖아요. 그런 장소를 많이 알면, 외부에서 친구들이 왔을 때 그냥 근처 카페에 가는 게 아니라, 제가 이야기를 아는 곳에 가서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친구들도 그곳을 좋아해 줬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는 행복이 있어요. 동네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고 할까요.
신선아 장소에 애착이 생기면 장소에 있는 사람에게도 애착이 생기는 것 같아요. 궁동에 자주 가던 12년 된 세탁소가 있는데, 얼마 전에 문을 닫았어요. 안면 트고 얘기도 나누었던 분이 다른 데로 가시는데 아쉬웠어요.
신선아 프랑스문화원 원장님 인터뷰하면서 인상 깊었던 얘기가 있어요. 사람들이 과거 모습을 창피하게 생각한대요. 과거의 모습도 이어지는 모습 중 하나인데 너무 많이 바꾸려고 하지 말고 옛날 것 중 남길 것은 남겨야 한다는 거예요.
김동욱 조금이나마 동네에 애착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집 앞에 눈을 쓸듯이 사소한 것들이 바뀔 거 아니에요. 나 혼자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가꾸어 가는 동네가 됐으면 좋겠어요.
신선아 그렇게 해서 쉽게 없애고 쉽게 만들기보다는 과거로부터 왔던 것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모습을 남겼으면 해요.
김동욱 일단 사람들은 돈이 되면 뭔가를 하잖아요. 장사를 하거나, 건물을 짓거나요. 그러다 보니 동네들이 색깔이 겹쳐지면서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 좋겠어요. 예전의 모습이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동립진 프로젝트 Vol.1 대흥동
신선아 잘 만들어서 시리즈 수집하는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동욱 한 번 보고 책꽂이에 꽂히는 게 아니라, 생각날 때 휘리릭 볼 수 있는 잡지가 되면 좋겠어요. 저는 슬램덩크를 좋아하는데 슬램덩크는 다시 봐도 재미있어요.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요즘 잡지의 수요가 계속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요즘 사람들이 글을 잘 안 읽는다고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도 고민해 봐야죠. 전에 월간 토마토 이용원 편집국장님이 10년 가까이 구독하는 후배 독자가 있다고 했는데, 저희도 그런 독자가 한두 명쯤 있으면 좋겠어요.
김동욱 처음 시작할 때도 비정기 간행물로 시작했어요. 여건이 될 때 만들고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어요. 공백기가 있더라도요.
신선아 이번에는 오래 걸리더라도 체계적으로 콘텐츠 만들고 싶어요. 2호에서는 소제동을 다뤄볼 생각이 있어요. 사연이 많은 곳이더라고요. 이번 해에는 최소 두 권 정도 동립진 발행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