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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6호] 볕 드는 날 생수 한 잔, 태양마켓
햇볕에 살랑거리는 글씨 때문에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힘겹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등산길이나 휴양지에서 만날 법한 글씨였다. 이른 아침, 저녁 시간에 태양 마켓을 지키는 김명중 씨의 손 글씨다. 어느 산 아래에서 보았다면 더 반가웠을 ‘생수’ 손글씨 위로 ‘태양마켓’ 간판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세 평 남짓한 공간에 시간이 꽂혀 있다
입구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여다볼 만한 폭이다. 덩치가 많이 큰 사람은 입구 밖에서 ‘사장님’을 불러야 한다. 입구 옆으로 상자 더미, 생수병을 요리조리 쌓아 놓은 게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벌써 버려졌을 것들이 장식으로 쓰였다.
“46년 정도 됐을 거예요. 아버님이 이 자리에서 서점을 하셨어요. 서점 하다가 슈퍼로 바꾼 지 30년 넘었죠. 아버지가 6·25전쟁 상이군인이셨어요. 그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고요. 책을 원래 좋아하셨어요. 가게 자리가 난 김에 서점을 시작하신 것 같아요. 서점은 장사가 잘 안되니까 나중에 슈퍼로 바꾼 거고요.”
1970년쯤 ‘태양서점’으로 시작해 5년 여 정도 운영했다. 태양마켓으로 업종을 바꾸면서도 내부 인테리어는 그대로다. 벽을 따라서 죽 짜 놓았던 나무 책꽂이가 여전히 놓였다. 나란히 책을 꽂아두었던 자리에 과자, 라면, 음료수 등이 줄 맞춰 서 있다. 과자 봉지 안 빵빵하게 들어찬 질소 덕분에 봉지 과자가 곧게 서서 책처럼 꽂혀 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게에 나오셨어요. 저도 회사 다니며 도와 드리다가 부모님이랑 같이 가게를 봤죠. 중앙 데파트나 홍명상가 때문에 유동인구가 아주 많았어요. 하상도로가 생기고, 1차선 도로로 바뀌면서 사람이 많이 줄었어요.”
“46년 정도 됐을 거예요. 아버님이 이 자리에서 서점을 하셨어요. 서점 하다가 슈퍼로 바꾼 지 30년 넘었죠. 아버지가 6·25전쟁 상이군인이셨어요. 그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고요. 책을 원래 좋아하셨어요. 가게 자리가 난 김에 서점을 시작하신 것 같아요. 서점은 장사가 잘 안되니까 나중에 슈퍼로 바꾼 거고요.”
1970년쯤 ‘태양서점’으로 시작해 5년 여 정도 운영했다. 태양마켓으로 업종을 바꾸면서도 내부 인테리어는 그대로다. 벽을 따라서 죽 짜 놓았던 나무 책꽂이가 여전히 놓였다. 나란히 책을 꽂아두었던 자리에 과자, 라면, 음료수 등이 줄 맞춰 서 있다. 과자 봉지 안 빵빵하게 들어찬 질소 덕분에 봉지 과자가 곧게 서서 책처럼 꽂혀 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게에 나오셨어요. 저도 회사 다니며 도와 드리다가 부모님이랑 같이 가게를 봤죠. 중앙 데파트나 홍명상가 때문에 유동인구가 아주 많았어요. 하상도로가 생기고, 1차선 도로로 바뀌면서 사람이 많이 줄었어요.”
가장 크게 변한 건 볕이 들어온다는 것
그때도 지금도, 단골 장사라기보다는 지나가는 사람을 상대로 장사했다. 담배, 술, 과자 같은 주전부리를 팔았다. 가장 크게 달라진 품목이 있다면 복권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로또복권이 출시되기 전까지 복권 판매가 쏠쏠한 돈벌이였다.
“이제는 장사도 잘 안되니까 문을 닫고도 싶지만, 어머니 때문에 그만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후에는 어머니가 오셔서 가게를 보시는데, 이 공간에 애착이 크시거든요. 어머니 계실 때까지는 할 생각이에요.”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30년 넘은 담배 자판기가 자리를 지킨다. 플러그가 뽑힌 공중전화가 축 늘어져 장식으로 남았다. 목척교 바로 앞, 주변 역시 변한 것이 별로 없다. 변한 게 있다면 중앙 데파트가 사라지고 나서 햇볕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는 것. 그제야 제 이름값을 했겠구나, 싶었다.
“이제는 장사도 잘 안되니까 문을 닫고도 싶지만, 어머니 때문에 그만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후에는 어머니가 오셔서 가게를 보시는데, 이 공간에 애착이 크시거든요. 어머니 계실 때까지는 할 생각이에요.”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30년 넘은 담배 자판기가 자리를 지킨다. 플러그가 뽑힌 공중전화가 축 늘어져 장식으로 남았다. 목척교 바로 앞, 주변 역시 변한 것이 별로 없다. 변한 게 있다면 중앙 데파트가 사라지고 나서 햇볕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는 것. 그제야 제 이름값을 했겠구나, 싶었다.
글 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