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6호] 성소수자 당사자 모임 솔롱고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아무도 곁에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혹시라도 삶을 포기하거나 생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있을까를 가장 많이 걱정했다. 단체를 만들고,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어디에나 기댈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모두 함께 ‘잘’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

2015년 10월 8일 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는 양성평등기본조례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이 바뀌면서 ‘성 소수자’와 관련한 조항이 모두 빠졌으며, 빠진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3조(성 평등정책 시행계획 수립) 
2의 다. “성 소수자(“성 소수자”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된 소수자를 말한다) 보호 및 지원”

제22조(성 소수자 지원)
1. 시장은 성 소수자도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2. 시장은 성 소수자에게도 법과 이 조례에 따른 지원을 할 수 있다. 

법 조항에 성 소수자를 언급하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는 일이다. 단 몇 줄의 문장에 그들이 등장한다는 건 이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성 소수자 당사자 모임 솔롱고스는 성평등기본조례가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바뀌는 과정에서 성 소수자 당사자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처음 솔롱고스라는 모임을 기획한 건 라라 씨죠?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도 선뜻 나서기엔 두려움이 컸을 것 같아요. 모임을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성평등기본조례’가 ‘양성평등기본조례’로 바뀐다는 이야기였어요. 양성평등기본조례로 바뀌면서 법 조항에 성 소수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문구가 모두 빠졌어요. 이대로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의당부터 시작해서 아는 단체나 사람들 붙잡고 함께 대응해 보자고 말했죠.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성 소수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운 좋게 주이 씨 만났고, 주이 씨가 아는 분 소개해 주고, 그렇게 알음알음 한 명씩 모여서 ‘솔롱고스’라는 모임으로 묶이게 된 거예요. 
◀z 법 조항 때문에 서명 운동하는 라라 씨를 봤어요. 성 소수자라는 나의 정체성으로 온전히 사는 데 필요한 일인 것 같아서, 함께하게 됐어요. 나 같은 사람들이 좀 더 편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니까요. 
● 모임을 만든 건 좀 급작스러웠어요. 성평등 기본 조례 때문에 기자회견 같은 걸 하려고 해도, 여러 단체가 있지만, 개인으로 참여한 성 소수자들은 개인 이름을 넣을 수 없으니까 당사자 모임을 만들자고 해서 만든 것도 있었어요. 

 

 

이런 모임을 만들기까지, 어려운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성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운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 중학교 때 학교에서 아웃팅(outing) 당한 이후에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왕따였어요. 그래서 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많이 찾아다녔죠.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차별이나 소수자에 관해 고민하고 그런 쪽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성 소수자와 다른 소수자의 문제는 또 다른 것 같더라고요. 지난해에는 여성단체에서 일했어요. 여자답다는 말에 갇혀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성 소수자 혐오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성단체에서는 주로 여성과 남성이 함께 노동할 권리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더라고요. 물론 단체 안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소수자 차별에 대한 것들은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저한테는 정말 절박한 문제였거든요. 
◀ 처음엔 그냥 남자를 좋아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걸 깨닫게 된 건 중학교 때였고요. 내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걸 알고,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소수자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는데, 그 친구 덕분에 제가 트렌스젠더이면서 동성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니까 좀 복잡한 경우죠. 

 

 

 

좀 이해가 잘 안 돼요.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 성 정체성이랑 성 지향성은 다를 수 있는 거니까요. 저의 경우는 성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예요. 트렌스젠더 모임에 갈 수도 없고, 레즈비언 모임에 가기에도 모호한 상황인 거죠. 이런 사실을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어요. 처음엔 놀라셨는데 지금은 눈에 보이게 뭔가를 하는 것만 아니면 뭐라고 하진 않으세요. 예를 들어 화장한다거나 여자 옷을 입는다거나 그런 것들이요. 학교에서도 눈치챈 아이들이 있어요. 남자 고등학교거든요. 완전한 커밍아웃은 아니지만, 애들끼리 수군대는 게 있어요. 

 

 

라라 씨는 본인이 인식하기도 전에 아웃팅 당한 거면 정말 큰 충격이었겠어요. 주이 씨는 그래도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공부하면서 정립한 경우잖아요.

● 중학교 1학년 때 제가 생각하기에 첫사랑이라는 걸 했어요. 처음엔 친구인데 집착하는 건 줄 알았어요. 드러내 놓고 좋아하는 티를 많이 냈어요. 그것 때문에 주변에서 엄청 수군거렸고요. 그러다 그 친구랑 싸우고 너무 힘들어서 상담 선생님께 상담도 했는데 선생님이 부모님께 이야기했어요. 그때 부모님도, 친구들도 알게 된 거죠. 성 소수자라는 게 그때부터 소문이 났어요. 친구를 많이 잃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로 소문이 나면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는 게 절박했어요. 인터넷에서 모임을 찾아서 나가기도 하고요.

 

 

성 소수자만이 느끼는 절박함이라는 거,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른다는 게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인가요? 

● 작년 겨울에는 친구의 애인이 자살했고 올해는 그 친구가 자살했어요. 성 소수자로 받는 차별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고, 저는 그때마다 너무 힘들거든요. 저한테는 삶 자체가 전쟁터고, 여기가 현실인데 사람들한테는 ‘우리 일’이 아닌 것 정도로 치부되는 거예요. 작년 여름, 대구에서도 게이라는 게 밝혀져서 부당해고를 당한 분이 있어요. 집에 성 정체성을 알리자 치료해야 한다고 교회에 감금당한 친구도 있고요. 

 

 

청소년 시기일수록 성 소수자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들었어요. 두 분도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나요.

● 일단 청소년기에는 부모님이 성 소수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까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에서 마치 괴물 취급당하는 친구가 많으니까요.  
◀ 남고라서 수위가 높은 농담을 거리낌 없이 해요. 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도 많이 나오고요. 학교에서 제 바로 뒷자리에 앉은 애가 문학 작품 같은 데 이야기가 나오면 게이 새끼들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요. 그런 언어폭력이 심한 편이에요. 그런 말 때문에,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해 보지 않았어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주변에서 들어 보면 정말 심하게 왕따를 당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 어릴 땐 수도 없이 자살을 생각했어요. 성인이 되니까 좀 편해졌어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가 없으니까 부모님이 통제하는 대로 따라야 하잖아요. 독립하면서 그게 일단 없어졌어요. 

 

1. 2. 3. 2015년 9월 18일 대전시청 앞 농성 4. 솔롱고스 로고

 

 

지난 8월 솔롱고스를 출범하고, 성 소수자 당사자들이 밖으로 나와서 활동했잖아요. 결국, 성평등기본조례는 양성평등기본조례로 이름을 바꾸고 성 소수자 보호에 관한 조항은 삭제되었어요. 솔롱고스 활동을 어떻게 운동 자산으로 남겨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내부에서는 이번 활동이 어떤 자산을 남겼다고 평가하는지 궁금해요. 

● 일단 대전에서 성 소수자 당사자들이 나와서 운동한 게 처음이에요. 대전 시민이 성 소수자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성 소수자를 글로만 접하는 것과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보는 건 다른 경험이거든요. 솔롱고스가 시청 앞에서 하는 농성을 본 사람들이 성 소수자가 우리 곁에도 많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성 소수자가 밖에 나와서 활동할 필요는 없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우리 자체로 살기 위해서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존재를 드러내고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알 수 있으니까요. 
◀ 함께한 사람들이 크게 남은 것 같아요. 계속 재미있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런 일에 저항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결국, 성 소수자에 관련한 사항은 법 조항에서 빠졌어요. 우리 행동으로 변한 건 없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분명히 역사는 진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는 건 진보하는 방향으로 몇 분 몇 초라도 빨리 가기 위해서예요. 돈, 시간, 건강 같이 잃은 걸 따지자면 끝이 없는데 얻은 게 더 많아요. 솔롱고스가 만들어졌다는 건 단순히 단체를 만든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연락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모두 이성애자라고 전제하기 때문에 소수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질문들이 있다. 남자에게는 “여자친구 있어?”라고 묻고, 여자에게는 “남자친구 있어?”라고 묻는 건 성 소수자를 배제하는 질문이다. 솔롱고스는 “애인 있어?”라고 묻고, “남자야, 여자야?”라고 묻는 게 당연한 사회를 바란다. 솔롱고스는 무지개의 나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뜻을 지닌 몽골어다

 


이수연 사진 이수연, 솔롱고스제공

페이스북에 솔롱고스를 검색해 보세요. suu369@naver.com, 솔롱고스 운영자 라라 님의 메일 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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