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6호] 창을 깨 부수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당선됐다고 언제 들으셨나요, 기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전화 두 통이 와 있었는데 받지를 못했어요. 월간 토마토라고 문자 메시지가 와서 놀랐어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제가 뽑히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고등학생 때부터 소설을 썼지만 소설로 인정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소설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탈피하려던 마음이 있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작은 상도 아니고 대상을 주시니 저한테는 정말 의미가 커요. 앞으로 계속 써야겠다는 마음도 들어요. 연락 받고 기분이 좋아서 그날 저녁에 소설 쓰고 동화도 쓰고 했어요. 활력이 됐어요.
 
월간 토마토 문학상을 어떻게 알고 응모하신 거예요?
공모전 사이트에서 보고 응모했어요.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교수님께서 항상, 잘 썼든 못 썼든 글을 열심히 써서 세상에 내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시거든요.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내보자, 하고 냈어요
 
 

공모전 입상은 이번이 처음인가요?

최근에 공모전에 글을 내 보려고 노력해서, 의정부 문학상에서 동화로 입상했었고요. 전국 정조대왕 백일장에서 시로 대상 탄 적이 있어요. 한국경기시인협회인 한국시학에서 신인상으로 시로 등단했고요. 시작은 소설로 했는데 학교 다니면서 시와 아동문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당선작인 <마그리트의 창>은 언제,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인지 궁금해요.

작년 5, 6월쯤 썼어요. 구상은 학부 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열심히 썼던 작품 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원래 특별히 가족 소설을 좋아하긴 하는데 이번에는 부모님에 관한 소설을 써 보고 싶었어요.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실종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실종’을 말 그대로, 이 시대에서 권위를 잃은 아버지의 실종으로 이해했습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외로운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요.

아버지의 실종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아버지의 외로움만을 다룬 것은 아니에요. 예전에 교양 수업 시간에 마그리트에 대해 배웠어요. 마그리트가 현대사회의 관습화된 사고를 깨는 것을 중시 여겼다고 알게 됐어요.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 진실이라 할 수 있냐’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았어요. 현실 속 틀에 박힌,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것을 깨부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마그리트의 창>은 아빠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독자 개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각자가 깨고 싶은, 넘고 싶은 삶을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꽃게가 왜 등장했나 싶었는데, 작품 전체에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환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고요.  

기괴한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어요. 작품 속에서 아빠가 꽃게 생살을 먹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아빠가 가정적인 모습인데, 나중에는 아빠의 또 다른 모습이 나와요. 알고 있던 아빠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자극적으로 쓰려고 한 면도 있어요.

 

 

억눌려 있는 아빠와 다르게, 과거 할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변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과거 할아버지도 외로운 존재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아버지가 꽃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억눌렸던 것을 꼭 하고 싶은 마음에 아빠가 꽃게에 집착하는 면도 있어요. 아빠가 엄마에게 순응하는 모습은 할아버지가 가부장적이고 강했던 것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요. 원래 의도는 아니었는데, 쓸 때 그렇게 흘러갔어요. 소설을 쓸 때 구성을 하긴 하는데, 인물에 빠지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흘러갈 때가 있어요. 
외로움에 관해서도 썼는데 소설 속에 한 가지 주제만 넣지는 않았어요. 예전부터 소외 받은 사람에 관해 썼던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아빠가 사라졌지만, 혼자 사라졌을 뿐, 엄마나 딸이 크게 관심이 없잖아요. 이미지 자체에 외로움이 담겨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작품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뭐예요?

아빠라는 인물에 이입해서 생각하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많은 것에 순응해야 하고 다 드러내지 못하는 존재예요. 아빠만의 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나 화자인 ‘나’는 아빠를 이해해 주려고 했는가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엄마에게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요. 딸도 억눌려 있는 게 있을 수 있죠. 아빠가 사라지고 엄마와 딸은 자기들 불편한 것에만 급급하죠. 아빠의 진실한 얘기를 알지 못하고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한 번쯤 나 자신이 아닌 옆에 있는 가족에 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드디어 방을 갖게 되었는데, 그 사실 자체가 환상 속에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꽃게가 등장하는 것이나, 아빠가 부르는 캐럴이라든지, 세입자 외국인들까지, 많은 것이 마치 환상 같았어요. 

그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소설 속에서 실존하는 아빠지만, 없어졌다는 자체가 환상일 수도 있고 꽃게가 보이는 거라든가, 202호에 있을 거라는 게 환상일 수도 있고요. 평소에 아빠가 억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딸이 아빠한테 억눌린 감정을 대입한 걸 수도 있고요. 
아빠는 여름에 시원하니까 캐럴을 부른다고 했는데, 여름에 캐럴을 부르는 것 자체가 희한하잖아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아빠라는 인물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외국인 부분은 원래는 현실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미 요소를 위해 넣기도 했죠. 삶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소설도 하나의 삶이잖아요. 외국인이 등장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지만, 우리 삶은 얘기하는 중에 전화가 올 수도 있고, 뜬금없이 무슨 일이 생기기도 해요. 소설 속에서 아빠가 실종된 순간에도 외국인 얘기가 나오죠. 애기 낳으러 가면서 외국인이 뜬금없이 ‘캐럴송이 너무 시끄럽다’는 얘기도 하고요. 뜬금없는 일들도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넘기고 싶었어요.  

 

방 안에서 뒤돌아 꽃게를 먹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줬어요. 의도한 바가 있나요?

초반에는 꽃게가 문도 툭 두드리면서 아빠와 같이 사는 동거인 느낌이었다가, 후에 아빠가 꽃게를 깨서 먹잖아요. 많은 것에 순응하던 이미지를 깨고 다른 이미지를 드러내면서 독자들에게도 약간의 충격을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마그리트의 창’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는 어떠한 예측도 할 수 없었어요. 또, 소설 속에서 마그리트 작품의 이미지를 보고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결국 제목과 그 그림 속에 많은 것이 함축돼 있네요.

처음 정한 가제는 ‘꽃게의 외출’이었어요. 그런데 제목에서 ‘아빠의 가출’이라는 게 드러나고 독자들이 꽃게가 아빠라고 규정할 것 같아서 바꿨어요. 그리고 마그리트를 중심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림(<재현되지 않다>)에서 거울 속에 남자의 얼굴이 안 비치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그림 속 남자는 진짜로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 속 남자는 창을 보면서 자기 본 모습을 보고 다른 세계를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소설 속에서 아빠는 끝 부분에 뒷모습만 보여주고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요. 날개도 있는 것처럼 보이고요. 아빠는 이 세상을 탈피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창이라는 것으로 고정된 삶, 사고에서의 탈피를 나타내고 싶었어요. 제목은 모호하지만 읽으시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설을 읽으면서 혹시 부모님이 원룸을 하시지는 않을까 궁금했어요.

원룸 하세요(웃음). 하신 지는 얼마 안 됐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원룸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정보가 없어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쓰다가 만 적도 있었어요. 부모님 하시는 것 보고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부모님과 사이가 각별한 것 같아요. 소설 쓰면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도 하나요?

네. 아무래도 외동딸이다 보니 남다른 면이 있어요. 소설은 쓰면 엄마한테 자주 보여 드려요. 엄마가 첫 번째 독자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친구들이나 교수님들께 보여 드리기 쑥스러운 것도 가족에게는 그런 생각이 덜 들더라고요. 

 

언제부터 소설 쓰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예술고등학교 문창과를 졸업했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소설이 뭔지 알았어요. 특히 서사문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교 때는 소설 전공 했고요. 대학원에서는 시 전공 하고 있어요. 그런데 소설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에는 아동문학에도 관심이 있고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쓰시는지 궁금해요.

할 때는 하고 안 할 때는 안 하는 성격이에요. 생각났다고 해서 바로 쓰는 건 아니고 한 편 써야겠다는 마음이 굳게 생겼을 때 쓰기 시작해요. 주로 종일 걸어 다니며 생각하는 편이고요. 쓸 때는 집에서 써요. 방 안에 저를 가둬서 쓰는 편이에요.  

 

어떤 소설가를 좋아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중혁 작가도 재미있게 쓰니까 좋아하고요. 손흥규, 천명관 작가도 좋아해요. 김숨 작가 스타일도 좋아하고요.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지금 말씀해 주신 ‘재미있는 소설’과 <마그리트의 창>은 거리가 있는 편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좀 더 진지한 분위기가 아닌가 느껴졌어요.

머릿속으로는 늘 재미있게 쓰고 싶어요. 깨야 할 부분인데, 순수문학이라고 하는 게 재미만 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나 봐요. 교수님께서 제 문체가 생각보다 여성스럽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까불 듯이 써본 적도 있는데, 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월간 토마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정말 의외였어요. 작품이 잡지에 실리면 독자분들이 재밌게 읽어 줄까 걱정도 돼요. 제 글이 초반에는 재미가 없고 뒤로 갈수록 흥미를 끄는 편인데, 독자분들이 처음에 읽다가 흥미를 잃어 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에요. 끝까지 읽어 주시면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년에 문학상 당선 작품에 관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김우식>이란 작품인데,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마그리트의 창>도 독자분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전에 수상하신 분들은 계속 글 쓰고 계신가요?

 

얼마 전에 작년에 수상한 이지우 씨가 2016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에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려주셔서 저희 모두 기뻐했어요. 

저도 비평에도 관심이 있긴 해요. 잘 쓰는 건 아닌데 평론 쪽이 더 평이 좋은 것 같아서, 창작 쪽에는 재능이 없나 고민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월간 토마토 문학상에 당선됐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앞으로 더 열심히 써야죠. 아직 많이 부족해요. 더 많이 노력해야 해요. 저도 나중에 좋은 소식 들려드릴 수 있게 열심히 쓸게요.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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