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6호] 원도심, 더운관심과 찬 바람

걷기 좋은 거리와 
원도심 활성화​

지난 1월, 대전광역시는, 국토교통부의 2016년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대전시가 신청한 사업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향후 6년 동안 국비 250억 원을 지원받고, 시비 250억 원을 매칭해 500억 원 규모로 원도심 일원에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사업인  ‘중앙로 프로젝트’의 마중물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대전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며 올해 상반기 중 국토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까지 국토부와 협의해 구체적 사업과 금액을 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대전시는 중앙로 주변의 보행 환경을 개선할 계획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원도심 활성화’의 기본 요건인 ‘걷기 좋은 도시(Walkable City)’ 및 ‘잘 찾을 수 있는 도시(Legible City)’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이때 ‘잘 찾을 수 있는 도시’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시민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옛 충남도청사 주변과 중앙로 네거리 주변 등에 횡단보도,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안내 시스템 정비사업 등으로 보행 환경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역까지 약 1.1km의 중앙로는 걷기에 좋은 길은 아니다. 사람보다는 차가 중심이 된 거리다. 차로 이동하면 1.1km의 직선 도로를 거침없이 통과할 수 있지만 직선 도로를 그대로 걸어가기는 어렵다. 지상으로 걷는다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 필히 조금씩은 돌아가야 하며 그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하상가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지하상가도 대전천에서 끊겨 지상으로 올라갔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내려가야 한다. 


매력도 분명 있다. 1.1km를 따라 다양한 상점이 늘어서 있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가 많고 구간마다 구성된 상점의 종류와 주변 풍광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중앙로가 걷기 좋은 길이 아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배제된 데 있다. 
걷기 좋은 길은, 보통 시속 4km로 걷는 사람의 속도와 걷는 환경의 속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길이다. 6차선을 꽉 채운, 시속 50km 정도의 속도로 지나는 차의 행렬은 걷는 이에게 좋은 환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지난해, 중앙로에 차가 모두 사라진 날들이 있었는데, 바로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다. 대전시, 중구, 동구는 지난해 총 네 번의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진행했다. 단 한 대의 차도 다니지 않는 넓은 도로를 사람이 다니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하루. 이른바 ‘걷고 보자! 중앙로 차 없는 거리’다. 


저탄소, 친환경, 보행자, 대중교통이 세계의 공통 가치로 자리 잡아 가는 요즘, 차 없는 날을 운영하는 도시도 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차 없는 거리 운영은 당위성을 지닌다. 중앙로 차 없는 거리의 경우는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원도심 활성화 측면을 기대한 사업이다. 대전시는 이 사업으로 보행자 중심의 도시정책을 펴고자 했고 이 사업이 원도심의 문화를 시민에게 돌려주며 지역 상권을 살리는 데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기 위한 콘텐츠는 사회적경제박람회, 사이언스페스티벌, 국민건강체험, 다양한 공연 등으로 채웠다. 네 번의 행사는 비슷한 모습으로 진행됐다. 죽 늘어선 홍보 부스, 그리고 곳곳의 무대에서는 음악과 춤이 펼쳐졌다. 중앙로에 모인 사람들은 무언가를 ‘체험’했고 무언가를 ‘구경’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샀다’.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는 대전시가 도시재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닮았다. 원도심은, 그리고 중앙로 차 없는 거리는 무언가 채워 넣어야 할 공간이었다.

 

 

 사람이 중심이 된 재생은?

대전시는 또한, 중앙로 프로젝트 마중물 사업으로 유동 인구 증대를 위한 차별화된 콘텐츠를 계획한다. 근대 건축문화 투어, 원도심 활성화 지도 및 앱 개발, 중앙로 U-Street 조성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U-Street은 스마트폰과 연계할 수 있는 교통 등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전부 현재 세부안을 마련해야 하는 단계다.


마중물 사업 이후에 계획하는 전체 사업은 대전역세권~중앙로~옛 충남도청사를 아우르는 구역에 대한 복합적 도시재생사업이다. 이 지역의 경제 활력 회복을 뒷받침할 다양한 사업이 포함돼 있으며 민자 포함 사업비는 약 2조 원 규모라고 대전시는 밝혔다. 옛 충남도 경찰청 부지 포함 옛 충남도청사 부지는 공공복합시설로 개발 계획하는데 현재 문체부에서 옛 충남도청사 활용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고 올 연말 윤곽이 드러날 계획이다. 
또, 옛 충남도청사 뒷담벼락 철거를 포함한 예술과 낭만의 거리조성사업을 추진하며 옛 충남도청사와 뒷길 지역 일대를 2017년까지 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이외 대전역세권 복합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중앙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확정안은 아니지만, 대전시가 제시한 사업 계획이 ‘도시재생’사업이 맞는지 의문이다. ‘재생’은 그야말로 재발견이며 재조명이고 재활용이다. 물리적 환경의 정비가 아니라 도심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만드는 것’이 가져다줄 무언가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 도심의 의미를 찾고 사회적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심을 둬야 할 일이다.


신도심으로 도시가 팽창할 동안, 원도심은 상대적으로 쇠락하게 되었고 이에 따른 문제 인식을 한 사람들이 원도심을 다시 주목하는 것은 다른 도시에서도 수순처럼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다시 주목한 원도심은 신도심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다. 
대전문화연대 박은숙 공동대표는 대전 원도심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문화예술을 꼽았다. “대흥동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문화예술적 자원이 대전 원도심의 성격 중 하나이며 이 특성을 살린 재생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전이 근대도시라는 점을 살려, 보도블록을 까는 방식보다 근대 테마를 살려 도시 특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재생해야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도시재생에는 전체 틀 속에서 계획을 짜는 것과 인문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전시가 진행하고자 하는 도시재생사업의 원칙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보도자료에서는 ‘중앙로 프로젝트’가 원도심 일원의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경제가 활성화됐을 때 원도심의 모습은 신도심과 과연 ‘다른’ 모습일까. 이것은 ‘재생’이 아니다.
대전시가 원도심에 머무는 ‘사람’과 ‘공간’의 역사적 의미에 주목했다면 추구하는 도시재생의 방향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가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다. 대전시는 차별화된 콘텐츠로서 근대 건축문화 투어 등을 계획한다. 근대도시로서의 상징성을 살린 콘텐츠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쉽다. 등록문화재인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은, 대전시가 매입하길 요구했던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2012년 민간에 매각된 바 있다. 중앙로 ‘근대 건축문화 투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은 현재 다비치 안경원으로 쓰인다. 대전시가 원도심의 가치에 주목하고 오랜 시간 큰 그림을 그려 왔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

 

재생 탈 쓴 개발, 사라지는 것들

쇠락한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유동인구를 늘리기 위해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들은 재생의 탈을 쓴 개발이다. 신도심과 다른 원도심만의 매력은 하늘이 보이는 좁은 골목과 이를 채운 사람들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원도심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원래의 모습은 퇴색되기 마련이다.


대흥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세라미스트 남미은 씨는 2011년, 다른 세 명의 세라미스트와 함께 ‘아트팩’이라는 이름으로 대흥동에 둥지를 틀었다. 저렴한 임대료와 갤러리, 화방 등이 많은 동네의 환경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시간은 흘러 세 명의 동료들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남미은 씨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에 따른 동네의 변화를 알고 있다. “대흥동만의 분위기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자본’이 밀려오는 게 느껴진다.”라는 게 남미은 씨 이야기의 골자였다. 또한, “동네가 깨끗해지는 것은 좋지만 큰 자본이 들어오면 급작스럽게 작업실을 이사해야 할까 봐 작업실을 더 꾸미지 못하는 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원도심에 작업실과 집을 동시에 두고 있는 남미은 씨는 주민의 입장에서도 원도심에 부는 바람에 대해 “원주민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밖에서는 원도심을 불편한 곳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작은 골목까지 변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남미은 씨의 우려, ‘원도심에 관한 자본과 관심의 집중이 원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2009년, 역시 저렴한 임대료와 문화적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동네 분위기를 보고 대흥동에 자리 잡은 프랑스문화원 분원은 올 6월이 지나면 자리를 옮겨야 한다.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현재 있는 주택 건물을 부수고 원룸 건물을 지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그만의 분위기가 있는 대흥로 121번길은 ‘프랑스문화원 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프랑스문화원 분원은 그 길의 상징처럼 존재했다. 변화의 바람에 따라 이 길에도 원룸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프랑스문화원 분원의 자리에도 원룸 건물이 들어선다. 전창곤 원장은 “원도심에 대한 관심에 따라 임대료가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원래 있던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원룸을 짓는 건 향후 수십 년간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돈을 투자해 다른 도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대전시가 예전의 모습이 남은 건축물을 매입해 문화예술 단체나 개인에게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등의 시도를 하면 좋겠다. 이것이 주변의 임대료를 조정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시가 밝힌 ‘향후 6년 동안 500억 원 규모의 도시재생 사업’은 이 도심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목척교 리모델링과 스카이로드에 들인 예산이 각각 176억 원과 165억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500억 원은 ‘안 건드리는 것만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큰 그림을 그리려면 작은 것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 천천히 가도 좋고, 가지 않아도 좋다. 오래 생각하고 잠시 내버려 두는 것이 이 난항의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성수진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