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그리는 도서관을 만든다
이상적인 도서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뉴욕 공공도서관이다. 노벨상 작가인 토리 모리슨은 “뉴욕 공공도서관 없이, 뉴욕은 뉴욕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엇이든 단 한 가지만 남긴다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도서관이 1위를 차지했다. 다시 일어설 힘을 도서관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구실은 실로 다양했다.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의 저자 스가야 아키코는 대학원 진학 후 매일같이 공공도서관을 이용했다. 책을 읽고,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곳 정도의 모습을 상상하던 그는 뉴욕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서비스와 누릴 수 있는 혜택에 탄복하며 연구를 시작했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수동적인 공간에 멈춰 있지 않았다. 도서관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보를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입해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들에게 도서관은,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쌓아두고 혼자서 끙끙거려야 하는 곳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과 정보가 모두 있는 곳이다.
사람을 생각하는 도서관을 만든다
대전광역시에는 총 239개의 도서관이 있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대전시 인구는 1,518,775명이다. 단순히 숫자로만 놓고 보면, 150만 인구가 239개 도서관을 한꺼번에 이용할 때 도서관 하나를 6,354명이 이용할 수 있다.
239개로 등록된 대전시 도서관은 규모에 따라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으로 나뉘고, 운영주체에 따라 민간도서관과 공공도서관으로 나뉜다. 일정 정도의 규모를 갖춘 공공도서관은 24개이고 나머지 215개가 규모가 ‘작은’ 도서관이다. 관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은 총 64개다. 64개 중 공공도서관은 24개이고, 작은도서관은 40개이다. 민간도서관은 175개로 모두 작은도서관이다.
2015년 대전광역시에는 총 열다섯 개의 도서관이 개관했다. 그중 여덟 곳이 유성구에서 개관한 도서관이다. 일곱 곳은 새로 생긴 아파트나 동네 한가운데 생긴 작은도서관이고, 한 곳이 공공도서관인 관평도서관이다. 현재 유성구는 대전광역시 지자체 중 가장 활발하게 도서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마을 도서관 운영이라는 목표로 2018년까지 총 두 개 도서관을 더 개관할 예정이다.
“저희 유성구는 ‘사람이 희망이다, 행복유성’이라는 슬로건을 철학으로 도서관에 투자하고 있어요. 도서관은 공공에서 사람에 투자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장소죠. 사람에 투자하는 건 다른 것과 비교해 바로 결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잖아요. 미래를 보고 사람을 위한 투자를 하는 거죠.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에요. 민선5기부터 개관한 작은도서관 일곱 곳의 실태를 조사하면 일평균 497명이 이용해요. 만족도도 굉장히 높고요. 앞으로 작은도서관은 좀 더 주민 가까이에서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유성구 도서관 관계자의 이야기다. 좋은 공간이 생기고, 주민들은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만족감을 느낀다. 유성구의 이러한 도서관 정책은 구민들의 지속적인 바람이 반영된 결과다. 유성구에는 1994년 개관한 유성도서관 말고는 관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없었다. 점점 인구가 늘고, 외국에서 살다 온 구민들이 다른 나라에서 받았던 도서관 혜택을 들며, 구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구민들의 요구로 유성 도서관은 세 개의 ‘분관’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분관이 있던 곳에 ‘작은도서관’이 생겼다.
“한 번에 큰 도서관을 지을 수 없으니까 ‘유성도서관 분관’을 세웠어요. 분관을 운영하면서 쌓인 데이터나 주민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바탕이 되어서 지금 도서관 정책을 펼치는 데 거름이 된 거예요.”
정말 필요한 것을 주는
도서관을 만든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뉴욕도서관에서는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 제공했다. 대형 미디어에서는 매일 사건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지역 정보 제공은 도서관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테러를 겪은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 제공했다. 병원, 경찰, 재해지원 단체, 보험 등 각종 안내 정보가 게재된 긴급 전화번호 리스트를 마련했다. 메일로 사서에게 문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상담 정보나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책을 추천했다. 수많은 시민이 뉴욕 공공도서관 사이트에서 도움을 받았다. 뉴욕 공공도서관이 삶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거리가 가깝다는 개념이 아니다.
뉴욕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의 삶에 기꺼이 녹아들 수 있었던 건 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확실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때 ‘사용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우리 도시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도서관은 1989년 개관한 한밭도서관이다. 한밭도서관이 개관한 이후 3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우리 도시에는 200여 개가 넘는 도서관이 생겼다. 아파트 주민센터에 있는 도서관을 합한 숫자라도 많은 숫자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존재 이유를 심어주는
도서관을 만든다
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 박지현 대표는 민간 도서관에서 진짜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도서관 문화가 시민 사이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으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민관이 함께 도서관을 만드는 도시로 광주시를 예로 들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조직한 도서관컨설팅위원회와 광주시 도서관 담당 공무원들은 자주 토론하고, 지속해서 논의한다. 논의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 도서관 정책에 반영된다. 광주시 문화도시정책관실에서는 그 예로 ‘도서정리 서비스’를 들었다. 전문사서 없이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작은도서관에서 어렵게 느끼는 게 도서정리였다. 문헌정보학과 학생을 모집해 작은도서관 관련 교육을 한다. 교육받은 학생들은 작은도서관에 파견한다. 도서를 입력하고 정리하는 일을 함께한다.
“더 많은 사람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어려운 이유는, 바쁘다는 거예요. 매일 시험공부를 해야 하고, 종일 일에 지친 몸을 이끌며 살아요. 여유가 없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거죠. 그런데 시민이 이용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주기 힘들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우리 현실에 맞는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키우는 거죠. 무조건 큰 도서관을 채우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민의 요구가 담긴 작은도서관을, 제대로 만들고 투자하기 시작해서 시범적으로 운영해요. 이런 실험이 잘 됐을 때 점점 크게 번져나가도록 하는 거죠. 그렇게 하려면 마을 안에 있는 공동체 중심의 도서관이 필요해요. 아이가 지나가다가 넘어졌을 때 엄마보다 먼저 가까운 도서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도서관은 책이나 정보뿐만 아니라 그곳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해요. 자원봉사자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요구를 제대로 해결해줄 수 있는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문제예요.”
박지현 대표의 이야기다. 이제 30년이 더 흐르면 우리 도서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대전 시민들은 어떤 도서관을 원할까. 우리가 어떤 혜택을 줄 때 사람들은 도서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도서관이 행정을 위해 건설되는, 보여주기식 도서관이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공간만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도서관은 아니어야 한다. 도서관을 지키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도서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많은 과제가 있다.
글 이수연 | 사진 이수연, 뉴욕 공공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