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3호] 일본의 가을

내리쬐는 햇볕이 버겁기만 했던 여름날이 지나 드디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38℃를 넘나드는 습도 높은 일본의 여름날이었기에 가을의 방문이 그토록 반가울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 살 때는 싱그러운 초록빛이 가득하고 긴 긴 여름방학이 있는 여름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었는데요, 일본에서는 더위의 고난 끝에 오아시스처럼 찾아오는 가을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일본의 가을은 시원하기만 한 게 아니라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가 다양하므로 더욱 즐겁습니다.

가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역시 ‘단풍’이죠? 일본의 단풍도 빨간색으로 물들며 가을이 찾아왔음을 알립니다. 산이나 신사, 유적지 등의 단풍이 물들며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경관을 만들어내지요.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단풍 여행’이 유행합니다. 가을이 없는 나라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국내 일본인들도 단풍 구경을 위해 집을 나섭니다. 단풍 여행으로 유명한 장소는 일본 전국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일본 관광 협회에서 ‘일본 단풍 명소 100곳’을 선정할 정도로 추리고 추려서 100곳이라니, 굉장하죠? 그중 교토의 아라시야마 단풍이나 동경의 쇼와 기념 공원의 단풍은 흔히 가는 관광 코스에서 멀리 가지 않아도 볼 수 있으므로 추천합니다.

독서의 가을이나 식욕의 가을이란 말은 한국에서도 익숙하지만, 한층 더 나아가 일본인들에게 ‘스포츠의 가을’이라는 표현은 참 익숙합니다. 1964년 10월, 동경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널리 퍼진 표현이에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기도 하고, 운동회 또한 가을에 많이 있으므로 더욱더 자주 쓰이는 듯합니다. 게다가 10월 10일은 전 국민에게 운동을 즐기자는 취지로 국가에서 제정한 ‘체육의 날’이지요.

10월 31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바로 핼러윈 데이에요. 가을이 찾아오면 일본의 가게들은 핼러윈 장식으로 멋지게 탈바꿈합니다. 원래는 미국의 민간행사인 핼러윈이 일본에서는 가을날의 큰 이벤트 같은 이미지로 정착되었어요. 호박에 얼굴을 조각해서 만드는 잭 오 랜턴이나 해골바가지, 박쥐 같은 장식물로 가게를 꾸미는 것은 물론 핼러윈을 주제로 한 상품이 출시되기도 해요. 일본의 도넛 전문점인 ‘미스터 도넛’에서는 핼러윈 도넛이 출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인 ‘배스킨라빈스 31’에서도 핼러윈 선데이 아이스크림 등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 패션업계 또한 핼러윈 붐입니다. 일본의 인기 있는 룸웨어 브랜드 ‘젤라또 피케’에서도 핼러윈을 이미지화한 룸웨어가 나왔습니다. 가게뿐만 아니라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테마파크에서도 핼러윈을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누가 테마파크의 직원인지 모를 정도로 입장객들도 각양각색의 캐릭터로 변장하여 돌아다니지요. 젊은이들의 거리인 동경의 롯폰기나 하라주쿠 역시 핼러윈 복장으로 가장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할 정도로 가을에는 식욕이 증가합니다. 일본에서도 식욕의 가을이라 할 정도로 가을은 틈만 나면 배고픈 계절입니다. 하지만 제철음식 또한 넘쳐나는 가을이므로 어딜 가나 맛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일본에서 가을의 음식 하면 역시 꽁치입니다. 일본어로 꽁치는 ‘秋刀魚’라 쓰고 ‘삼마’라 읽는데요, 이름에 가을 추(秋)자가 들어갈 정도로 꽁치는 가을의 대표적인 제철음식입니다. 소금을 쳐 구워 먹기도 하고, 밥을 할 때 쌀 위에 얹어 꽁치 향 구수하게 풍기는 밥을 짓기도 합니다. ‘마츠타케’라 불리는 송이버섯 또한 가을을 대표하는 고급 음식재료입니다. 제철인 단호박, 밤, 고구마를 이용한 음식도 많습니다. 특히 이들을 이용한 디저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요.
바람도 시원하고 경치도 좋아서인지 우리 집 강아지도 요즘 산책에 나설 때 어느 때보다 더 즐거워 보입니다. 달콤한 만큼 금방 지나가 버리는 가을이니 눈 깜짝할 새 겨울이 성큼 다가오겠죠?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신나게 낙엽을 밟으며, 제철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 만끽하렵니다. 가을이 지나기 전에 일본에 놀러 오는 건 어떠신가요? 
 
박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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