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3호]성남시 청년배당을 둘러싼 몇가지 단상

글 최광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저자)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 추진은 기본소득 담론과 논쟁확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진보정당 소속도 아닌 현직 시장이 기본소득과 궤를 같이 하는 청년배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보리라고 예상치 못한 탓에 반가운 마음은 더 크다. 한 해에 100만 원을 분기별로 나눠 지역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화폐의 형태로 지급하는 매우 제한적인 형태의 시도이지만,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작은 지자체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제도의 한계를 감안하면 그 세부사항에 대해 크게 할 말은 없다. 그 수준과 범위, 방식이 어떠하든 기본소득과 궤를 같이 하는 제도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현실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다분히 모험적인 이러한 시도가 성남이 아닌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은 쉽지 않다(물론 정부의 극렬한 반대로 성남시에서도 좌초될 수 있다). 보수 정부와 정당들의 반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진영 내에서도 기본소득이 확고한 시민권을 획득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당들 가운데는 녹색당과 노동당 일부, 그 외 소수의 시민사회단체와 뜻있는 개인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정도이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흐름도 각양각색이고, 기본소득과 이와 연관된 제도 혹은 정책들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입체적인 고민도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편이다. 아무튼 이번 성남시의 시도는 그간 큰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했던 기본소득 관련 논의를 확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서 청년배당이라는 제도가 기본소득과 궤를 같이 한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지점을 살펴보자. 첫째, 이 청년배당은 모든 연령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있지만, 수급을 위한 아무런 심사나 조건이 없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한편, 이 청년배당은 엄밀한 의미의 기본소득보다는 브루스 액커만(Bruce Ackerman)의 ‘사회적 지분급여(stakeholder grant)’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액커만은 미국의 맥락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청년에게 괜찮은 4년제 사립대학 정도를 다닐 수 있는 학비에 해당하는 액수를 일시불로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모은 재원으로 모든 청년에게 동등한 도약의 기회를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기본소득과 사회적 지분급여를 둘러싼 여러 논쟁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제안이 꼭 상호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 맥락에 따라 우선순위가 조정될 수 있고, 단계별로 다양한 조합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둘째, 곁으로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이 청년배당 정책을 계기로 진보 진영의 대학등록금 정책 또한 다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녹색당, 정의당, 노동당(구 진보신당)의 대학등록금 정책은 장기적으로 국고 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없애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에 대한 동등한 수준의 혜택이 동반되지 않을 때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 있다. 대학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기능 등이 이러한 등록금 폐지 논의의 배경이 되지만,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등록금 폐지만 부각되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청년에게 동일한 현물 혹은 현금 형태의 배당이 고안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액커만의 제안처럼 대략 평균적인 4년치 대학 등록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두에게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대학 개혁과 등록금 구조의 개선은 전제이다). 이 배당으로 누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는 직업교육을 받고, 누구는 개인사업의 밑천으로 쓰고, 또 누구는 탕진을 할 수도 있다.

 

셋째, 모든 실효적인 정책과 제도는 재원 마련 논의를 피해갈 수 없다. 특히, 기본소득이나 각종 사회배당과 같은 보편주의적 원칙을 도입하는 제도의 경우 보다 과감한 재원 마련 논의, 세제 개편 논의가 필수적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제도는 결국 실현이 불가능하며, 설령 미흡한 수준으로나마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역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확히 말하면, 보편주의 제도 실현과 급진적 조세개혁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번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은 사실 그 지급 액수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는 없다(그럼에도 구조상 미미한 수준의 역진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재원의 한계로 그 배당의 규모가 커지기도 어렵지만, 재원이 어떻게든 커진다 하더라도 기존의 부의 분배 구조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급 액수를 보편적으로 늘리는 것은 부자들을 살찌우는 결과를 낳는다. 성남시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대략 이 정도까지이다. 그 이상의 실질적인 보편주의 정책의 도입은 조세 제도를 뜯어고칠 수 있는 국가적 수준에서만 가능하다.

 

사실 기본소득과 같은 매우 보편주의적인 제도의 도입 논의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는 바로 이 재원 마련 문제 때문이다. 그간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기는 했지만, 보다 공격적으로 부각되지는 못했다. 급진적이고 누진적인 조세 개혁과 보편주의 정책의 실현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좀 더 분명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부자가 보편주의적 제도의 유지에 필요한 고율의 정당한 세금을 제대로 내기만 한다면 그 자제들이 학교 급식을 남들과 똑같이 무상으로 먹고, 청년배당도 똑같이 받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가난한 사람만 가려내 떡고물을 주라는 말은 현재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손대지 말라는 말과 같다.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분배 구조 안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모든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는 없다. 급진적 조세 개혁을 통한 보편주의 제도의 실현은 빈자의 해방이기도 하지만 부자의 해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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