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3호]강원도의 밤

1997년 창립한 대전충남녹색연합(이하 녹색연합)은 그간 대전, 충남의 자연과 환경을 위해 움직였다.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며, 자연과 약한 사람을 위한 활동으로 녹색연합의 색을 견고히 했다. 녹색연합의 활동은 시민이 자연과 환경이라는 낱말을 피부로 느끼고, 생명의 소중함을 삶에서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다. 2014년 ‘운동’이나 ‘교육’이 아닌 함께 즐기며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바람이 ‘녹색생태현장 투어’라는 프로그램으로 나왔다. 2014년 5월부터 진행한 생태투어에 월간 토마토도 동행했다. 2015년 두 번째 생태투어는 10월 9일과 10일, 강원도 평창 백룡동굴을 탐사하고, 칠족령을 트레킹하는 코스로 진행했다. 

어둠으로 들어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새빨간 작업복을 입고 새파란 헬멧을 머리에 썼다. 며칠간 동굴 안에서 금이라도 찾아올 기세로 각오를 다졌다. “백룡동굴, 파이팅” 위아래로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렇게 파이팅을 외쳤다. 백룡동굴 생태체험 학습장에서 800m 가면 백룡동굴이 나온다. 걸어서 400m, 배를 타고 400m 정도 가다 멈춘다. 배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면 백룡동굴 입구다. 가로, 세로가 같은 간격으로 놓인 은색 쇠창살로 된 입구가 백룡동굴로 들어가는 문을 가로막았다. 
“헬멧을 단단히 쓰셔야 합니다. 동굴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면 단순한 상처가 나는 게 아니라 최소 꿰매야 해요. 헬멧 헐겁게 쓰셨다가 머리 박은 분들은 다들 꿰매고 가셨어요. 동굴 안은 사람이 다니기 편하도록 길이 조성된 게 아니니까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저를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 해설사의 설명에 온몸에 긴장감이 감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조금씩 어둠과 가까워졌다. 

백운산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백룡’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동강과 백운산의 아름다움이 함께 놓인 이 동굴은 1976년 전까지는 그저 마을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동굴이었다. 
“산을 헤매다 마주친 어두컴컴한 동굴. 호기심 가득한 10살 무렵 아이는 동굴의 저 끝을 더듬으며 한 발짝씩 나아갔고, 100m를 지나친 곳에서 아이는 주검 2구를 보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음질쳐 나왔다. 가족이 문경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그는 중학교를 문경에서 마쳐야 했다. 또렷한 동굴의 기억은 지워지질 않았다. 그러면서 공포는 차츰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17살 되던 해 그는 가족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밥만 먹고 나면 동굴을 찾아 헤매던’ 때였다.” 
1998년 10월 2일 자 한겨레신문에서 ‘동굴 지킴이’ 정무룡 씨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1976년 열일곱 살 정무룡 씨는 그해 5월, 형제들과 함께 동굴을 찾았다. 1976년 이전까지 사람들은 동굴 입구로부터 200m 정도까지만 파인 굴인 줄 알았다. 그곳을 놀이터처럼 자주 드나들던 정 씨와 형제들이 200m 지점에서 손바닥만 한 개구멍을 발견했다. 개구멍 앞에서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박쥐 한 마리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은 구멍에서 선풍기 강풍 튼 것보다 센 바람이 나오는 걸 정무룡 씨가 느낀 거예요.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막내동생의 허리에 줄을 매달고 들어가 보라고 해서 막냇동생이 들어갔다고 해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깊숙한 동굴이 있었던 거죠. 이후 백룡동굴이라는 이름은 백운산의 ‘백’과 정무룡 씨 형제의 돌림 자 ‘룡’을 따서 백룡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해설사의 설명을 따라 백룡동굴을 탐사했다. 1996년 동강댐 건설 발표 후 백룡동굴은 수몰 위기에 처했다. 관련 학계와 환경단체, 국민의 반대로 2000년 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됐다. 그 후 10년 뒤인 2010년 백룡동굴 생태학습장이 문을 열었다. 
동굴로 들어가는 내내 허리를 펴고 숙이고를 반복했다. 입구로부터 200m쯤 지났다. 그곳에서 정무룡 씨가 발견한 ‘개구멍’을 만났다. 새빨간 작업복은 그제야 빛을 발했다. 바닥에 깔린 까만 고무 위에 엎드려 팔꿈치에 힘을 줬다. 앞으로 앞으로 기어들어갔다. 천천히 개구멍을 통과했다.

 

 

빛 조차도 공해일 수 있는 어둠

“200m 이전까지는 워낙 많은 사람이 드나들어서 이미 훼손이 많이 된 상태였어요. 정무룡 씨가 발견한 해 
6월에 전문가에 의해 처음 탐사가 이루어졌고, 1977년 12월에 천연기념물 제206호로 지정했습니다.”
총 길이 1.2km인 동굴은 780m 주굴과 네 개 굴이 이어진 사행굴이다. 사람들과 함께 탐사한 구간은 780m의 주굴이다. 입구에서 200m를 지난 지점부터는 동굴 방패, 우유 통, 돌탑, 레이스 커튼 등 자연이 만든 작품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동굴 안에는 동굴이 만든 작품도, 사람이 훼손한 흔적도 많았다.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긴 사람도, 다녀갔다는 증거를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남근석’ 사건이었다. 


“1998년에 백룡동굴에서 ‘남근석’이라고 이름 붙은 종유석을 훔쳐서 달아난 사건이 있었어요. 남근석을 두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 때문이었어요. 다행히 금방 찾았는데, 며칠이나 봉합 수술을 했어요. 스테인리스 볼트를 동굴 천장과 남근석에 연결하는 방법으로 복원했어요. 임플란트했다고 말하기도 해요.”
길이 40cm, 지름 8cm, 무게 2.2kg의 종유석 끝에는 하얗게 수술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람이 마구 드나들 때 훼손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해설사는 동굴이 만든 작품에 하나씩 불을 비추며 설명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는 헬멧 위에 덧쓴 랜턴과 해설사의 조명만이 눈이 된다. 동굴 입구에서 700m쯤 떨어진 곳, 동굴을 탐사하는 마지막 지점에서 모두 멈췄다.

“이곳이 우리 탐사의 마지막 지점이지만, 동굴이 생길 때는 이곳부터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모두 헬멧 위에 조명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조명도 꺼보겠습니다.”
해설사의 말이 끝나고 모든 빛이 사라졌다. 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동그랗게 뜬 눈이 무색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숨 쉬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새까만 어둠이었다. 빛 역시 그곳에서는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공해가 되었다. 눈을 떠도 새까맣고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형상도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어둠 역시 자연이 주는 이야기였다. 


“백룡동굴은 자연을 망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불편하게 움직여야 하는 동굴입니다. 설치해놓은 빛도 없고, 다니기 편하라고 길을 조성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편의가 아니라 자연을 더 많이 생각한 곳입니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마치고 입구 쪽으로 향했다. 입구와 가까워지니 저 멀리 동굴 틈새로 햇볕이 내려왔다. 반가움에 저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머리에 줄곧 달고 다니던 조명과 햇볕이 주는 기운은 확연히 달랐다. 
다음날 칠족령 트레킹을 마지막으로 2015년 녹색연합 두 번째 생태투어를 마쳤다. 백운산의 푸른 기운을 잔뜩 집어삼킨 동강은 청록색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이용안내

01 백룡동굴 탐사는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30분 단위로 총 12번 진행합니다. 한 번에 스무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으며, 동굴해설사가 동행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꼭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을 찾아야 합니다. 

02 동굴에 들어가기 전, 이름과 생년월일 등 인적사항을 기록하는 과정과 매표를 완료해야 하니 관람 시작 20분 전까지 학습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03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에서는 빨간색 작업복, 헬멧, 조명, 장갑, 벨트까지 총 다섯 개 물품을 빌려줍니다. 생태체험학습장에는 탈의실과 샤워실이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탈의실에 가지고 온 모든 물건을 두어야 합니다. 휴대전화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돼요. 

04 동굴 안에서는 딱딱한 바닥에 엎드려서 무릎으로 기어야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어깨가 좋지 않은 분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걸 충분히 고려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으신 분은 무릎보호대를 준비하세요. 

 

11월에도 녹색연합생태투어가 진행됩니다. 
H. www.greendaejeon.org
T. 042.253.3241


이수연 사진 이수연, 생태체험학습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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