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은 과거 회덕군 외남면에 속했던 지역이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전면의 춘일정 일정목·영정 이정목으로 불렀다. 그러다 1946년 일본식 지명을 변경할 때 ‘삼성동’으로 개칭했다. 1970년에 삼성1동과 삼성2동으로 분리됐고, 2008년 삼성동으로 재통합했다.
삼성동은 경부선 철도가 중앙을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대전천 인근에서 천동, 효동과 함께 정미, 제사, 방적, 피혁 공업 등 경공업이 발전했고, 주요 산업 및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둔산 신도시 개발로 도시의 주요 기능이 속속 이전함에 따라 삼성동 또한 인근 원도심 지역과 마찬가지로 옛날의 빛을 잃어갔다. 이달에는 지난 호 삼성시장에 이어, 대동천에 인접한 과거 삼성1동에 속하는 삼성1주택재건축 지구를 걸었다.
이 구역에서 중심이 되는 길인 우암로 85번길을 죽 따라 걸어 들어갔다. 삼성교에서 대로변까지 이어진 길이다. 평일 정오가 가까워 오는 시간, 골목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아버지나, 뒷짐 지고 가는 할머니 무리가 가끔 눈에 띌 뿐 대체로 한산한 모습이다.
좀 더 골목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골목 안쪽으로는 주택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면면을 뜯어 보면 완전한 주택가는 아니고 상업지역과 주택가가 혼재한 모습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는 주택과 함께 인쇄소, 제책사, 코팅사 등이 드문드문 자리해 있다. 역시나 주민의 인적은 드물고, 오래된 인쇄 공장에서 희미하게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다 골목 끝 모퉁이에서 길에다 고추를 말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두 아주머니를 만났다.
“36년째 살고 있지. 옛날에는 여기가 부자 동네라고 그랬어. 처음 왔을 때는 인쇄소도 별로 없었어. 원래는 상가가 엄청 많았는데 다 이사 가고 상권이 다 죽은 거여. 저기 개방대학이 이사 가고부터 그렇게 됐지. 그 자리에 자이 아파트가 들어섰잖아. 옛날에는 이 동네가 밤에 얼마나 호화찬란했다고. 그 때는 유천동 마냥 아주 번쩍번쩍했는데…. 대동천은 뭐 그냥 또랑이었지. 재건축 지정 된 지는 10년 가까이 됐어. 살기 좋기는 뭘. 그냥 여기는 교통 하나는 아주 편하니까 그래서 좋지. 오래된 데는 별로 없는데… 저기 흥광슈퍼가 오래됐고, 그 옆에 담뱃집도 오래 됐어.”
아주머니는 오래된 상가는 모두 떠나서 없고, 두세 곳 정도만이 남았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일러준 대로 동네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흥광슈퍼를 찾아 골목을 나섰다. 흥광슈퍼는 골목을 들어오기 전 죽 걸었던 중심길, 우암로85번길 가운데쯤 모퉁이에 자리했다. 외관을 새로 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어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2층짜리 건물의 1층 외벽에 ‘흥광’이라는 글씨가 쓰인 곳이었다.
슈퍼는 여기 하나만 남았어
“개방대학이 한밭대로 바뀌어서 나가고 나니까 상가들이 다 문 닫았지. 그때는 개방대학에서 야간에 공부하던 공무원들이 수업 끝나고 여기로 술 먹으러 오고 그랬어. 장사가 잘 됐어.”
올해 79세인 흥광슈퍼 주인 할아버지는 가게 한 구석 단을 높여 만든 자그마한 방 안에 앉아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훑고 있었다. 개방대학은 일정한 학교교육을 마쳤거나 중단한 근로 청소년, 직장인, 시민에게 재교육 및 평생교육의 기회를 줘 대학 과정을 이수하게 하는 학교로 대전에는 1984년에 생겼다. 대전개방대학은 지금의 삼성동 한밭자이 자리에 있었는데, 이후 대전공업대학, 대전산업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가 2000년도에 유성으로 이전해 이듬해 한밭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일반대학으로 전환했다.
“삼성동 산 지는 70년 됐어. 김천에서 출생해서 국민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해방되고 아홉살 때 여기로 왔지. 왜정시대에는 영정이라고 했지. 8.15 해방 후부터는 삼성동이라고 했고. 그 시절엔 국민학교 하나뿐이었어. 선화초등학교, 현암초등학교, 성남초등학교가 다 삼성초등학교에서 갈려 나간거여. 슈퍼는 1974년도부터 했어. 건물은 70년도에 지었지. 그 때는 2층집이란 게 잘 없었는데, 내가 처음 지었지. 그때만 해도 길이 비포장이라 장화 안 신으면 안 될 정도였어. 요 앞 삼성다리는 계룡버스 종점이었지. 그때 계룡버스가 첨 생겼어. 그땐 버스 타고 다니는 사람 거의 없어, 다 걸어다니지. 여기서 멀리 유성 가는 사람이나 탄 거여. 여긴 집값이 싸니까 죄다 인쇄소 뿐이여. 젊은 사람은 안 살아. 노인들만 살아. 교통만 좋으면 뭐햐. 상가 형성이 안 되는데. 근방에 슈퍼가 여섯 군데 있었는데 다 문 닫고 우리만 남았어.”
할아버지와 한창 얘기를 나누던 중 입구에 놓인 간이테이블에서 낮술을 하던 한 아저씨가 불콰하게 취한 음성으로 외상값을 묻는다. “나 오늘까지 얼마지유? 이따가 갖다 드릴게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건성으로 외상값을 알려준 할아버지는 행여 잊을세라 곧 옛날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려서, 궁금한 건 다 끝난겨?”
동갑내기 아내인 할머니가 안쪽에서 점심상을 차려 들고 나올 즈음 출입문을 나섰다. 들어설 땐 몰랐는데, 여닫이 문짝들이 옛날식 나무 문 그대로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눈길이 머문다. 슈퍼를 나와 대동천으로 향했다. 길에서 곧바로 이어진 작은 다리, 삼성교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면 곧 대형 아파트 단지다. 과거 개방대학이 있던 자리다.
다리 건너편에서 방금 지나온 동네를 건너다보았다. 낡고 스러져가긴 해도 제각각의 모양과 색깔과 이야기를 지닌 건물들의 모습이 정겹다. 그 풍경이 천천히 사라졌으면 했다. 머지않아 40년 된 슈퍼가 사라지고, 동네의 옛날 모습을 기억하는 주민이 떠나고, 그 자리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상상을 하면 아무래도 쓸쓸해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