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천이 한눈에 내려보이는 카페 ‘나무의자’에 앉아 샤를 아즈나부르의 샹송을 듣는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떻게 2층 계단 앞머리에 커다랗게 달려 있는 ‘나무 의자’ 간판보다 건물 한쪽 구석, 층계 출입구에 조그맣게 달린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선명하게 부각된 ‘다방’ 간판 위에 달려 있어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말이다. 한껏 멋을 내기는 했지만 간판으로서 제구실은 하지 못했다.
어떻게 2층 계단 앞머리에 커다랗게 달려 있는 ‘나무 의자’ 간판보다 건물 한쪽 구석, 층계 출입구에 조그맣게 달린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선명하게 부각된 ‘다방’ 간판 위에 달려 있어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말이다. 한껏 멋을 내기는 했지만 간판으로서 제구실은 하지 못했다.
그 간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문득, 샤를르 아즈나브르의 바다 - La Mer 가 듣고 싶다면!’
암호 같았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서 스즈메가 계단 난간에서 손톱만한 ‘스파이 모집’ 광고를 발견했을 때처럼 지루한 일상에 던져질 돌멩이 하나로 보였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여러 날이 지난 후 나무의자를 찾았다. 반가운 가을비가 내린 다음날이라서 청명하고 볕이 무척 따뜻한 날이었다. 이층 계단으로 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었다. 출입구 부분이 좁고 안쪽이 넓어지는 형태다. 땅의 소유 구획에 맞춰 건물을 올리면서 생긴 ‘꼴’이다. 그 지루하지 않은 공간 구조가 맘에 들었다.
대전천 쪽인 서쪽으로는 넓은 창이 나 있다. 그 창으로 햇살이 한가득 들어온다. 그 창에 붙여 붙박이 테이블을 만들었고 그 창 끝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면 피아노와 만난다.
이 모든 모습이 예상과는 살짝 달랐다. 축축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에 젖어들어가는 공간을 상상했는데, 밝고 편안하다. 커피 머신을 놓은 주방 앞에는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주인 아저씨가 앉아 있을 거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매장 안 스피커에서는 달콤하며 때론 나른하고 애수에 젖은 샤를르 아즈나부르가 부르는 샹송이 흘러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란하지 않은 팝송이 흘러나왔다.
카페를 지키는 20대 그녀는 심지어 ‘문득, 샤를르 아즈나브르의 바다 - La Mer 가 듣고 싶다면!’이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에 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카메라를 꺼내 간판을 보여주자, 무척 신기해 하며 웃었다. 그녀는 나무의자에서 일한 지 일 년이 다 되었지만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암호가 분명했다. 그녀는 커다란 가방과 카메라를 지고 나타난 늙수그레한 남성에게 적대감까지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낯설어 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녀와 공간이 손님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카페 ‘나무 의자’가 문을 열기 전, 이 공간은 한 종교 모임에서 회합 장소로 사용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2년 전, 카페로 문을 열었다. 이력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나니 계단 입구에 적혀 있는 암호와 같은 문구가 더욱 낯설어 현실적이지 않을 정도다.
예상과 다른 공간이지만 나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창가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냈고 유투브에 접속해 샤를르 아즈나부르가 부른 ‘she’를 찾아 이어폰으로 들었다. 창밖에서는 가을 바람이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며 나뭇가지를 흔들어 잎사귀를 떨군다.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닌, 네 마음이라는 한 스승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 시간 바깥의 삶은 커다란 검은색 창틀 안에서 영화처럼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