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3호]우리가 만들 '차 없는 거리' 는?

지난 10월 19일에 열린 제11회 원도심, 공간의 재발견 포럼은 ‘차 없는 거리(날),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이야기 나눈 자리였다. 이날 특강을 맡은 지속가능한 도시연구센터 박용남 소장은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관련 행사는 주로 ‘장터’나 ‘공연’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며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중앙로에 새로운 색깔을 입힐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강 내용은 주로 ‘생태교통도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중앙로에서 차 없는 거리나 차 없는 날을 시행해야 하는 이유도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의 필요성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날 포럼에서는 차 없는 거리(날)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다양한 내용의 논의가 오갔다. 
생태교통도시를 꿈꾸는 도시
금융 위기와 석유 부족, 기후 변화. 박용남 소장이 지구촌의 세 가지 위기에 관해 설명했다. 생태교통은 뒤에 언급된 두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으로 대두한 개념이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청정에너지 사용 및 보급을 확대하는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이 생태교통이다. 
박용남 소장은 “도시를 생태교통도시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5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런 준비를 해 본 적이 없다.”라며 “차에 의존도를 줄이지 않고는 도시 안에서 삶 터를 만들 수 없다. 차 없는 거리나 차 없는 날이 필요한 이유도 차에 의존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용남 소장은 차 없는 거리나 차 없는 날을 시행하는 다양한 도시의 사례를 소개했다. 생태도시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쿠리치바는 차가 다니는 도로를 꽃의 거리로 바꾸었고 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쿠리치바가 최근 들어 역점을 기울이는 것 중 하나가 ‘시클로 레저(Ciclo Lazer)’, 우리말로 하면 자전거 레저다. 시내 중심부의 4개 도로를 연결해 총연장 3.5km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 개 차로를 막아 자전거 타기를 시행하고 있다. 
쿠리치바의 시클로 레저 사업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먼저 시작한 것이다. 보고타는 남미에서 가장 큰 자전거 도시로, 2013년 기준, 자전거 도로망이 376km에 달하며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도 5% 정도다. 
 
보고타에서는 1982년에 시클로비아(Ciclovia) 사업을 시작했는데 120km 도로를 막고 매 일요일과 국경일에 7시간 동안 주요 간선도로에서 차를 통제하고 보행자,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인라인스케이트 이용자 등에게 도로를 개방한다. 
이 도시는 2000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차 없는 날을 운영하는데 2001년부터 2월 첫 번째 목요일을 차 없는 날로 정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 중이다. 이날은 시청 허가를 받은 일부 버스와 택시를 제외하면 차를 탈 수 없고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도로를 채운다.
   
보고타의 시클로비아 사업은 보고타에서 시작했지만, 세계보건기구에서 공식적으로 권장한 사업으로 세계 여러 도시에서 비슷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도시가 미국 뉴욕이다. 
뉴욕은 2007년에 ‘더 푸르고 더 위대한 뉴욕’ 보고서를 발표하고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완전히 개조하는 혁명적인 사업을 진행한다. 타임스퀘어 광장을 찻길에서 광장으로 전환했으며 뉴욕 전체를 차에 의존도를 줄이는 곳으로 바꾸었다. ‘섬머 스트리트(Summer Streets)’는 11km 정도 길이의 도로를 일시적으로 폐쇄해 시민에게 개방하는 사업으로 여름에만 진행하며 다양한 프로젝트와 파티가 열린다. 이 밖에도 뉴욕에서는 다양한 이름으로 차에 의존도를 줄이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영국 런던도 ‘서머 스트리트 런던(Summer Streets London)’이란 이름으로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한다. 런던의 대표적인 상업 지역 중 하나인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7월 모든 일요일에 시행하며 날마다 다른 주제를 선정해 시민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계획한다. 최근에는 ‘오픈 스트리트 런던(Open Streets London)’을 진행하는데, 4개 구역을 각기 다른 콘텐츠로 구성한 7개 존으로 나누어 운영한다.
프랑스 파리는 ‘파리 플라주(Paris-Plages)’라는 이름으로 센강을 따라 차도를 통제하고 보행자 도로를 만들어 인공 백사장을 조성해 해변 분위기를 연출한다. 편도 2~3차선 자동차 전용도로를 폐쇄하고 약 2.3km 구간을 놀이터 형태로 구성한 ‘센 강 둑길’은 파리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파리의 상징가인 샹젤리제 거리를 프랑스 농민들이 하나의 정원으로 만든 전원도시 프로젝트도 차 없는 거리(날)를 말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될 프로젝트다. 너비 70m, 길이 1.5km 거리에 차를 통제하고 각종 농작물과 나무로 가득 채워 전원 마을로 만든 행사를 이틀간 개최했다. 최근 파리에서는 차 없는 날 행사를 대규모로 진행했는데 중요한 거점마다 돌아가면서 운영한다.
 
 
'거리'는 다양한 논의에서 시작된다
박용남 소장은 “작은 사업 하나가 도시를 바꾼다. 차 없는 거리 사업을 중앙로에만 하는 게 아니라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전이 생태교통도시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보고타처럼 일 년에 하루는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는 날을 정해야 한다.”라며 또한, “대전시 주요 정책으로 시클로비아를 해 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로 차 없는 거리의 콘텐츠 문제도 지적했다. “장터와 공연 등 매번 비슷한 콘텐츠로만 거리가 채워진다면 시민에게 외면받기 쉽다.”라며 다양한 콘텐츠로 거리를 채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럼에 참여한 한 시민은 다른 나라 사례를 봤을 때 우리나라에 도입하면 좋을 것 같은 콘텐츠가 있는지 물었고, 이에 박용남 소장은 “얼마든지 가능한 콘텐츠는 많다. 그렇지만 그것이 도시 정체성과 관련해서 좋은 것인지는 논쟁해서 결정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운영 주체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박용남 소장은 “주체는 관, 민, 관과 민이 함께할 수도 있고 다양한 주체가 중앙로 차 없는 거리를 만들 수 있다.”라고 답했다. 

이날 원공재 포럼은 옛 충남도청 2층 소회의실에서 진행해 도시재생본부 공무원들이 자리를 많이 채웠다.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주최하는 공무원들은 매출 감소를 염려하는 주변 상인의 반대에 부딪히는데, 이와 관련해 홍보와 소통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박용남 소장은 “정답은 없다. 부단히 교육하고 대화해서 갈등을 미리 조정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차 없는 거리 행사를 하면 장기적으로 적게는 20%, 많게는 40%가량 매출이 오른다.”라고 이야기했다.
자리에 참여한 도시재생본부 박월훈 본부장은 “반대를 겪지 않고는 차 없는 거리를 만들 수 없다. 앞으로 도시재생본부가 해 나가야 할 일이 많다. 도시가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대중교통 중심 정책을 펼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자인 원공재 포럼 최정우 대표는 포럼을 마무리하며 “대전 시민의 집단 지성으로 차 없는 거리를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다양한 주체의 이해관계나 고민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는 편리함을 안겨 준 대신 도시의 모습을 삭막하게 바꾸었다. 차가 중심이 된 도로를 다시 사람에게 돌리는 일에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날 포럼에는 도시재생본부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이 자리를 채웠다. 중앙로 차 없는 거리에 관한 관심은 단 하루의 행사나 단 하나의 도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 도시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지 상상하고 논의하는 자리는 예상 시간보다 길게 이어졌다. 
 
성수진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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