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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6호]대전시민아카데미가 소개하는 2월의 책
머릿글
영양분 공급용 호스를 코에 끼운 채 종일 누워 있는 여든셋의 그녀. 5년 전, 치매증상이 심해진 그녀의 거취 문제를 놓고 가족회의가 열렸다. 자식이 넷이나 있는데 요양원은 말도 안 된다는 둘째 딸의 눈물에 그녀는 보따리를 싸 아들네 집에서 딸네 집으로 옮겨 갔다. 둘째 딸의 집에서 보내는 3년 내내 그녀는 아들네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지막 선택지는 요양원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녀만 모르는 듯했다.
늦둥이 막내아들의 대학입학을 앞두고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자식들 역시 먹고살기 팍팍한 형편이라 막내아들 뒷바라지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 되었다. 환갑이 넘어서까지 그녀는 ‘톳’을 땅바닥에 펴 말리고 주워 담는 일을 했다. 막내아들의 자식이 둘 생겼고,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의 육아를 돕고자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처분해 아들네 집으로 들어갔다. 손주들이 커 가며 그녀는 외로워졌다. 텅 빈 집에서 홀로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TV를 봤으며, 그녀의 시간과 기억이 조금씩 뒤섞여 갔다. 심상치 않은 징후는 천천히 오래 지속되었다.
요양원행을 면한 그녀는 둘째 딸의 집에서 곰살궂은 사위, 손주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꼬장꼬장하고 까다로운 그녀의 성격은 식구들을 힘들게 했다. 하나둘 지쳐갔다. 요양원은 절대 안 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던 그녀의 둘째 딸마저 이제는 두 손을 들게 되었다. 요양원으로 옮겨 간 후 그녀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먹는 양이 줄어 가고 넘어져 다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러다 결국,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녀는 이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그녀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아들네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녀, 나의 외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집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과 편안함을 주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인 것이다. 비록 혼자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TV를 보아도 말이다.
아툴 가완디의 환자였던 앨리스 할머니는 요양원 생활을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고 표현했다.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고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 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고, 직원들이 정해 주는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생활이 감옥살이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요양원 생활에 끝내 적응하지 못한 앨리스 할머니는 마지막을 예고하는 신호를 느끼고도 호출버튼을 누르지도, 룸메이트에게 알리지도 않고 깊은 밤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지난 몇 십 년 사이, 의학은 죽음에 관해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경험과 전통, 표현들을 더는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고, 인류에게 새로운 문제를 안겨 주었다.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기술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학자들이 ‘죽는 자의 역할’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기술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학자들이 ‘죽는 자의 역할’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중환자실에서 몸의 각 기관이 하나씩 멈추고, 정신은 오락가락하며, 형광등이 켜진 이 낯선 방을 절대 살아서 떠날 수 없으리라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누워 지낸다. “괜찮아”, “미안해” 혹은 “사랑해” 같은 말로 작별의 인사를 할 기회조차 없이 마지막을 맞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브레이크포인트 대화(breakpoint discussion)’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브레이크포인트 대화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싸우는 방식에서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것들-이를테면 가족, 여행,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을 위해 싸우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을 때(화학요법이 더 이상 효과가 없을 때, 집에서도 산소흡입기가 필요해질 때,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옷을 입을 수 없을 때 등) 나누는 일련의 대화를 말한다. 이 대화를 통해 저물어 가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죽음을 전제로 한 대화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아프다. 저자 역시 어렵지만 필요한 이 대화를 통해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쇠약해지고 의존적이 되면서 그러한 자율성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이는 분명 가능한 일이다. 루 할아버지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러하다.
“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요. 동양에 ‘카르마’라는 말이 있어요.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내 삶에 끝이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쩌겠소?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됐지.”
여든셋의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끝마치고 싶었을까.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저물어가는 그녀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더라면, 이제 여든넷이 된 그녀의 오늘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미술사와 세계사를 연계한 책 읽기 모임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시대별로 네 권의 책을 번갈아 읽을 예정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미술을 역사 속에서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합니다.
텍스트 / 캐롤 스트릭랜드의 《클릭 서양마술사》, 《클릭 서양건축사》, 마이클 설리반의 《중국미술사》, 중등 역사논술 교재 《살아있는 세계사 재미있는 논술》
대 상 미술사와 세계사에 관심 있는 분,
자녀교육에 관심 있는 분
일 시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장 소 아카데미 책방
문 의 김인희(역사논술강사) 010.9096.7179
* 낮 모임 모집 중, 연락 주세요.
자녀교육에 관심 있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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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전시민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