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구구절절' 문 열다

수상한 책방 '구구절절' 문 열다

서점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작은 책방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여하튼, 책을 생산하는 이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전 중구 대흥동에 테미책방 〈구구절절〉이 문을 열었다. 대고오거리에서 테미삼거리 쪽으로 올라가면 만난다.
책방지기는 작가 두 명이다. 시와 르포,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짓기를 꾸준히 진행하는 정덕재 작가와 시와 소설을 짓고 과학 글쓰기를 하는 김병호 작가다. 이 둘은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 조합원이다. 앞으로 구구절절에서 벌어질 일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

테미책방 구구절절은 2차선 도로에 접한 상가 건물 1층에 있다. 상가 건물 1층에는 모두 세 개의 영업 공간이 있다. 한동안 모든 공간에 파란색 셔터가 굳게 내려간 채 영업하지 않았다. 굳게 닫힌 셔터는 주변에 쓸쓸함을 더욱 깊게 했다. “이웃 주민들도 관심을 두고 좋아하시더라고요. 닫혔던 셔터를 올리고 공사하니까요. 아무래도 좋죠. 무엇이 생기는지 궁금해 하시고요. 어떤 분은 ‘고깃집도 있고 치킨집도 있는데, 책방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해 주시기도 하고요.”
마을이라면, 책방 정도는 하나 있어야 하는 건, 진리다. 
직사각형 타일로 외벽을 마감한 오래된 건물에 하늘보다 더 파란색 페인트로 과하지 않게 선을 넣었다. 간판은 공사할 때 뜯어낸 창틀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구구절절 간판에는 이런 문구를 적었다. “수십 년간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의 양과 바람의 무게를 견뎌낸 창틀은 시간과 공간의 역사입니다.”
구구절절이 둥지를 튼 곳은 여덟 평 남짓이다. 이 공간을 크게 셋으로 나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로 짜 만든 서가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테이블과 의자를 중앙에 배치한 공간을 만난다. 방문객이 책을 고르고 구매를 마음먹기 전에 잠깐 들춰볼 수 있도록 배려해 동선을 짰다. 그 안쪽은 주로 책방지기가 머무는 공간이다. 처음 만나는 공간보다 한 단 높다. 앞선 공간이 일반적인 영업 공간이라면 한 단 높인 공간은 내실이었던 곳이다. 바닥에 온돌도 설치했다. 맨 안쪽에는 화장실과 작은 주방 시설을 갖춘 공간을 드려 생활 편의를 높였다. 거주하고 생활하며 동시에 영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도시에서도 일과 삶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과 삶의 분리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닌 노동 방식의 문제를 드러내는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
이 공간을 책방으로 바꾸는 데는 많은 이웃의 도움이 있었다. 먼저 테미에 갤러리 문을 연 김주태 큐레이터는 직접 바닥 몰탈 작업을 해주었고 테미에 작업실을 둔 캘리그라피 작가는 서점 공간 여백에 멋진 캘리 작품을 선사했다. “가르쳐 주소서. 우리가 저무는 풍경 한가운데서 오후의 햇빛처럼 머무는 법을_ 이성복의 詩 「붉은 열매들이 소리없이」 중에서”
구구절절을 찾았다면 구석구석에 숨은 캘리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를 꼭 만끽해야 한다. 작품 중에는 정덕재 시인이 캘리 작가에게 부탁해 쓴 문구도 있다.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발견하는 그의 색깔이 뚝뚝 묻어난다.
구구절절에서는 새책과 헌책을 함께 판매한다. 새책은 문학서를 비롯한 인문학책 중심으로 소개한다. 헌책은 기부나 맡긴 책을 대신 팔아주는 형태로 운영한다. “지역 유명 인사나 책이 많은 소장자의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독서 취향을 엿보게 할 계획도 있어요.”

2.

책을 구비하거나 독자가 주문하는 책을 가져다 구매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책방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이 마땅한 일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구상 중이다.
“책을 팔지만, 스토리를 만드는 책방을 생각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기획해 그것에 해당하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책을 만들어 새로운 독자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책방지기인 정덕재 작가와 김병호 작가가 속한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책방 구구절절 운영을 맡았으니,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다. 이 조합에는 소설가와 시인, 방송 작가, 글쓰기 강사, 출판 편집자, 대학교수 등이 속했다. 무슨 일이든 만들어낼 조합이다. 기존 책방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기획이 가능하다. 정덕재 작가가 말하는 새로운 독자를 창출할 프로젝트도 이에 해당한다.
RE100 제품이나 친환경, 기후 위기 등과 관련한 생산물을 별책부록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생산물이나 그 생산물을 세상에 내놓은 인물을 취재해 글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스토리북을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지역의 사회적협동조합과 관련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하며 구체화 중이다.
구구절절에서 열리는 강좌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글쓰기 강좌와 시 쓰기 강좌를 열고 훌륭한 고전을 전문 배우나 방송인이 책방에서 직접 읽어주고 관련 전문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기획한다.
“지역 사회 이슈를 의제화하거나 화제의 인물 등을 취재해 책방편지 형식으로 널리 알릴 생각이에요. SNS 플랫폼이나 이메일 등을 활용해 발송하고 이런 편지가 차곡차곡 쌓이면 하나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겠지요. 읽기 형태를 다양화하는 것도 구구절절에서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책방편지에는 출판계와 작가 동향 소개, 이슈와 관련한 책 정보, 인물 인터뷰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구구절절에서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 할 일을 차분하게 앉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면, 100가지를 넘기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이미 수많은 놀랄만한 엉뚱한 기획을 끊임없이 벌였다.
책방 구구절절 문을 열면서도 무언가 할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은 맞았다. ‘구구절절 개점 스페셜 에디션’을 판매하고 있었다. 새책 두 권과 헌책 한 권에, 유리병에 담은 된장 한 병을 더해 5만 원에 판매했다. 된장은 지리산 고로쇠 수액과 태안 자염으로 정덕재 책방지기가 직접 만들었다. 책방을 열었다고 인사하러 오는 지인이 힘든 고민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배려한 상품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된장’이다. 도대체, 정 작가는 언제 팔아도 부끄럽지 않은 된장을 직접 만들었을까?
책방 구구절절은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다.
테미에 수상한 책방이 문을 열었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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