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한 시대, 짓고 읽어야

혼용무도한 시대, 짓고 읽어야

입춘도 지나고 매섭던 바람이 조금 누그러진 걸 보니, 다시 봄은 오는 모양입니다. 자연의 순리는 이렇듯 정확하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합니다.
독자님도 그러하시겠지만, 매일 뉴스를 접하는 일이 보통 고통이 아닙니다. 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채널을 쑤시고 다니는 일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합니다. 우리 사회에 커뮤니케이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재편을 앞둔 건 분명합니다. 저널리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인프라를 잘 구축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요즘, 마음이 헛헛해서인지 안 보던 드라마를 챙겨 봅니다. OTT 서비스 덕분에, 제공자가 아닌 수용자가 콘텐츠를 보는 매체나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요즘 푹 빠진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입니다. 우리가 겪어낸 암울했던 시절을 너무 무겁게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그려낸 작가와 연출자의 노련함이 돋보입니다. 각 캐릭터를 잘 살려낸 배우들 연기도 훌륭하고요. 짧지 않은 이 드라마를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모든 잘 만든 콘텐츠가 그렇듯 ‘몰입감’이 굉장합니다. 다만, 다른 콘텐츠에서 경험한 몰입감과는 조금 다릅니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 배경은 100여 년 전, 세계열강이 조선에 들어와 나라를 찢어발기며 수탈하던 그 시절입니다. 암울했던 그 시대를 흘려보내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좀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상황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분제에 따른 계급 착취와 폭압, 나라든 이웃이든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마구잡이로 팔아먹는 세력, 세상을 나와 적으로 나눈 후 철저하게 짓밟는 잔인성까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과거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었습니다.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건, 정말 한순간인 모양입니다. 한 사회가 무너지는 방식은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은 양상을 띱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생각하고 지켜야 할 도리를 잊고 끊임없이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내달리다가 공멸의 길로 접어듭니다. “열흘을 굶고 담장을 넘지 않는 이가 없다.”라는 속담처럼 차라리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충분한 물질을 취하고도 성에 차지 않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부리는 욕심과 경쟁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도탄에 빠트립니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를, 우리는 ‘무도한 사회’라고 칭했습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도 바로 이 ‘무도한 사회’였고, 도를 구하고 알리기 위해 그리 애썼던 공자 역시 당대에는 뜻을 펼치지 못합니다. 무도한 사회로 진입하면, 그 거센 파도를 거스르기가 불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도(道)’가 무엇인지 그 깊은 뜻을 제가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지만, 지금 세상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마땅한 낱말 역시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시대 공자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교수신문』이 교수들에게 의견을 물어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합니다. 2015년에 선정한 사자성어가 바로 ‘혼용무도(昏庸無道)’입니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고 무도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자성어에서 혼용은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에서 한 글자씩 따왔습니다. 혼군은 사리 분별을 제대로 못 하고 인재 등용에도 실패한 어리석은 임금, 용군은 능력이 없어 우유부단한 임금을 가리킵니다.
가깝게 보면, 1800년대 전후로 우리 사회는 이 무도한 사회로 진입했고 다시 200년의 세월이 흐른, 2000년을 전후해 또다시 무도한 시대를 맞이한 게 틀림없습니다. 혼용무도한 시대, 우리 백성은 늘 도탄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이런 생각 끝에 1862년 임술년에 일어난 진주민란과 같은 해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회덕민란, 진잠민란이 몹시도 궁금해졌습니다.
『임술민란과 19세기 동아시아 민중운동』이라는 책을 주문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도(道)’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짓고 읽어야겠습니다.
2023년 2월 23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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