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옥토, 나의 할머니

나의 옥토, 

나의 할머니

영화 <화원> 김혜미 감독

언젠가 “자식은 버려도 손주는 못 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일까? 내 배에서 나온 자식에게 보다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 관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유독 할머니와 돈독한 친구들이 있다. 보통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가까이 살았거나 맞벌이하는 부모를 대신해 할머니의 돌봄을 받고 자랐을 때에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조부모를 명절 때에나 겨우 찾아 뵙곤 했던 과거가 아쉬울 뿐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들 그 관계가 이 영화를 통해 또 한 번 궁금해졌다.

꽃, 꽈배기, 할머니

목원대학교 연극영화영상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혜미 감독은 작년 한 해 동안 연출자로서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김 감독의 영화 <화원>은 주인공 ‘화원’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와의 관계를 조명한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 자라 사이가 각별했던 김 감독은 “할머니께서 저와 언니 둘, 우리 세 자매에게 정말 큰 사랑을 주셨다.”라고 말한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계실 것 같던 할머니는 김 감독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김 감독은 여전히 할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제가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는데 잘 키우는 법을 몰라 항상 시들게 했어요.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싱싱하게 살려주시고는 했거든요. 그리고 함께 시장에 다녀 오는 길에 꽈배기를 파는 트럭을 만나면 꼭 제게 꽈배기를 사주시곤 했어요. 그런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화원

영화 <화원>에는 어린 ‘화원’ 역할을 맡은 김아영 배우, ‘화원’의 할머니 역의 박주예 배우, 어른 ‘화원’ 역의 이예진 배우가 등장한다. 작년 3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해 7월부터 촬영에 돌입했다. 여름 내로 마쳤어야 할 촬영이 크고 작은 변수로 인해 부득이하게 추가 촬영을 해야 했고, 9월이 되어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영화 제목이 <옥토>에서 <화원>으로 변경되어야 했다. 연출자로서 제작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통솔해야 했던 김 감독은 촬영하며 변수가 생길 때마다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대처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웠던 일은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너무 깊게 몰입한 탓이다.

영화는 어린 화원에게 “기억하고 싶은 건 다 찍어.”라며 할머니가 선물해준 필름카메라를 통해 전개된다. 김 감독은 갑작스레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고르기가 어려웠던 경험을 떠올리며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볼까?’라고 생각했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지만, 할머니의 사진은 왜 많이 남겨둘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김 감독은 여전히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는 어린 ‘화원’과 할머니가 나란히 서서 사진을 남기고, 어른이 된 화원이 사진으로 할머니를 떠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서구 원정동에서 촬영

김 감독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김 감독 자신 즉, ‘나’라는 꽃을 피우게 해준 기름진 땅이었다. 꽃을 피우기까지 든든하게 받쳐준 나의 땅, 나의 옥토, 할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영화 제목이 <화원>으로 바뀌기 전, <옥토>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영화 제목이 <옥토>에서 <화원>으로 바뀔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손녀와 할머니가 함께 등장해 그 관계성을 좀더 부각하는 장면들이 삭제되어야 했는데, 김 감독은 이 부분을 아쉽게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대전 서구 원정동이다. ‘마당과 텃밭이 있는 시골집’을 염두에 두고 찾아다니던 중에 현재는 폐역이 된 원정역 주변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원정역은 1955년 12월 1일에 개업한 후, 2006년 6월 23일에 폐지되었다. 실제 할머니 한 분이 거주하고 계시던 집에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촬영을 위한 허락을 받았는데 김 감독은 원래 할머니와 대화 나누는 일이 자신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 이 과정이 수월했다고 이야기했다. 어린 ‘화원’이 할머니에게 사진 찍고, 소원을 빌러 가자고 하는 큰 나무도 이곳 원정동 마을에 있다.

가정폭력 주제로 졸업작품 준비

<화원>은 목원대학교 연극영화영상학부의 재학생이라면 꼭 거쳐야 할 3학년 워크숍 결과물로 제출하기 위해 제작했지만, 보다 많은 관객에게 닿을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했고, 31명의 후원자를 만나 작년 9월에 목표한 후원금액을 성공적으로 모았다. 12월에는 학교 안에서 ‘영화 희열’이라는 상영회를 가졌고,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다. 김 감독이 할머니와의 추억을 담아내고자 작업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감독의 고향인 인천에서 강남영상미디어고등학교에 재학하며 <아이폰>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연출했다. <화원>과 <아이폰>으로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을 따뜻한 톤으로 그려냈다면, 올해 준비할 졸업 작품은 좀 어두운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가정폭력을 주제로 삼았다.

다른 도전으로 김 감독은 학생들에게 연극영화 과목을 가르치기 위한 교직 과정을 이수하며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자신만의 방식과 계획으로 좋아하는 영화, 잘 하고 싶은 영화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김 감독에게 인터뷰를 마치면서 평소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물었다.

김 감독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2001),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월플라워>(2013) 그리고 이란의 영화감독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을 소개했다. 성장하는 주인공의 삶을 담백하게 그린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김 감독이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김혜미 감독의 영화<화원>은 QR코드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글 양지연, 사진 양지연, 김혜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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